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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을 가로질러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만국기는 예전의 운동회 풍경과 비슷합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만국기는 예전의 운동회 풍경과 비슷합니다. ⓒ 엄선주
'운동회도 예전 같지 않구나.'
쉽고 빠르게 대충 하는 것이 어째 맘에 들지 않습니다. 작년에도 느꼈었지만 올 가을 운동회는 유독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올해는 오전 중에 운동회가 끝나 그 흔한 김밥 한 줄 먹지도 못했습니다.

운동회가 마냥 좋기만한 아이들, 서로의 근육자랑을 하며 즐거워합니다.
운동회가 마냥 좋기만한 아이들, 서로의 근육자랑을 하며 즐거워합니다. ⓒ 엄선주
'깃발이 춤을 춘다∼'로 시작하는 운동회 노래도 들을 수가 없고, 교내 스피커마다 울려 퍼지는 행진곡 소리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빠는 물론 이모, 고모까지 온 식구와 친척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아이들을 응원하는, 잔치 같은 운동회 문화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나봅니다.

학교운영위원들이 학부모를 위해 커피와 녹차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학교운영위원들이 학부모를 위해 커피와 녹차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 엄선주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운동장 하늘을 가로질러 나풀거리는 만국기와 시의원·학교운영위원 등 높은 분들의 귀빈(?)석입니다. 학교운영위원들이 커피와 녹차를 준비해 학부모와 귀빈들에게 대접하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시의원을 비롯한 지역유지들과 학교운영위원 간부들도 운동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넥타이와 구두가 아무래도 어색해 보입니다.
시의원을 비롯한 지역유지들과 학교운영위원 간부들도 운동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넥타이와 구두가 아무래도 어색해 보입니다. ⓒ 엄선주
귀빈들은 말 그대로 손님일 수밖에 없는 걸까요? 명색이 운동회라고 작은 운동에 참여하지만 빳빳한 양복, 조여 보이는 넥타이와는 영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내년부터 귀빈 아저씨들도 운동복 차림으로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2학년 달리기를 합니다. 저를 닮아 달리기를 잘하는 우리 아들은 이번에도 역시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앙팡지게 뛰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서 하마터면 주책 맞게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남편은 자기를 닮아 잘 뛰는 거라며 자랑스러워합니다.

오른 쪽에서 두번째, 8명중 1등으로 뛰는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
오른 쪽에서 두번째, 8명중 1등으로 뛰는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 ⓒ 엄선주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청계백주 시간입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우리 아들이 반대표 주자로 운동장 반 바퀴를 돕니다. 하필이면 아들 키보다 한뼘은 족히 커 보이는 친구가 백팀 주자로 뛰게 됐습니다. 4학년부터는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데 역시 형, 누나답게 뛰는 폼과 긴 다리가 듬직해 보입니다.

청팀이 10m 정도의 차이로 앞서고 있었는데, 백팀이 조금씩 따라잡더니 마지막 주자에서 결국 역전을 당하고 맙니다.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들까지 모두 하나되어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는 청계백주, 역시 운동회의 백미, 그 이름 값을 톡톡히 합니다.

점심때쯤 끝난 가을 대운동회.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말아야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운동회였습니다. 아이들도 일찍 끝나 피곤하지는 않겠지만, 그들 인생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운동회에 대한 추억이 너무 단조로운 것 같아 더욱 아쉽습니다.

내년부터는 '가을대운동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풍성하고 알찬 운동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밥도 먹고, 과일도 먹고, 평소에 찾아 뵙지 못한 선생님과 인사도 하며, 식구랑 이웃이랑 함께 즐기는 운동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따뜻한 운동회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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