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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지하철도 끊긴 새벽 1시.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상가 3층에 꽃향기가 가득하다. 커다란 박스에서 울긋불긋한 꽃이 쏟아진다. 상인들의 손길이 바빠지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인다.

총면적 3200평에 달하는 이 곳은 국내 최고의 꽃 도매 상가를 자랑한다. 새벽 1시에 개장해 그 다음날인 오후 1시까지 꼬박 12시간동안 수십 종의 꽃이 주인을 찾아 떠난다.

ⓒ 김진석
개장을 30여 분 앞둔 유봉순(48)씨의 손길이 바쁘다. 꽃 도매 20년째인 유씨가 이곳에 자리잡은 건 6년 전. 처음 남대문 시장에서 출발해 이곳에 오기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꽃들이 유씨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1시부터 5시까지는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꽃을 주문하고 아침 6시 이후부턴 서울 시내 상인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새벽 1시가 돼 불이 켜지기가 무섭게 손님이 몰려온다.

유씨의 가게에서 취급하는 꽃은 모두 20여종. 요즘엔 용담초, 소국, 리시안셔스 등의 꽃이 한창 나갈 때이다.

ⓒ 김진석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장미예요. 가시가 있어서 좋죠. 그리고 요즘엔 가시 없는 장미도 많이 나와요.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니깐 그걸 일일이 다듬고 할 수 없잖아요. 세상에 맞춰 꽃도 변하는 것 같아요.”

세상에 따라 꽃도 변한다. 20년 동안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도 달라졌다.

“20년 전과 비교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도 달라졌고, 꽃꽂이 방법, 재배방법도 달라졌어요. 20년 전에는 장미, 소국이 인기가 많았죠. 물론 지금도 장미가 인기 많지만 대부분 외국에 로열티를 주고 들어오는 것들이잖아요. 거의 전부라고 봐도 돼요. 그것 때문에 농민들의 주름살이 더 깊어졌어요.

재배방법도 재래식에서 유기농으로 변했어요. 꽃들도 예전엔 원색의 꽃들이 인기가 많았다면 요즘엔 파스텔 색깔의 꽃이 인기가 많아요.”

ⓒ 김진석

“꽃은 기쁠 때 기쁨을 더 크게 하고 슬플 땐 그 슬픔을 줄게 하는 것 같아요. 꽃을 사지 않는 사람들은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꽃 살 줄 모르는 사람은 평생을 가도 꽃 한 송이 안 사요. 꽃은 그 가치가 무한해요.”

“일반 사람들은 꽃이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곳에 오면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꽃을 생활화하면 좋아요. 생활은 여유로워지고 화도 덜 내게 되거든요. 모든 것을 순하게 풀어갈 수 있어요.”

ⓒ 김진석
꽃의 가격은 매일 달라진다. 물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인데 며칠 전 한반도에 들이닥친 태풍 ‘매미’의 피해를 입은 거창에서 올라오는 국화꽃 같은 경우 물량이 부족해 그 가격이 두 배 이상 급등했다.

“가격을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물건을 보고 얼마에 팔아야 적당한지를 판단해야 하잖아요.”

ⓒ 김진석
새벽 내내 앉아 쉬는 것은 언감생심, 전화벨이 울려도 받을 틈이 없다. 한참을 ‘따르릉’거린 후에야 유씨의 손이 전화기에 닿았다. 다리가 퉁퉁 부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반드시 마사지를 받아줘야 하는 유씨지만 그보다 더 힘든 점은 인력난이다.

“가장 힘든 건 사람을 구하는 일이에요. 남동생이 일을 같이 하며 대학생 아르바이트생과 직원 한 명을 두고 있어요. 아무래도 밤에 일하다보니 사람들이 안하려고 해요. 우리 일도 3D직종이에요. 영업시간이 길고 밤에 일하니까.”

ⓒ 김진석
꽃 도매업을 한지 20여 년. 유씨는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꽃병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꽃 전문가라 해도 되겠다고 하자 그녀는“여기서 40년째 하는 사람도 많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한국 원예 산업의 개선점을 말하는 데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다.

“아직까지도 상품의 상중하 구분이 안 되고 있어요. 품종 선별 작업이 더 정확하게 이뤄져야 해요. 그리고 아직은 농장들도 소규모가 많아서 재해대비능력과 기술이 많이 부족해요. 설비 같은 것도 선진화 되어야 하고요.”

ⓒ 김진석
“꽃은 생명이 있어 아름답죠. 꽃을 보면 인생을 보는 것 같아요. 내 인생도 그렇게 화려했다가 꽃이 지는 것처럼 그렇게 마감이 되겠구나 하죠. 그렇다면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은가. 내가 지금 화려한 꽃처럼 인생의 절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열심히 살겠죠. 꽃을 하나의 상품으로도 볼 수도 있지만 나의 인생도 들여다 볼 수 있어요.”

새벽 1시부터 5시간 꼬박 전화 받을 틈도 없이 뛰어다녔다. 마치 유씨가 지금까지 그렇게 달려왔던 것처럼. 유씨는 앞으로 조금 느리게 살고 싶단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사느라 하고 싶은 거 못해본 게 많아요. 앞으론 조금 느리게 살고 싶어요. 그동안은 세상을 차분히 관찰한 시간도 없었어요. 흐르는 물소리는 물소리답게 듣고 싶고, 지는 해도 여유롭게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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