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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김미화씨
개그우먼 김미화씨 ⓒ 한상민
우애령 소설집 <당진 김씨>를 읽다가 '그래, 농심이 바로 이거다'했던 글이 있었다. 산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다섯 집이 살고 있는 농촌마을길에 가로등이 없어 불편을 느끼던 주민 몆 사람이 군청에 신고해서 운좋게도 가로등 설치허가를 받아냈다.

전기설비기술자들이 논과 밭이 잘 보이게 가로등을 설치하려하자 농부 박씨는 절대로 가로등 설치는 안된다고 우긴다. 답답해진 마을어른 최노인과 주민 김씨는 박씨를 찾아갔다.

"원, 촌눔은 어쩔 수 읎네그랴, 대명천지에 다 밝게 살자는 것인디 무슨 심사랴!"

최 노인과 김씨가 박씨를 닦달해서 얻어낸 대답은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오는 소리였다.

"거기 불이 서 있으문 안되유, 안되구 말구유. 아, 그 콩이며 깻잎이며 벼며 전부 다 밤에 어둔디서 푹 자야 지대루 큰 단말이유, 그런디 밤새두룩 불을 켜놓으믄 원제자믄서 부쩍부쩍 크지유?"

황소고집같은 박씨의 불퉁한 대꾸에, 부부가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미숫가루물을 널찍한 사기사발로 세그릇이나 타내오던 마누라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건 아이 아범 말이 맞구먼유. 아, 곡식덜두 낮에는 해 아래서 놀믄서 크지만 밤이믄 몸이 다 퍼지게 실컷 자야지유."

나는 농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지만, 절로 밥먹을 때 기도를 하고 먹게 된다. 자식처럼 기르는 농부의 손길손길 위에 축복을 내려 주십사고…. 그러나 업친데 덥친다고 안타까운 일은 그들에게 계속되고 있다.

가뭄에 수해에, 값싸게 밀려들어 오고 있는 외국농산물들이 울면서 진흙 속에서 벼 한 포기라도 일으켜 세워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농부의 빰을 다시 후려치고 있다는 거다.

다른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게 국제정치라면, 왜 하필 묵묵히 땅만 일구며 평생을 살고있는 농민이란 말인가? 국력이 약해서 그렇다는 말을 도대체 얼마나 더 들어야 한단 말인가. 답답할 때가 많다.

한편으론 겁도 난다. 그나마 작은 땅덩어리에 이만큼이라도 농사지어주는 고마운 농민들이 다 버리고 돌아서면, 나중에 다른 나라에서 '쌀 못 줘'하면 어떻게 하려는 건지 우리 아이들 미래가 걱정스럽다.

그러나, 자! 다시 한번 힘을 내보련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우리 국민들 아니던가.

농민이 어렵다. 농촌에 야외촬영을 가보면 절실히 느껴진다. 농촌총각은 찾아보기 힘들다. 역시 농촌 처녀들도 보기 힘들다. 중국처녀들, 러시아 처녀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다.

촌에서 고생고생해서 당신을 기르신 부모님들을 생각할 때다. 그분들만이 그 땅을 지키고 계신다. 어머니, 아버지를 길러주신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는 농촌에서 뼈가 굵으셨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우리는 모두 땅의 정기를 받고 자랐다. 나만해도 엄마가 밭을 매실 때 미루나무 기둥에 광목천으로 묶어두고 고랑을 매시고, 나는 흙을 주워먹으며 자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흙 구경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 흙을 일궈서 곡식을 키워내는 농부들 기를 살려줄 때다. 까짓, 쌀 조금씩 나눠서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주머니를 조금씩만 털어보자.

음메! 기살어! 하고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처럼 쌀가마니를 들고 환하게 웃는 주름진 농부의 얼굴들이 간절하게 보고싶다.

그래서 한가지 덧붙이자면, 대통령 영부인이신 권양숙 여사께서 다음 글을 이어서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모'께서 농민들에게 용기를 주신다면, 얼마나 기뻐할지 벌써부터 막걸리사발을 기울이며 웃는 농민의 걸쭉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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