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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폐기장 건설 계획에 반대하며 등교거부 한 달째를 맞고 있는 전북 부안 백산초등학교 최지원 어린이가 29일 오후 종묘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따가운 땡볕을 원망하듯 잠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달째 등교거부 중인 부안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서울에서 가을운동회를 가졌다.

다른 지역의 또래 학생들이 운동회를 열고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동안 '반핵민주학교'에 다니며 저녁마다 촛불시위에 나오던 아이들은 한강에서 종이배를 띄우고 서울 종묘에서는 박을 터뜨리고 노란 풍선을 날리며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반핵구호가 적힌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부안 학생들은 "운동회를 못 가 섭섭했는데, 서울 나들이를 하니 기분이 좋다"며 "핵폐기장을 백지화하자고 알리는 일이라서 운동회보다 뜻깊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박성민(우덕초 6)군은 "서울에서 사람들이 도와준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온다"며 "서울 친구들이 핵폐기장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옥(변산서중 1)양은 "이런 기회에 서울에 와서 좋다"며 "처음 등교 거부를 시작할 때에는 어리둥절했는데 이제 더 열정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갈길이 먼 학생들은 마냥 기쁠 수 없다. 특히 행사 진행이나 공연을 맡은 학생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김혜미(부안여고 1)양은 "새벽까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잠도 잘 못잤는데 오늘 와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양은 "학생들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핵폐기장으로 고향을 뺏기면 미래가 없다, 지역이기주의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가을운동회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마음도 복잡하다.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가슴이 아픈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과 5학년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온 김안석(변산면 거주. 32)씨는 "처음에는 막연하게 부모 뜻을 따르던 아이들이 이제 주체적으로 반핵 조형물을 만들고 촛불시위에 나와 민주주의를 배운다"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 핵폐기장 건설 계획에 반대하며 등교거부 한 달째를 맞고 있는 전북 부안지역 초등학생들이 2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핵폐기장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약 1000여명, 25대 버스에 상경

이날 서울을 찾은 학생들은 약 1000여명. 버스 25대에 나눠타고 오후 1시경 서울에 온 학생들은 점심식사도 하기 전 여의도를 찾았다. 한강에 종이배를 띄우기 위해서다. 진행자의 설명에 따라 학생들은 "핵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세요" "빨리 학교에 가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며 한강에 배를 띄워보냈다.

도시락을 먹은 학생들은 오후 3시 종묘로 이동해 문화한마당을 가졌다. 이날 본행사는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무대 뒤편에서는 출연자들이 막바지 연습에 몰두하고 그 옆에서는 청소년 사회자가 대본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이날 행사에 쓰인 플래카드도 학생들의 작품이었다.

초등학생의 노래와 율동으로 시작한 본행사는 가면극으로 이어졌다. 현금보상설이 유포되고 김종규 군수가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하지만, 부안군민들의 촛불시위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핵폐기장 백지화를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경축 핵폐기장 백지화 부안군수 만세'라는 플래카드가 올라가고, 학생들은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불렀다.

무대에 선 청소년들은 "우리가 공부하기 싫어서 등교거부하고 PC방에 들락날락하는 줄 아는데, 우리는 역사적 진리와 민주시민의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핵폐기장이 백지화될 때까지 학교에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다.

▲ 부안지역 초등학생들이 종이배와 풍선에 띄워보낸 '반핵 소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져 다시 등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서울 학생들도 무대에 올라 부안 핵폐기장 유치에 목소리를 보탰다. 이홍소윤(거원초 2)양은 "우리의 이웃이고 친구가 될 부안친구들도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가 살 미래의 소중한 꿈을 버리지 말아주세요"라고 편지를 읽었다.

임세연(벽제중 1)양 역시 "핵이 있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며 "부안 친구들이 자랑스러운 일을 해왔다, 지금 서로 몸은 떨어져있지만 함께 노력해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노란색 박을 터뜨렸다. 아슬아슬하게 입을 다물던 박은 터지면서 "햇님도 일하고 싶어요, 바람도…"라며 대체에너지에 대한 소망을 토해냈다. 동시에 학생들이 들고 있던 노란색 반핵 풍선이 하늘을 날았다.

학생들은 오후 5시경 문화한마당을 마친 후 종로를 거쳐 조계사까지 행진을 가졌다. 이들은 조계사에서 식사를 한 뒤 오후 7시쯤 부안으로 떠났다.

부안 학생들의 등교거부는 이날로 35일째를 맞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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