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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살더라도 평화롭게 이틀 사흘을 살더라도 온세상이 평화롭게"
광화문 교보빌딩 입구 위에는 대략 계절별에 하나씩 시 구절을 비롯한 명구들이 커다란 현판 위에 쓰여져 올라 있습니다. 멀리서도 보이도록 계절과 자연의 색을 담은 바탕그림 위에 큼지막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공모를 하거나 문인들의 글을 빌려와서 올려놓는데 매번 볼 때마다 생각을 환기시키고 계절을 느끼게 하고 흐뭇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교보문고를 가끔 들르는데, 책 유람을 하고서 밖에 나와 광화문 거리와 이 현판을 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대형빌딩의 입구 공간을 광고가 아닌 이런 문학적 향기를 자아내는 곳으로 사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으나 문화의 거리 광화문에서나 가능하고 또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현판 이름도 '광화문 글판'입니다.
작년 가을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갈 때에야 더욱 경건하고 사람들은 적막한 바람 속에 서서야 비로소 아름다운가"
낙엽이 떨어져 쇠잔한 기운이 감돌 때 어울릴 법한 글귀입니다. 작년 가을, 비 맞으며 단풍 여행을 한 후 느낌 글에 이 문구와 자크 프레베르의 '고엽'의 글귀를 같이 실어보았습니다. 태풍을 동반한 바람이야 원성의 대상이겠지만 우리를 건드려 존재를 잊지 않게 하는 풋풋한 바람은 반가운 대상입니다.
글판 위로 수없이 많은 창들이 있습니다만 '글판'이라는 이 창에 견줄 것이 못 됩니다. 이 글판 덕분에 위의 사다리 같은 창들은 고양감을 더할 수 있습니다. 침묵이 바탕이 되어 울려지는 언어의 외침은 생각보다 큽니다. 소음이 바탕이 된 광고판의 글은 외면의 대상이지만요. 어쩌다 우리는 소음의 언어를 생산하는 일에 서로들 기여하고 있습니다. 버스나 전동차의 광고판은 점점 더 커지고, 한시도 사람들의 시선과 귀를 내버려두지 않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엘리베이터 위에 천장에 광고판을 붙여 놓습니다.
창은 눈을 쉬게 하는 곳입니다. 일을 하다가 실내의 일상적 모습에 식상할 때 눈을 두는 곳입니다. 방 안에서 창을 보는 것뿐이 아닙니다. 밖에서 다른 집들의 창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 속 몽상이 가져다주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뭔가 다른 세상의 비밀이 있을 것 같고, 뭔가 아늑한 세상이 자리잡고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창입니다. 꼭 유리로 된 창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그림이나 글로 된 간판도 멋진 창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무슨 글귀가 쓰여 있나요.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느니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자주 현판을 보면서도 로비 안에 들어갈 생각은 잘 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높은 빌딩은 뭔가 위압적인 느낌이 있고 구경할 셈으로 들어갈 만한 곳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형빌딩의 창은 시원하고 넓직하고 우아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습니다.
어느 땐가 마음먹고 이곳 로비에 들어갔습니다. 3층 높이의 입구 전면도 여러 개의 유리창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리에 넣은 색 때문에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안에서 입구 밖을 볼 때는 따뜻한 햇빛을 마음껏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해질 무렵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입구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입구 옆으로 위 층 사무실도 볼 수 있는데, 이곳도 역시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시야가 막힘이 없습니다.
건축기술과 유리 제조기술의 발달은 점점 더 대형빌딩의 투명화를 도입하게 합니다. 자연의 빛을 많이 활용할 수 있고 개방적인 이미지를 부여할 수도 있어 좋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건물은 그 정도에 있어 제한이 있어야 하겠지요. 명상과 기도를 하는 곳이 한없이 개방적이고 투명하다면 문제가 있지요. 기도는 골방에 가서 하라고 했지요.
이곳 교보빌딩 로비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멋진 글판을 볼 수 있습니다. 로비 왼쪽에 있는 카페의 기다란 창 안을 보면 훈민정음의 글귀를 활자를 붙여 장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나타내려고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지만 창 밖으로도 가로로 길게 늘어놓은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벽면, 창, 그림을 기억해 두어서 우울과 염증에 찌든 눈을 잠시 쉬게 하고 싶을 때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카페만 딱 떼어놓으면 기다란 직사각형의 유람선 같습니다. 가로로 길게 뻗은 모습이 작은 유람선 크기와 비슷합니다. 창으로 된 기다란 창가 쪽으로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창밖으로 밖을 볼 수 있으니 관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창가 아래쪽은 불투명하게 가려져 있으니 이곳은 배의 갑판 밑이 되겠네요. 가운데에는 기다란 빵 진열대와 카운터가 있습니다.
차길 쪽으로 향한 앞쪽은 이물(배의 앞부분)이 되겠고, 그림이 걸린 뒤쪽은 고물(배의 뒷부분)이 되겠지요. 실제로 앞쪽의 밖 그러니까 건물 밖은 지하도로 파여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상상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니까 빌딩은 선박 보관 창고가 되고요.
이왕 이곳에 왔으니 로비 뒤쪽도 가보지요. 이곳에도 멋진 창들이 숨어 있거든요. 아치형의 높고도 둥근 창들이 훨친한 대나무들을 내려다보고 있네요. 그 창을 통해 풍성한 햇빛을 무사통과 시키고 있네요. 키 큰 대나무들이 그 키를 이용해 담장 안의 창을 넘겨다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창 밖을 넘실대며 보고 있다니 신기하지요. 대나무들이 한없이 커져 천장의 창을 위협하면 어떡하지요.
이곳 3층에 사무실에 있는 창들은 행복하겠습니다. 멋진 대나무와 높이를 같이하면서 서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대나무들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위로 창들이 둘러싸고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나무는 정갈한 맛이 있어 좋습니다. 영화관 '씨네큐브 광화문'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으로도 대나무들이 안온한 분위기 속에서 시원스레 뻗어 있습니다.
대나무들은 또 조용한 곳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건물 뒤쪽에 모여 있기 마련이고 '스스스' 하는 대나무잎 부딪치는 소리가 소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겠지요. 강릉 오죽헌의 대나무도 그렇고, 더욱이 대나무의 천국인 전남 담양의 대나무골의 대나무들도 그렇고요. 키 크면서 마음씨 착하고 어리숙한 친구들의 성품이 대나무의 성품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대형빌딩을 돌아보았지만 결국은 다시 자연으로 마무리짓게 되었네요. 우리 속에 늘 담고 있는 바람인 '자연스러움'이 발동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바람을 맞고 더위와 추위에 떨면서 상처 입으면서 크는 것이 자연스러움이지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 모음집인 <나무 동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글인 프란츠 홀러의 '원시림 책상'은 도심 빌딩 사무실의 한 나무 책상이 자신의 고향인 정글을 그리워하다가 결국에는 그곳에 간다는 내용입니다. 이곳의 대나무들도 자기가 자란 곳을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창은 그런 동경의 표현입니다. 바깥 어딘가에 있을 고향, 이상향을 그리워할 때, 형상화할 때 필요한 마음 속 캔버스입니다. 빛을 받아 무색이 된 캔버스. 아참 그러고 보니 입구의 '글판'도 영락없이 캔버스군요.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