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안치환의 오래된 팬들 혹은 적어도 안치환 자신은 그렇게 자리매김 되는 것이 억울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노래판에서 그만큼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또 꾸준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곡을 부르는 가수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방송 매체와 집회장 양쪽에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이름이 바로 안치환 아니던가.
안치환에 대한 비난은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그가 '상업적 성공의 주위를 항상 기웃거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과 '음반이 항상 똑같아서 지겹다'는 이 두가지가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에 대해, 나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변명을 조금 늘어놓아 볼까 한다.
사실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뮤지션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남들이 자기 노래를 좋아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안치환은 누군가 취한 상태로 자신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는 걸 듣고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지금은 복개되어버린 도림천변에서 형들과 함께 안치환의 노래를 부르던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가수가 상업적 성공을 바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곡이 여러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면 상업적 성공은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차라리 그의 성공은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그의 노래때문이라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 노래와 발라드 곡을 넣어서 인기를 얻은 것을 비난할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인의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고, 발라드라는 장르가 노래나 가수의 지향을 담지하지도 못할 진대, 그러한 비난은 어불성설이다.(그러한 비난이 비판이 되려면 먼저, 사랑 타령과 발라드로 점철된 한국의 대중 가요라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 하에 안치환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곡들을 통해 안치환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음반을 팔 수 있고, 다시 음반에 있는 다른 곡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상업적 성공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음악적 태도를 굽히면서 상업적인 것에 다가갔을 때 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이 부분에서 안치환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의 음반에서 상업적 의도를 가진 편곡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으며, 더우기 최근의 음반들에서 그가 음악적으로 조금 나태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의 음악이 항상 똑같아서 지겹다라는 것은 누구보다고 안치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안치환은 다섯번째 음반인 리메이크 앨범 'Nostalghia'(1997)를 내놓을 때까지는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있고, 우리는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는 1, 2집에서 숱한 민중가요 명곡들을 불렀고 민중가요 계에서는 확고히 자리매김을 했지만, 그 때까지 그는 대중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3집 'Confession'(1993)을 통해서야 비로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종 산물인 앨범만을 놓고 볼 때, 그는 3집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 고집을 고수하기 보다는 다소간 절충적인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상업적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안치환은 다시 1, 2집을 녹음하여 한장의 CD로 내놓는다.)
하지만, 3집을 내놓고 가진 그의 라이브 공연 팸플릿에서, 그는 자신이 업고 다니는 무거움 혹은 엄숙함이 과연 진지함의 발현인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향후로도 상당 기간 그러한 고민을 짊어지고 가야 할 것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내놓은 4집 '너를 사랑한 이유'(1995)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안치환은 대중들에게 가수 안치환이 아니라 밴드 '안치환과 자유'의 보컬로 새롭게 등장한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해서 그는 민중가수에서 록커로의 변신을 시도한 것이며, 대중들은 그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라디오에서 '내가 만일'이 흘러 나오면서, 동시에 공연에서의 연주와 스테이지 매너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그리고 정말 다시 불려져야 한다고 느꼈던 곡들을 다시 부른 리메이크 곡 모음집 'Nostalgia'를 내놓게 된다. 이것은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겠다는 그의 선언이었다.
하지만 전작과 동일 선상에 있던 5집 'Desire'(1997), 그리고 다소 지리멸렬했던 6집 'I Still Believe'(1999)에 이어 최근에 나온 7집 'Good Luck'(2001)에 이르기까지 그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들만 모은 'Remember'(2000)와 'Live Best 01-02'를 내놓았지만 이 역시 'Nostalgia'만큼 당당하진 못하다.
최근 몇 년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우리시대의 목소리'라는 수식어를 거둘 정도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의 여러 음반들 중에서 이 앨범 'Confession'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의 대부분을 담아내고 있는 원형적인 앨범이고, 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미학적 성취를 함께 거두고 있는 명곡들이 가장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곡의 절반은 조동익과 동아기획 사단이 녹음에 참여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함춘호의 리드에 의해 녹음되었다. 반면에 몇몇 곡들에서는 상업적 의도가 분명한 어색한 연주들이 담겨있어 그의 한계를 조금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첫 곡 '고백'은 잔잔하게 내적인 고백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나오는 팻 메스니(Pat Metheny)를 연상시키는 신서사이저나 마무리 짓는 섹스폰 소리는 조동익 특유의 그것이다. 이 앨범과 이후 앨범에서의 완성도를 보면 조동익의 공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다음곡 '자유'는 그 호소력있는 가사로 수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으며 이후 자신의 밴드명으로까지 된 곡이다. 함춘호의 연주를 조동익의 연주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직선적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자유'는 앨범보다는 라이브에서 더 빛을 발한다. 그 뒤를 잇는 '소금인형'은 이 앨범의 백미이자 안치환 라이브 무대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으로, 곡의 톤이 너무 높아 수많은 팬들이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가 좌절하기도 했던 곡이다.
안치환의 호소력 있는 곡과 가창력에 류시화의 입김이 녹아 들어간 노랫말이 실렸고, 그것이 조동익의 완급을 조절한 편곡, 연주에 힘입어 이 곡은 단연 앨범의 절정을 이루어내고 있다. 그러한 긴장감 가운데에서, 장필순의 허스키한 코러스를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안치환이 발라드 싱어로도 충분히 자질이 있음을 보여준 첫번째 곡일 것이다. 물론 어휘 선택에 있어 그는 역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들을 골라 쓰고 있지만 이 곡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
'귀뚜라미'는 이 앨범의 다른 곡들처럼 내적인 고백을 표현하고 있는데 나희덕의 시를 절묘하게 곡으로 표현해 낸 안치환의 작곡력은 놀라울 정도다. 암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비장미가 원래 시의 표면에 드러나는 정서라면, 세월을 통해 완숙해진 안치환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의 노래는 놀랍도록 차분하며 듣는 이에게 차라리 희망적인 느낌까지 갖게하고 있다. 이후 수많은 공연에서 안치환은 이 곡을 부르며 관객들을 귀뚜라미로 만들어왔다.
'겨울새'는 이 앨범에서 가장 차분한 곡이 아닌가 싶은데, 묘하게 호소력이 있고 힘이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앨범에서 떼어 이 노래 한 곡만 따로 들어봐야 제 맛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하지만, '또 하나의 시작을 위해'는 뭐랄까 조금 신파적이다. 1+2집에서의 냄새가 묻어 나는 이 곡은, 안치환 자신에게는 또다른 의미가 존재하는 곡일지도 모르겠으나 앨범의 완성도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옥의 티가 아닐까 싶다. 아마 '우리가 어느 별에서'같은 곡이 완성도가 조금만 낮았으면 이런 곡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안치환은 이런 곡들을 걸러내는 것에 너무 관대한 듯하다.
안치환의 미덕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시대의 외압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금은 전투적인 가사에 실어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혁명이 거세된 시대, 민중가요는 모두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기도 힘든 시대에 그는 그래도 그것을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앞선 세대의 목소리를 정태춘과 김민기라고 한다면 적어도 우리세대의 목소리로 나는 안치환과(여기에 적긴 조금 어색하지만) 신해철을 들고 싶다. 즉 안치환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왠지 그는 윤도현에게 많은 것을 뺐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안치환이 윤도현 대신 핸드폰 광고에 나왔다면 더욱 눈에 거슬렸을거 같긴 하지만, 적어도 윤도현 이전에 청년의 이미지와 행동력을 보여주었던 것은 안치환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말이던가 안치환의 공연에 갔을때 그는 '아메리카'를 불렀다. 그가 '뻐킹 아메리카~'하고 코러스를 부르자 이미 하나였던 관객들은 서로 찌릿하게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분노하지 않는 이 현실이 더욱 이상한 것이며 적어도 그는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청년이다. 아무리봐도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를 안치환이 아니라 윤도현이 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 억울하다.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자유', '소금인형'을 작곡하고 노래해 온 가수가 아직 현역에서 열심히 뛰고있는데 그를 벌써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포크 록커가 다시금 뮤지션으로서 불붙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