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수수께끼 같은 서귀포 바닷가에는 거대한 돌기둥을 세워 놓은 수직 절벽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폭포가 있다. 정방폭포는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권에서는 단 하나뿐인 절경으로, 파도 소리조차 삼키는 폭음을 내며 23m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세 줄기 큰 물기둥은 하얀 포말이 되어 장관을 이룬다.
항상 보는 바다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 감회가 다르다. 그 이유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 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가면 크게 심호흡을 한다. 하지만 정방폭포에서 보는 바다는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다.
입구를 찾아 조심스럽게 수직 계단을 내려가니 제일 먼저 반기는 곳은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정방 폭포는 그림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풍경이다. 병풍을 두른 듯한 주상절리층 절벽은 지각변동으로 일어난 자연현상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세찬 풍우를 이겨내면서도 더욱 아름다운 것은 바닷가에 깔려있는 동글 넓적한 돌이다. 폭포의 수려함과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동글 넓적한 돌들은 나그네들에게 폭포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 준다. 어디 그것뿐인가? 계절을 잊고 멀리서 한걸음에 달려온 여행객들에게 잠시 여정을 풀 수 있는 휴식처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둥글다고 편안하여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김삿갓이 될 수 있다. 바다만 감상하고 얼른 폭포수로 이동하는 게 좋다.
정방폭포까지 다가서기에는 많은 망설임이 있다. 그 이유는 폭포에 담긴 수수께끼 같은 전설과 설화 때문이 아니라, 또 하나 역사의 현장을 찾아 나선 것 같은 책임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고 '야! 아름답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순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배경 뒤에 숨겨진 역사의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동질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풀어야할 숙제가 아닐는지.
우선 정방폭포 절벽에서 또 하나의 전설을 만났다. '서불과차(徐不過此)'라고 쓰여진 석벽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이곳은 옛날 중국 진시황 때 서불이 진시황의 명을 받들어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영주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으로 불로초를 캐러 왔다가 머무른 자리라 한다. '서불'은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신선의 열매라는 '한라산 시로미'를 얻은 후 서쪽(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서불은 정방폭포에 들렸다가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석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으로 '서불과차(徐不過此)'라는 네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서불과지(徐不過之'라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 이 글은 흔적을 찾지는 못했고, 아마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전해오는 전설일 뿐이었다.
그러나 서귀포시가 1개월 전 정방폭포 옆 석벽에 '서불과차(徐不過此)' 라는 글을 새겨 많은 관광객들이 전설과 현실 속 기행에서 머무르고 있다. 더욱이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이 '서불이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서 생겨났다고 하니 전설과 현실의 존재 차이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이다.
특히 '徐不過之'라는 마애각은 해방 이후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정방폭포 위에 전분공장이 생겨 폐수가 이곳으로 흐르기 시작한 뒤부터는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 전설이지만 이들 일행이 떠날 때 동남(童男) 세 사람이 낙오되어 제주도에 남게 되었는데 이들이 탐라를 건국하는 시조가 되었다 하니 전설의 의구심 끝이 없다.
정방폭포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정방폭포 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은 폭포만 바라볼 뿐이지 어디서 이 폭포가 만들어지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정방폭포 위에는 길과 통하는 누각이 있었다. 그 누각 밑으로는 강물처럼 유유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누각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아마 서불이 그 일행과 배를 타고 오는 장면을 그린 벽화인가 보다. 이렇듯 서복 일행의 제주 도래설은 고대사의 수수께끼가 되고 있다.
정방폭포는 폭포수가 하얀 비단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정방하폭'이라 하여 영주 10경의 하나로 꼽는다.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지방기념물 제44호)로서 높이 23m, 폭 8m, 깊이 5m에 이르는 웅장한 폭포 음이 장관이다. 특히 쏟아지는 물줄기에 햇빛이 반사되면 일곱 색깔의 무지개가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신비의 황홀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들리는 폭포 소리는 듣는 이에 따라 그 감정도 다르다. 세파에 찌든 사람들에게는 시원함을 느끼게 할 것이며, 예술인들에게는 오케스트라를 연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주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혼의 소리로 들릴 것이다.
이는 4·3 당시 총알을 아끼기 위해 여러 사람을 한데 묶어 정방폭포 낭떠러지로 떨어뜨려 죽게 한 비극의 장소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귀포 바닷가에 가면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어떤 이는 이 폭포소리를 들으며 비경의 뒤에 숨겨진 아픔, 즉 4·3 영혼들의 굉음소리처럼 들려올 수도 있다.
하얀 물보라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물방울들. 안개처럼 주위를 감싸고도는 신비스러움 앞에서 넋을 잃는다. 특히 까만 절벽에 하얀 비단자락이 되고 햇빛을 받아 생겨낸 오색의 영롱한 무지개는 동양 최고의 절경이다.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보기 위해 몰리는 바람에 폭포 앞 바닷가에는 한여름 해수욕장을 연상케 한다.
여행은 미로에 쌓인 현실을 풀기 위해 떠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절벽 23m의 해안으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폭포의 위력은 더욱 더 나를 미궁 속으로만 빠져들게 만들었다.
더욱이 아직까지 귓가에 맴도는 폭포소리는 지난 여름 아파트 정원에서 울어댔던 매미소리처럼 생생하다. 전설과 현실의 존재에서 떠난 폭포 기행. 정방폭포에 얽힌 서불의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서귀포 70경은 다시 '서복 전시관'으로 떠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