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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전국민속 투우대회' 격렬한 소싸움 장면
'진주 전국민속 투우대회' 격렬한 소싸움 장면 ⓒ 김성철
경상남도 진주시에서는 '개천예술제'(10.3∼10.10일)와 '진주남강 유등축제'(10.1∼10.15일)가 열렸다. 이 기간 중에 남강둔치 투우장에서는 '진주 전국민속 투우대회'(10.3∼10.9일)가 진주시와 경남일보 공동주최로 열렸다.

투우대회 마지막날인 9일에는 하순봉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영석 진주시장 등 각계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하루 동안 소싸움 관람객 10만여 명 이상이 다녀 갔다. 각 체급별(갑.을.병)로 입상자들에게 시상식에서 상금과 부상을 수여한 후, 오후 4시경 폐회사를 끝으로 대회가 끝었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의 싸움소 200여 두가 각 체급별로 출전해서 7일 동안 대결을 벌였다. 싸움소들은 추첨에 의해 대진표가 결정되어, 1:1 토너먼트 식으로 단판승제로 펼쳐졌으며, 경기진행 방식은 정해진 시간 내에 싸움에 패한 소가 황급히 도망을 가면 승부가 결정됐다.

먼저 이번 대회에 출전한 싸움소들의 뿔의 특징을 살펴보면 비녀처럼 옆으로 누워 있는 뿔을 비녀뿔, 앞으로 향한 뿔을 옥뿔, 뒤로 누워 있으면 재빼기뿔, 뿔의 위치와 크기가 다르면 짝빼기뿔, 굵고 긴뿔은 통뿔, 뿔이 하늘로 향해 있으면 노고지리뿔 등이 있다.

싸움소들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여덟가지 기술을 익히는데, 힘으로 밀어붙이는 밀치기, 머리를 가격하는 머리치기, 목을 공격하는 목치기, 배 옆구리를 공격하는 옆치기, 뿔을 걸어 제압하는 뿔걸이, 뿔을 타격하는 뿔치기, 머리를 상대 목에 거는 들치기, 가볍게 머리를 수 차례 가격하는 연타 등이 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싸움소 중에 갑종 체급으로 출전한 범이(일명 호랑이)가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금까지 전국대회에서 6연패, 38연승을 이어 오다가 1회전부터 강적을 만나서 18분여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이기고 올라오기는 했지만 준결승전에 그만 체력이 딸려 4위에 그치고 말았다.

싸움소들의 체력보강은 십전대보탕을 비롯하여 보양식으로 황구렁이, 뱀, 미꾸라지, 낙지 등을 먹이며, 탈진했을 때는 피로회복제로 산삼을 먹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대회에서 우승한 싸움소는 1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소싸움 경기를 지켜보는 관람객들
소싸움 경기를 지켜보는 관람객들 ⓒ 김성철
이번 '진주 전국민속 투우대회'는 역대 전국대회 중 가장 많은 상금을 내걸었으며, 전국 각지에 있는 유명한 싸움소들이 거의 출전하여 경기를 치러, 소싸움 대회로 보면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싸움소들이 첫날부터 일진일퇴 공방을 벌이다보니 경기 일정이 늦어져 대회를 하루를 더 연장하게 되었고, 그만큼 관람객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흥미진진한 경기를 제공하여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사를 갖게 했다.

이번 대회기간 동안에 진주 투우경기장에는 7일간 국내외서 80여만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갔으며,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 기자들도 관심과 열의를 갖고 취재를 했다.

진주 소싸움의 유래는 여러 설(說)들이 파다하지만, 일반적인 설(說)에 의하면, 농경문화가 정착한 부족 씨족 시대에 소주인(牛主)이 여름날 산과 들에서 소에게 풀을 먹이다가 다른 소들과 싸움을 붙여 이를 즐겼고, 추석에는 부족 씨족단위로 모여 추수를 끝낸 마른 논이나 마른 저수지 등에서 소싸움 놀이를 한 것에서 유래된다고 전해진다.

진주 소싸움은 삼국시대에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기념행사로 소싸움놀이를 시작해서, 고려 말부터 진주를 중심으로 소싸움이 민속놀이가 계승되어 천여 년 동안 소싸움의 역사와 민족혼을 잇고 있다.

일찌기 위암 장지연 선생은 '진양잡영' 시 12수를 발표하면서 "진주는 투우놀이가 성하여 천의 군중과 함께 충돌을 크게 열면 뛰어 오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일대장관 이더라(경남일보 1909년 11월 23일자)"라고 진주 소싸움의 정경을 묘사하기도 했다.

진주 소싸움대회는 1904년부터 시작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는 우리 민족이 억압된 울분을 소싸움으로 발산시켜 민족혼을 불사른다고 해서 진주 소싸움 대회를 강제로 폐지시키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진주소싸움을 소재로 하는 우표를 발행(1934년)하여 사용하여 오히려 민족혼을 고취시켰고. 8·15광복을 맞이하여 소싸움대회가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싸움소 싸우기 일보직전
싸움소 싸우기 일보직전 ⓒ 김성철
진주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씩 소싸움대회를 열어, 이번에 106회 전국민속 투우대회를 치렀고, 앞으로도 더 많은 전국대회를 열기 위해 진주시는 소싸움경기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 농림부에 신청허가 서류를 제출한 상태이다.

현재 경남 의령군과 소싸움경기장 유치경합을 벌이고 있는 중이지만, 진주시는 2006년까지 민자 1백억 원과 국고와 도비 80억 원을 들여 진양호 공원 내 옛 민속경기장을 활용 2만9000여 평 부지를 확보하여 관람객 5000석 규모, 진주 소싸움경기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대해 박연출(진주시 문화관광개발) 담당자는 '진주 전국민속 투우대회'를 개최하면서 "농촌에 있는 양축 농가들을 보호하고 사기를 진작시켜 축산발전을 촉진시키겠다"면서 "진주소싸움을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관광활성화를 통해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국제적인 주요 관광상품으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진주전국민속투우대회'각 부분별 입상자 순위

▒ 갑종(751kg 이상)

1위:장군(박재동, 창원). 2위:대왕(정이슬, 청도)
3위:도끼(박규선, 정읍). 4위:범이(하영효, 의령)

▒ 을종(651∼750kg)

1위:사또(안금순, 함안). 2위:백만불(강태욱, 횡령)
3위: 태백이(박정수, 김해). 4위:승리(송인기, 수원)

▒ 병종(570∼650kg)

1위:비호(송인기, 수원). 2위:악바리(유진태, 김해)
3위:차두리(김진권, 김해) 4위:녹수(황광주,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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