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철학자인 노겸 김지하(63)의 궤적을 좇는다는 것은 해방 이후 한국의 현대사를 반추하는 것인 동시에 남한 사상사(思想史)의 변화과정을 탐구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김지하. 그가 걸어온 길 위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폐결핵에 걸린 심약한 몸으로 한일협정 반대시위와 반유신 민주화투쟁에 매진한 20대 초반을 거쳐 '오적(五賊)'과 '비어' '타는 목마름으로'와 '황톳길' 등의 절창을 내놓으며 문학을 통한 인간해방에 기여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이후 동아일보에 발표한 옥중수기 '고행 1974...'로 재수감되기까지 김지하는 박정희 유신과 대적할 몇 안 되는 상징적 대항마로 역할했다. 이때까지의 김지하는 파괴를 통한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꿈꾸던 청년 혁명가였다.
하지만 1980년. 6년여의 영어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온 김지하는 달라져있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이전과는 달리 진보진영에서조차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91년 이른바 분신정국에서 조선일보 지상에 발표한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원제는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다)'를 둘러싼 논란은 그 극단적인 예다.
20~30대 김지하와 40대 이후 김지하를 변별할 수 있는 잣대는 '혁명'과 '생명'. 무엇이 피 뜨거운 혁명가 김지하를 삶을 관조하는 생명사상가로 바꾼 것일까?
'생명사상이란 무엇인가'와 '21세기와 생명사회론'으로 각각 이름 붙여진 김지하의 최근작 <생명학>(전2권·화남)은 누구나 궁금해할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읽힌다.
책은 김지하가 새로운 세기의 화두로 파악하고 있는 '생명' '평화' '상생'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은 물론, 동서양의 생명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여기서 김지하는 유럽의 생태학과는 그 기반과 실천방식에서 대별되는 한국적 생명학을 설파한다.
겨울날 칼바람 같은 공포와 폭압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봄은 1979년에도 왔다. 차가운 감옥바닥에서 맞이하는 봄. 극심한 고문후유증과 밀실공포증을 앓고있던 김지하에게 그 봄은 더 이상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처참한 상황에서도 콘크리트 벽에 뿌리를 내리는 개가죽나무. 김지하는 바로 거기서 '생명'을 봤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4년.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 혁명이 아닌 생명을 매개로 김지하는 또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까?
방현석, 후일담 문학의 극복을 위하여
- <2003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기자에게 "박완서와 김원일의 뒤를 이어 소설가 방현석(42)이 제3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마치 "민주노동당 권영길이 대통령이 됐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대학 학생회장 출신의 운동권에다 위장취업 공장활동 경력, 거기다 출세작 역시 언필칭 '과격한(?) 노동소설(내딛는 첫발은)'인 방현석이 3대 메이저신문사의 하나인 중앙일보에서 제정한 문학상(그것도 상금이 자그마치 5000만원인)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2003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문예중앙)은 수상작인 방현석의 '존재의 형식'을 비롯, 이청준과 최일남, 김영하와 한강 등의 후보작 8편을 모두 담았다.
지난날 민주화운동의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다양한' 오늘날을 담아낸 '존재의 형식'은 "개인 존재의 과제에서 생기는 문제점보다 역사·사회적 조건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먼저 고려의 대상으로 삼는 기존 후일담 문학의 경직성과 유형성을 극복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가부장과 편견의 벽을 넘어
- 노혜경의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불합리와 부조리에 관해 거침없이 문제를 제기해온 '논쟁적 인물' 노혜경(45)이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가부장제가 안고있는 문제점' '실천적 학자로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을 성찰하는 책을 냈다. 제목부터가 다시 '논쟁적'이다.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아웃사이더).
'여성이 해방되지 않는 한 인간은 여전히 노예이다' 혹은, '문학의 발전은 아버지를 배워 익히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고 심지어 살해함으로써 이루어져 온 것이다'라고 잘라 말하는 노혜경의 어법은 기존에 존재하는 질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저항과 거부 없이는 변화도 없는 법. 다소 거칠어 보일지라도 노혜경의 문제제기는 많은 부분 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다.
책은 모두 5부로 묶였다. 평소 노혜경의 지지자였다면 자신이 노사모가 된 이유와 활동과정을 기록한 4부와 노혜경의 문학론이라 할 5부보다는 착취당하는 여성의 문제를 다룬 1부 '여성이라는 전율'과 가부장제의 벽을 넘으려는 몸부림이 읽히는 2부 '아버지와의 전쟁'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스포츠신문 기자, 독자들과 소통하다
- 노창현의 <대관절, 스포츠신문 기자라굽쇼?>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꼈겠지만 세상엔 '숨겨진 선수'들이 정말로 많다. 특히나 언론사 인터넷사이트에 올려지는 기자의 글 아래 달리는 댓글을 읽다보면 '한국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라는 충격(?)에 새삼 놀라게 된다. 스포츠서울 기자로 일하고 있는 노창현 역시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았던 모양이다.
최근 <대관절, 스포츠신문 기자라굽쇼?>와 <열아홉살 스포츠와 열여섯살 연예가 만날 때>(도서출판 참벗)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노 기자와 독자들이 스포츠서울 인터넷사이트의 기자칼럼 '노창현과 흥야항야'에서 주고받은 대화로 묶였다. 노 기자가 던져준 하나의 문제를 집요하게 분석하고 파헤치는 독자들의 내공은 그야말로 '독자' 이상의 수준이다.
이를 감안한 듯 노창현은 책이 나오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댓글 독자들에게 "저의 사소한 문제제기에 보완책과 대안을 마련해준 여러분의 갑론을박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포츠신문에서 오고간 이야기인지라 언급되는 화제의 대부분이 가볍고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