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결단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정면 승부수이다. 그것은 대체로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아닌 여무야대(與無野大)라는 고립무원의 정치구도에서 노 대통령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예정된 행보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그 선택의 시기가 빨랐던 점이 '노무현식'이라는 것이다. 아니 빠른 정도가 아니다. 흔히 하는 날로 '놀랠 노'자를 연상할 만큼 노 대통령은 전광석화 같은 속전속결을 택했다.
불과 이틀 전인 10월 11일 주말에만 해도 노 대통령은 재신임 방법과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거대야당'을 당황케 한 노무현식 정공법
"방법과 시기 문제는 조금 더 의견을 들어보겠다. 다만 개인적으로 유리 불리 이런 것을 굳이 따지지 않겠다. 대통령 한 사람이 재신임을 받느냐 안 받느냐 이것이 모두에게 관심사이겠지만, 제 관심사는 대통령 한 사람이 재신임을 받느냐 안 받느냐보다 우리 한국의 정치가 제대로 가느냐 안 가느냐이다.
나는 대통령 한 사람이 중간에 희생하더라도 한국의 정치가 바로 갈 수 있으면, 그것은 임기 5년 다 채운 것보다 더 큰 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유리 불리를 따지지 않겠다. 다만 한국정치 발전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시기를 선택하겠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10월 10일 처음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별다른 의견을 들어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마당에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발로였다. 그런 점에서 독단적 결정에 가까웠다.
미적거리지도 않았다. 결자해지하라는 한나라당의 주문대로 재신임 방법과 시기를 신속하게 내놓았다. 오히려 빠를수록 좋다고 재촉하는 주문을 한 한나라당측이 당황해 할 정도다. 원래 음식점에 가서 주문을 했는데 음식이 너무 빨리 나오면 혹시 다른 손님이 주문했다가 물린 것을 가져온 것은 아닌지 의심부터 하는 법이다.
그는 12월 15일을 전후해 정책과 결부하지 않은 순수한 재신임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게 좋겠다고 '정공법'을 택했다. 그리고 국민의 신임을 받으면 국정쇄신을 단행하고, 신임을 받지 못하면 2월 15일경에 사임해 4월 15일 총선과 동시에 대통령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노 대통령이 이처럼 최도술씨 비리의혹과 '국민의 축적된 불신'에 대한 처방으로 '속전속결의 정공법'을 택한 것은, 그것의 유·불리를 떠나 노 대통령 자신도 '실토'했듯이, 현재의 적대적인 정치환경과 언론환경, 그리고 민심환경에서 내년에 총선거를 치를 경우 사실 그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적대적 환경 하에서 4년을 끌려다니는 힘없는 대통령이 되느니 차라리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게 낫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자학 통해 단련시켜온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에게 체화된 마조히즘
그러나 그 결단은 자학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켜온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에게 체화된 일종의 마조히즘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민주당의 분당을 '창조적 파괴' 혹은 '창조적 와해'라는 표현으로 미화하고 스스로 당적을 이탈해 무당파로서 고립무원을 자초한 것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을 '재신임'의 벽에 연신 머리를 부딪치는 '자해공갈단'으로 희화한 <한겨레> 10월 13일자 장봉군 화백의 만평은 그 가학취미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그런 자학성 때문에, 모든 권력 수단을 버리고 스스로를 '무장 해제'한 노 대통령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행은 '이래도 나를 재신임 안해줄래?'라는 '대국민 협박'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잘못해 놓고 남이 비판하면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흔드는 위기상황을 스스로 연출한 뒤, 왜 나를 흔드느냐고 상대를 역공하면서 상황을 타개해온, 상투적인 노무현식 '네탓 정치' '책임 전가 정치'의 전형"이라고 공격한 김민석 전 의원의 진단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재신임 카드'의 목표를 △청와대를 겨냥한 비리수사의 예봉을 막아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재신임 방법론' 논란으로 야권을 혼선에 빠뜨리기 △가장 유리한 재신임 방안을 택해 정치적 불안을 두려워하는 국민들의 안정희구 심리를 이용해 '울며 겨자 먹기식'의 '소극적 신임'을 얻어냄으로써 그간의 실정 전체에 대한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으로 분석한 김민석 전 의원의 정치공학적 접근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또 그의 발언이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할수록 자신의 입지와 활동공간이 넓혀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해득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노 대통령은 이른바 '코드' 맞는 사람끼리 어울리는 '동아리 정치'와 '뺄셈의 정치'를 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의 지지세력을 이탈케 한 대북송금 특별검사법 수용과 민주당 분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때 열렬한 지지자였다가 그의 '오기 정치'에 식상해 비판자로 돌아선 개별 정치인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고작 '설렁탕 한 그릇 사라'는 소박한 부탁을 외면해 '경선 지킴이'에서 졸지에 '국민 사기극' 자해를 벌인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 여러 경로로 전화 한 통화 넣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도 전화 한 통화를 안해 여당의 '차기 후보'에서 '야당의 간판'으로 나서게 된 추미애 의원, 그리고 '긴한 할 얘기가 있다'며 얼굴 좀 보자는 데도 한사코 만남을 거부해 비판자로 돌아서게 된 한화갑·김경재 의원이 과연 사사건건 발목을 잡은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더 도무지 함께 갈 수 없는 '반개혁적' 인사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점에서 '뺄셈의 오기 정치'인 것이다.
'이왕 깨질 것이라면 철저하게 망가지자'는 무서운 승부근성
윤성식 감사원장 내정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을 때 보여준 노 대통령의 모습도 '자학적 오기 정치'의 일면을 보여준다. 노무현 대통령은 감사원장 인준 표결 이틀 전에 참모들로부터 동의안이 부결될 것 같다는 보고를 듣고서도 갑자기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국회의 도움을 간곡히 호소했다.
그의 예고에 없던 기자실행은 호소에 대한 기대보다는 끝까지 야대 국회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왕 깨질 것이라면 철저하게 망가지자'는 무서운 승부근성이 작동한 것이라는 후문이다.
물론 이런 고행을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 그 자신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기존의 여소야대 구조에서 거대야당을 상대로 민주·개혁·평화·통일세력이 서로 힘을 합쳐도 버거운데 인적 청산과 신당 타령으로 아까운 정치개혁의 시간을 허비했으며, 결국은 민주당에 남은 정치인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세우며 분당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분당만 안되었어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은 부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 분당 되기 전의 민주당이 똘똘 뭉치기만 했어도 부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자신을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가 '골고다의 예수' 되기를 자처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자학을 통한 자기 단련과 도덕적 결벽증은 '애정결핍증'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국회도, 언론도, 지역민심도 나쁘다는 노 대통령이 밝힌 재신임 결단의 공식적 배경설명도 따지고 보면 애정결핍을 호소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숱한 고비를 겪고서야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비주류였기에 민주당 후보가 된 순간부터 주류 정치권으로부터 '튀는 언행'을 고치라는 주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이후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래서 삼손의 힘이 그의 야생마 갈기 같은 머리칼에서 나오듯, 노무현의 힘은 그의 '야성'에서 나오는데 '노무현답지 않은 변신'이 지지율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 주위에는 칭찬하는 사람은 없고 전부 야단치는 사람만 있냐" 신세 한탄
'후보 흔들기'라는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다음에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참모들은 이제 '대통령은 후보 때와는 다르다'며 과거와는 다른 노무현을 요구했다. 오랫동안 비주류 정치인으로 야생마처럼 살다가,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주류사회'에 편입된 이후 그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요구한 것은 '과거와는 다른 노무현'이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가 접한 것은 늘 갈등의 연속이었다. 국가정책이 대부분 양단간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이라크 파병, 새만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등 한결같이 어느 한쪽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쉽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권력과의 '불편한 관계'가 오래 계속되다보니 대통령은 이들 보수 언론들이 자신을 적대시하며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는 인식 하에 신문방송을 '심심풀이 땅콩'으로 재미삼아 보거나 아예 볼 필요조차 없다는 '신념'을 표출하곤 했다. 그렇다 보니 참모들 또한 조중동에서 지적하는 정치경제사안 중에 수긍하는 대목이 있어도 이를 건의하기가 분위기상 쉽지 않고, 설령 건의해도 대통령이 일축해버려 참모들이 아예 입을 다무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자주 들으면 신물이 나는 법인데, 하물며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참모들과 사회 원로들까지도 만나면 '잔소리'와 '쓴소리'만 하니, 아무리 권위를 벗어던졌다고 해도 명색이 대통령인데 그로서도 짜증이 날 법도 하다. 그렇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낯을 가리게 되었다.
사실 노 대통령은 정치인치고는 얼굴이 두껍지 못한 축에 든다. 얼굴에 '철판'을 깔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호불호가 뚜렷한 것은 대중 정치인에게 약점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대중 정치인이라면 설혹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만나더라도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그걸 감추지 못하기 때문에 아예 그런 자리 자체를 기피하는 스타일이다.
"선배님, 이번 평통 자문위원들은 노무현이 팬들로만 뽑았는 모양이죠"
그래서 노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내 주위에는 어떻게 칭찬하는 사람은 없고 전부 야단치는 사람만 있냐"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9월 24일 자신이 의장인 민주평통자문회의 제11기 전체회의가 열렸을 때의 일화는 노 대통령이 그동안 얼마나 애정에 결핍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전체회의에 잠실체육관에 운집한 1만여 명이 넘는 민주평통자문위원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근래에 이런 열렬한 환영을 받아본 적이 없는 노 대통령은 연신 싱글벙글 화색이 만연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인사말을 마치고 대회장을 떠날 때 자문위원들은 더 큰 박수로 환송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자신의 부산상고 선배이자 대선후보 시절 후원회장을 지낸 신상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선배님, 이번 평통 자문위원들은 노무현이 팬들로만 뽑았는 모양이죠".
다음날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을 만난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 700명은 더 열렬하게 노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노 대통령은 "제 딴에는 잘 하느라고 하고 그러는데 저녁에 TV만 보면 기가 죽고 그 다음 아침에 신문을 보면 기죽는 수준이 아니라 눈앞이 캄캄하다"고 하소연했다. 오랜만에 칭찬을 받은 노 대통령은 "(언론으로부터) 매도 자꾸 맞으면 맷집이 생긴다"면서 "자꾸 언론이 거짓말로 비방하고 공격하면 신뢰가 떨어져 지금처럼 1년 지나면 언론의 공격이 거의 무력화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런 일화는 대통령도 평범한 인간임을 새삼 되뇌이게 한다. 후보경선 때부터 늘 고치고 다듬으라는 잔소리와 쓴소리만 들어온 노 대통령은, 지금 정색을 하고서 잘한 일은 칭찬도 좀 해주면서 비판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애정결핍증을 앓는 노 대통령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약'은 애정 어린 칭찬이다.
그의 재신임 결단 또한 '애정을 달라'는 '공개 구애'를 달리 표출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