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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로서 운동회에 참석하게 된 지도 올해로 다섯해 째가 되었다. 첫 두해는 일본의 보육원에서, 세해 째는 한국의 한 신도시 유치원에서, 네해ㆍ다섯해 째는 지금 살고 있는 일본의 작은 지방도시 유치원에서 운동회를 치뤘다. 본의아니게 여섯 살 짜리 아이와 함께 3종류의 운동회를 경험한 셈이다.

이 정도면 이골이 날 법도 하건만 전날의 장보기부터 시작해 당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까지 손과 맘은 여전히 바쁘기만 하고 가슴은 연신 콩닥거리니 아직도 학부모로서의 갈 길은 멀기만 해 보인다.

▲ 자, 이제부터 몸풀기 체조를 시작으로 운동회를 시작합니다.
ⓒ 장영미
일본 보육원에서의 운동회

우리 아이의 첫번 째 운동회는 교토의 한 절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였다. 만 1살 5개월 무렵과 그 이듬해의 운동회에 참가했다. 이곳의 특징은 운동회 내내 아이들이 맨발로 뛰고 달린다는 것과 장애우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보육원(보육소)은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의 보육을 담당하는 곳이므로 보육 과정에 학부모를 참여시키기가 여의치 않다. 그래서인지 운동회의 규모도 작았고, 준비나 진행과 관련하여 어떤 강제도 없었으며, 학부모가 담당하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운동회 전날에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맨발의 아이들이 발을 다치지 않도록 운동장에 모래를 뿌리고, 돌을 줍는 일을 도왔고, 당일에 기구 설치, 심판 등 아빠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학부모가 참가하는 경기도 ‘큰줄넘기’한 종목이었다.

운동회의 목적 중엔 각 연령에 이른 아이들이 성취한 운동능력을 대내외에 확인시키는 것도 있지 않은가? 첫해 째의 운동회에서 우리아이는 운동장 위를 맨발로 아장아장 걷기만 하면 되었다. 자동차를 타거나, 친구가 탄 자동차를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운동능력을 한껏 뽐낼 수 있었다.

그리고 2살이 된 이듬해엔 운동장 한가운데에 마련된 구름다리에 기어오르거나, 계단을 올라 뜀틀에서 뛰어내리기, 평균대 위 걷기, 미끄럼타기 등 이곳저곳 다니면서 놀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일본의 운동회엔 꼭 ‘꾸미기체조’가 등장한다. 4, 5세 아이들이 일사불란한 몸놀림으로 피라미드, 부채 등을 만드는 꾸미기 체조를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 4, 5세반 아이들의 꾸미기체조, '비행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장영미

▲ 5세반 아이들의 꾸미기체조, '물구나무 서기'
ⓒ 장영미
마지막으로 이곳 보육원 운동회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우도 다른 아이들에 섞여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 처럼 평균대 위를 걷는 지체장애아이. 더디고 실패가 잦았다.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며 맘 속으로 응원을 보냈고, 결국 아이는 평균대를 전부 걸어 마지막 착지를 마쳤다. 끝까지 마치도록 격려하는 선생님과 박수로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 해낸 아이의 얼굴에 비춰진 안도감 섞인 미소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국 신도시 유치원에서의 운동회

한국에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않아 아이가 유치원 입학 연령이 되었다. 그곳의 유치원 사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 근처 유치원들을 돌아다녔다. 맘에 드는 유치원은 이미 정원이 꽉 찼다고해서 차선 가운데 요모조모 고려하고 아이의 의견을 물어 어렵게 한군데를 정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토록 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의 분위기를 우선으로 살피고 다녔건만 정작 아이를 보내기로 정한 곳의 원장선생님은 만나지도 못한 채 결정을 하고 말았다. 여러 유치원을 다녀보니 교육내용이며 환경 등은 모두 비슷비슷해 보였고 사립유치원의 경우 원장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그랬는데 말이다.

그것이 원인이었을까? 입학 면담 중에는 드러나지않아 몰랐던 유치원의 방침 중에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고 급기야 내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학부모의 참여를 매우 제한한 점이다. 물론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였지만, 이면에는 잘난 신도시 엄마들의 ‘쑥덕쿵 잔소리’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약 9개월간 아이를 보내면서 다른 엄마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유치원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학부모를 신뢰하지 못하고, 학부모가 유치원을 믿지 못하는 속에서 유치원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생길 리 없었다.

그리고 제일 신도시 유치원답다고 느꼈던 때는 바로 운동회였다. 유치원에서도 멀리 떨어진 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운동회를 열었는데 모든 준비와 진행을 외부의 레크리에이션 전담 회사에서 나와서 하는 것이었다. 줄다리기도 했고, 달리기도 했고, 모래주머니 던지기도 했는데 참으로 낯설고 어색했다. 잘 짜여진 신식 운동회에 와서 향수와 감동을 기대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어쨌든 아이 보다 내가 더 즐겁고 신나게 뛰어다닌 건 사실이니 할 말은 없다.

운동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않아 다시 일본으로 오게 되었으므로 한국의 다른 유치원들의 운동회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전부 이렇게 신식으로 바뀌지는 않았을테지….

▲ '줄다리기'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운동회의 단골 종목이지요.
ⓒ 장영미
일본 지방도시 유치원에서의 운동회

매년 그렇듯이, 운동회를 앞두고 거의 한달 동안 아이는 운동회의 연습과 준비로 바쁘고도 신나는 날들을 보냈다. 매일 뛰고, 달리고, 구르고, 춤추느라 집에 돌아올 때의 모습은 늘 땀범벅에 흙투성이였다. 그렇게 움직이고도 아이는 간식을 먹은 후엔 공원으로 달려 가 한 두시간씩 놀고 들어왔다. 게다가 집안에서의 놀이도 거의 운동회 연습의 연장선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환절기인데 감기에도 걸리지 않고 힘들어 지치지도 않는 녀석이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 3, 4세반 아이들의 모래주머니 던져 넣기
ⓒ 장영미
그러나 운동회 준비로 바쁜 사람이 어디 아이들 뿐이었겠는가.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작년에 유치원 PTA(학부모회의)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곳 유치원의 행사들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경우, 연간 행사 중에서 운동회와 졸업식이 PTA 활동 중 가장 비중이 크고, PTA에서 할 일이 제일 많은 행사였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관련된 부분을 맡고 나머지 학부모 경기, 내빈 경기, 상품 준비, 경기 준비 및 진행, 심판, 구조물의 설치 및 철거, 아이들 돌보기 등은 전부 학부모들이 맡는다. 그래서 운동회 당일엔 아빠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 아빠들이 내년도 예비신입생 꼬마들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명 '보물줍기'인데 재원생들이 그린 그림이 표지로 들어있고, 봉투 안에는 공책, 연필 등 여러 가지 보물들이 들어있답니다. 보물이 있는 곳까지 뛰어와 줍기만 하면 되지요.
ⓒ 장영미
아이들이 운동회 연습에 들어가면 PTA도 상급반의 임원들을 중심으로 운동회 준비를 시작한다. 먼저 운영위원회의 임원들이 학부모 및 내빈의 경기 수와 종목을 정하고 재원생, 졸업생, 예비신입생, 내빈 등에 나누어 줄 선물꾸러미를 위해 장을 본다. 그 후 전체 임원들이 모두 모여 인원수에 맞춰 선물꾸러미를 꾸려서 큰 상자에 담아 놓는다.

그런 후 운동회 일주일 전에 전체 학부모회의가 열린다. 두 세가지 정도 되는 학부모 경기의 출전자를 정하고 운동회 당일의 역할 분담을 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고르게 참여할 수 밖에 없도록 짜여져 있는데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빼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올해의 학부모 경기는 ‘줄다리기’, ‘공 굴리기’, ‘굴곡인생’의 세 가지 였다. 작년엔 줄다리기에 출전했다가 승패가 갈리지 않아 연거푸 두 번을 팽팽하게 맞섰던 탓에 경기가 끝난 후 기절할 뻔 했었다. 게다가 며칠 뒤엔 근육통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그래서 올해는 줄다리기를 피해 만만해 보이는 ‘공 굴리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는 경기가 한 종목, 거기에 아이와 함께 포크 댄스도 해야 했다.

▲ 엄마, 아빠들도 젖먹던 힘까지 다해 "영차 영차"
ⓒ 장영미
운동회 당일에 분담해야 할 역할엔 ‘경기 참가자 소집’, ‘경기 진행 및 심판’, '아이들 대소변 등 돌보기’, ‘주차장 담당’이 있었고 오전 담당과 오후 담당으로 나뉘어 있다. 작년에 이어 오후에 ‘아이들 돌보기’를 맡았다.

이곳 유치원 운동회도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치룬다. 올해 원장선생님이 새로 바뀌면서 유치원 운동장에서 치루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런데 PTA와 선생님들이 ‘그러면 규모도 축소되고 비좁아서 안된다’고 반대를 한 모양이다. 큰 운동장에서 하려면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이 더 힘들 터이지만 모두들 지금과 같은 운동회에 자부심을 가진 때문이었다.

▲ 경기 준비물을 챙기는 PTA의 임원들
ⓒ 장영미
주변의 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면 꼭 한번은 PTA 임원으로 일하겠다고들 한다. 다른 엄마들과 교류하면서 친하게 어울릴 수 있고, 유치원의 여러 행사에도 깊이 참여할 수 있어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특혜가 돌아가는 일은 없다. 다만 내가 즐겁고, 가까이서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볼 수 있어 좋고, 아이가 엄마를 자주 볼 수 있어 좋아한다는 정도의 잇점이 있을까?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1955년 창립되었다.(근처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치원도 있긴 하다) 3대(代)가 이 유치원에 다닌다는 가정도 있고, 2대 째가 다니고 있다는 가정은 그보다 더 많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유치원에 대해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역할분담이 잘 되고 잘 짜여진 운동회가 가능한 것도 역사와 경륜이 쌓인 덕일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퇴임하신 초대 원장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는 데에 놀랐다. 알고보니 사리사욕 채우기에 바쁜 다른 유치원들과 달리 학부모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교육을 해오신 때문이었다. 전 원장선생님은 요즘도 70중반을 넘긴 연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신다.

어느 곳의 운동회이든 아이들이 열심히 뛰고 달리며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모습은 흐뭇하기 그지없다.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저렇게 자랐을까, 어느 틈에 저런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언제 저런 것을 다 익혔을까’등 만감이 교차한다. 아이도 운동회를 계기로 여러 종류의 줄넘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모양의 꾸미기 체조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특히 '집단율동'이 기억에 남는지 운동회가 끝난 지금도 집에 돌아오면 한번 씩 보여주곤 한다.

올해로 유치원에서의 운동회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이 보다 오히려 내가 더 섭섭했다. 아이와 함께 춤을 추는 것도, 함께 경기에 출전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많이 서운했다. 내년 초등학교에서는 어떤 모습의 운동회를 하게 될까? 아이보다 다 커버린 엄마가 더 기대하고 궁금해해도 되는 건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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