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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양문
사실 이 책은 평전으로서 그리 좋은 책이 아니다. 대부분의 평전이 그러하듯 이 책은 인물과의 '거리'를 지키지 않고 지나치게 찬양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그리고 시대 상황과 인물에 대한 새라 파킨의 개인적인 생각이 여과되지 않고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책은 페트라 켈리에 대해 가졌던 고정 관념을 많이 깨 주었다. 페트라 켈리는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의 딸로 태어나 그것으로부터 평생 압박을 받았고, 고위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일찍부터 정치에 눈을 떴다. 그것은 60년대 말의 변화에 대한 그의 관점에서 잘 드러난다.

"비폭력의 상징이던 한 남자(마틴 루터 킹)의 죽음에 대해, 그를 본받는 방식이 아니라 그의 병법에 위배되는 난폭한 방식으로 애도하다니! 어째서 미국의 대학생들은, 혁명의 이름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벌이는 프랑스와 독일의 동지들을 흉내내면서 대학 내의 사소한 문제까지 무작정 길가로 끌고 나오며 난동을 부리는 것일까? 그녀는 이들을 지켜볼 뿐 결코 동참하지 않았다"(96∼97쪽).

사실 이 시기를 다룬 타리크 알리와 수잔 왓킨스의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삼인, 2001)나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이후, 1999), 로널드 프레이저의 <1968년의 목소리: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박종철출판사, 2002)를 읽어보면 페트라 켈리의 시선이 현실을 지극히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뛰어난 조직가이자 활동가로서 페트라 켈리의 삶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반핵 운동에 있어 그는 거의 신화적인 힘을 발휘했다. 켈리는 1970년 자신의 어린 동생을 암으로 떠나보내면서 방사선과 암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핵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음을 깨닫고 반핵 운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반핵 운동은 페트라가 몰두하는 중요한 활동이지만, 이는 결국 비폭력을 지향하는 그녀의 새로운 정치 개념의 실천 방향 중 하나일 따름이었다. 페트라가 생각하기에 이 세계는 아주 간단히 그리고 아주 명백히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으니, 하나는 생명을 부정하는 쪽(즉 폭력의 세계)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긍정하는 쪽(즉 비폭력의 세계)이었다. 사람 자체도 그렇고 사람들의 행동 방식 역시 이 두 가지 분류로 확연히 나뉘어졌다. 그런데 세상을 비폭력의 원리로 분석하려면, 그리고 녹색당이 원하는 종류의 세상 즉 '살며 사랑할 만한 세상'으로 설명하려면, 그 방법 역시 비폭력적이어야만 했다"(198쪽).

이 메시지는 지금 한국에서 부안, 위도 주민들에게도 의미를 가진다. 즉 핵을 반대하는 싸움은 단순히 그 지역 주민들의 이해 관계가 아니기에 다른 지역으로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는 싸움은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이어야 한다(물론 폭력/비폭력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다시 생각해야 하겠지만). 단순히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다른 운동들과 힘을 합치고 함께 노력하는, 대안적인 생활 양식을 생성하며 시대를 거스르는 '반역'이어야 한다.

'진실과 사랑에 근거해 세상을 뒤집는 힘'은 만화 속 세일러문에게만 있는 게 아니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속에도 있다.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

새라 파킨 지음, 김재희 옮김, 양문(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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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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