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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광재
역사적으로 해석할 때 바닥에 정교하게 박힌 박석 출토는 금성관의 위상이 다른 고을 객사에 비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궁궐에만 깔려있는 박석이 금성관에도 모서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깔렸던 점으로 미뤄 당시 금성관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종묘 바닥에 사각형으로 깔려있는 검은색 전돌과 향교 명륜당 앞처럼 금성관 앞에도 월대, 즉 기단석이 출토되고 있어 앞으로 발굴 결과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지향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객사인 금성관 주변 일대에 박석이 깔려 있다는 것은 궁궐 다음으로 높은 위상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객사 바닥에 흙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유일하게 금성관 바닥은 전부 박석으로 처리되어 있어 다른 객사보다 격이 높았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국에서 유일하게 금성관 일대 바닥에 정교하게 자연석이 깔려 있어 발굴이 끝난 뒤 전국에서 객사 건물의 원형을 보기 위해 금성관으로 몰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객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금성관은 이번 발굴 조사 과정에서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박석까지 깔려 학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객사란 지방관아의 중심 건물로 고을 수령이 매월 초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를 놓고 망궐례 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고을 수령의 동헌보다 격이 높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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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신문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정치, 스포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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