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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할머니
어머니와 할머니 ⓒ 공응경
이른 아침 발길을 재촉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간호사 선생님은 이미 상담신청서를 기재하고 계십니다. 이 병원을 집처럼 들락날락한지 8개월이 지났으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설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분히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정신과 진료는 좋은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퇴원을 미뤄 왔던지라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부모 자식 간에는 배울 것이 많다는데 저는 그동안 인내심을 배웠습니다. 잠시지만 내게 좀더 나은 부모가 있었다면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보다 더 많은것을 배우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용실을 함께 가면서
미용실을 함께 가면서 ⓒ 공응경
퇴원한다는 말에 어머니도 마냥 신나서 싱글벙글 웃음을 그칠 줄 모릅니다. 병원을 나오는 길에 창가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친구 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같은 방을 쓰며 나눈 정에 어머니도 못내 발길을 때지 못합니다.

처음 정신병원이란 곳에 들렀던 생각이 납니다. 이른 봄 유난히도 화창한 날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무표정하고 아무런 의욕이 없는 어머님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며 병원 앞뜰을 쓸쓸히 걸어 나왔습니다.

간혹 면회를 신청할 때 다른 보호자분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입원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울며 나오는 보호자분들은 입원한 지 얼마 안 된 경우이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말다툼을 하는 경우에는 아주 오래되었거나 입원한 지 얼마 안 된 경우로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신병원도 일반병원과 똑같다는 것을 인지하고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기 되기까지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줍니다.

저희 어머니는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태가 좋아져서 식욕도 왕성해 지셨습니다. 몇 개월간 늘 음식을 사가지고 가서 어머니와 대화를 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이렇게 길게 어머니와 대화를 하게 된 게 정신병원에 입원한 덕분이니 삶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때론 맛있는 거 사오라고 투정도 부리시는 어머니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조목조목 이야기 해주십니다. 간혹 누군가 면회를 오면 간식거리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덩치 큰 아줌마가 과자를 독차지해버렸다는 이야기부터 달리기시합에서 다리가 엉켜서 꼴지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에버랜드에 놀러가서
에버랜드에 놀러가서 ⓒ 공응경
옆에 아줌마가 손목을 다쳐서 빨래를 못하는데 대신 빨래를 해주어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어머니가 병원 앞뜰에 나왔을 때 눈물을 머금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던 분이 누구인지 저는 알 수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오신 후 거울을 보며 염색을 못해서 할머니 같아 졌다며 걱정을 하십니다. 여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아름다워 보이고 싶나봅니다. 제가 보기엔 여전히 예쁘신데, 어머니는 다 늙어서 뭐가 예쁘냐며 마냥 웃습니다. 그래도 예쁘다는 말이 듣기 싫지는 않았나 봅니다.

모처럼 온 식구가 미용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진기를 들이대자 할머니는 다 늙은 노인네 사진을 찍냐며 버럭 화를 내십니다. 정말 오랜만에 할머니도 외출을 하십니다.

까맣게 염색을 하고 난 어머니는 10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마음도 그렇게 오랫동안 젊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행복한 하루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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