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마라톤 영웅 정성옥(29)씨와 남측의 원로 스포츠 기자 조동표(79)씨가 4년만에 감격의 만남을 가졌다.
25일 오전 10시부터 북측 숙소인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내외신 취재진 수십 명이 몰려 '평화의 섬' 제주에서 이뤄진 '남남북녀(南男北女)'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당초 공개만남을 약속했던 북측 대표단에서 기자회견 방식에 문제를 제기, 만남이 1시간 20분이나 지연되는 등 이들의 해후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정씨와 조씨는 남북 조직위 관계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20여 분 동안 그 간의 안부를 물으며 당시의 감회에 젖었다.
4년만에 만난 '남남북녀(南男北女)'
다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타난 정씨는 조씨를 만나자 마자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많이 늙어 보이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조 선생님을 만나뵈니 할아버지 같고 저는 친손녀 같은 느낌입네다."
"얼굴이 조금 변하신 것 같다"는 말에 조씨는 "당시 나이가 75살"이라며 "세비야대회 이후 한 번 더 우승해야지 않느냐. 성옥이가 더 열심이 뛰어주길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말로 화답했다.
이에 정씨는 "나도 그런 생각으로 한 동안 연습을 했다"며 "하지만 더 큰 스포츠 지도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씨는 조선체육대 3학년으로 체육 지도자과정을 밟고 있는 상태.
그의 남편 김중원(김일성대학교 재학)씨 역시 북한 마라톤 대표선수로 북경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등 국제 대회에서 세 번의 우승경력을 갖고 있다.
조씨는 "이제 아들도 낳고 후진 양성을 위해 뛰어 들었다고 하니 좋은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며 정씨의 두 손을 잡았다.
그런데 정성옥 선수와 조동표 기자는 4년전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됐을까.
"당시 북한 우승 전혀 예상 못해"
"당시 세비야 대회때 북한에서 김창옥과 정성옥 두 명이 출전했어요. 하지만 전혀 우승은 예상치 못했지요."
정씨는 지난 19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7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당시 취재 온 조씨로부터 영어 통역 도움을 받았던 인연을 갖고 있다.
당시 조씨는 프레스룸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다 뜻밖에 북한 선수가 막판 추격에 나서는 것을 보고 급하게 경기장으로 나갔다.
"정씨가 결승선을 1위로 끊고 숨을 몰아쉬는데 '플래시 인터뷰어'들이 몰려들었어요. 트랙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찰나 대회 공식통역원들이 `Anyone who can speak Korean?(한국어 하시는 분 안계세요?)'라고 외치자 바로 'me!(저요)'라고 외쳤지요"
바로 정씨의 '플래시 인터뷰어'로 참여한 조씨는 바로 "40km 이후 1위를 따돌리는 힘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김정일 장군님이 우리에게 말하길 '늘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기억하고 도망쳤다"는 정씨의 대답을 그대로 통역했고 외신들이 이를 기사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통역이 그처럼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미처 몰랐다"는 조씨는 "그 후 성옥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면서 많은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평양으로 꼭 오시라요"
정씨는 지난해 결혼한 남편 김씨 사이에 한 살된 아들(효일) 하나를 두고 있다.
"아들 이름은 김정일 장군이 직접 지어줬지요. 아이도 볼겸 평양으로 꼭 오시라요."
정씨는 "통일이 됐으면 결혼식에도 올라갔을덴데 안타까웠다"는 조씨에게 "오래 사시면 꼭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위 관계자는 "아마 조씨는 올해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농구대회 때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비야 대회 우승 당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우승한 정성옥 선수를 마중하기 위해 평양역에 100만 명의 환영인파가 몰릴 정도였어요."
조씨는 "그 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고 우리 국회의원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는 등 북측 스포츠계 최고의 스타가 됐다"고 말했다.
"오래오래 사셔서 통일을 봐야지요 "
이후 조씨는 각종 대회 취재에 나갈 때마다 그를 알아본 이가 많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호주 시드니에 갔을 때 인터뷰를 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는 조씨는 "그 후 해외취재 등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씨의 안부를 물으며 같은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왔다.
또 당시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후 감격한 정씨는 통역을 도와 준 조씨의 고마움을 늘 잊지 못한 채 마음속 한켠에 간직해 왔다.
이날 정씨는 조씨에게 북한 특산품인 들쭉술 2병과 '려과담배' 한 보루를 선물로 전달하며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그리고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살자는 안부도 잊지 않았다.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좋은 일 하시는 분은 평양에 꼭 오시더라우요."
| | '남남북녀' 재회 왜 늦어졌나 | | | 북측, "순수 만남을 상업화한다" 뒤늦게 문제 제기 | | | |
| | | ▲ 기자회견장 앞세 세워졌다가 철수된 홍보 배너. | ⓒ양김진웅 | 북한 마라톤 영웅 정성옥 선수와 남한 스포츠 원로기자 조동표씨의 만남이 왜 늦어졌을까?
사실 이날 만남은 북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북한 참가단이 도착한 지난 23일 공식 오찬장에서 정성옥 선수가 "19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을 당시 통역에 도움을 준 남한 기자를 찾고 싶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오면서 구체화된 것이다.
정 선수와 조씨의 만남에 대한 공식적인 확정은 이날 새벽 2시반 쯤 이뤄졌다. 양쪽 연락담당자를 통해 마라톤 논의을 벌인 결과 양측은 기자회견 형식으로 서로의 만남을 갖는다는 내용을 어렵게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정 선수가 애타게 찾던 남측 기자와의 재회는 갑자기 북측의 보도진 철수 요구 등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20여 분간 지연됐다.
민족평화축전 남측조직위가 이날 오전 10시 북측 숙소인 라마다프라자제주호텔 소회의실에서 정 선수와 조씨와의 감격적인 재회 장면을 공식 기자회견 방식으로 추진한 것을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대해 축전 조직위 대변인실은 "정성옥 선수가 공식 기자 회견장을 꾸민 것과 많은 보도진의 취재에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며 "북측이 양측 보도진을 4명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해 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북측은 이날 "순수한 만남의 행사를 너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게 아니냐"며 매우 민감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꽃 테이블이 마련되고 '북 정성옥 선수, 남 조동표 기자 만남 기자회견'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대형 배너와 행사장 입구에는 '북 정성옥 선수, 남 조동표 기자 재회'라는 홍보 배너가 세워졌다.
모든 배너에는 장소를 제공한 '라마다프라자호텔 제주'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결국 행사장에 안팎에 내걸린 배너와 기자회견 테이블이 철거되는 소동이 빚어졌고 사진촬영 후 별도의 취재를 하는 방식으로 극히 제한적으로 취재가 이뤄졌다.
이에대해 주변에서는 남측 조직위에서 '북측과 사전에 약속했던 별도의 이행과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북측에서 불만을 터뜨린 것 아니냐"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예정됐던 북측 예술단과 취주악단 참가 취소로 인해 축전 준비와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대표적인 사례'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함께 남측 조직위에서는 북측 예술단과 취주악단의 불참으로 주관 방송사로 계약한 MBC측에서 자격을 반납하면서 재원 확보에도 차질이 발생하는 등 원만한 행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남측 조직위 관계자는 "북측의 입장에서는 만남 자체를 거창하게 '상품화'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 같다"며 "북한의 문화와 남측의 문화가 다름에서 오는 문제 정도이지 정치적인 고려는 없었다"고 말을 아꼈다. / 양김진웅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