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5일 토요일 청주 고인쇄 박물관 세미나실에서는 '청주 아리랑 한중 학술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선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청주 아리랑이 존재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우리 충북 지역이 아닌, 저 멀리 떨어진 중국 길림성에서 청주아리랑을 발견했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길림성 정암촌에 청주 아리랑이 전해져 온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1938년 일본이 한창 중국의 식민지화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그들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충청북도 청주군, 옥천군, 보은군 사람 180여 호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도문시 량수진 정암촌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곳에 이주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었고, 자식을 갑자기 잃은 사람, 일본인들의 요시찰인이 되어 피해 살아야 하는 사람 등 한 많고 눈물 겨운 삶을 안고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땐 넓고 좋은 땅은 중국인들이 차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숲 속의 척박한 땅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품었던 꿈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은 화전을 일구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그들이 고향에서 불렀던 노동요나 민요를 불렀고, 그것을 계속해서 보존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청주 아리랑은 중국의 민요연구가인 김봉관 선생에 의해 세상에 드러납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장 주덕해의 지시로 1952년부터 조선족민간예술을 발굴하기 시작했는데, 1978년 겨울 김봉관 선생과 그 일행은 정암촌에 도착하여, 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채록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신철이라는 예능인이 부른 노래가 있어 물어보니 청주 아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가 1978년 12월 14일입니다. 그 후 임동철 충북대 교수와 2002년 다시 찾게 되면서 "청주 아리랑"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청주 아리랑의 노래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달라당 달라당 갑사댕기 본때도 안묻어서 사주가 왔네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사주랑은 받아서 무릎에 놓고 한숨만 쉬여도 동남풍된다

시아버지 골난데는 술받아주고 시어머니 골난데는 이잡아주자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새애끼가 골난데는 엿 사다주고 며느애기 골난데는 홍두깨찜질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시아버지 죽으면 좋했더니 빨래줄이 끊어지니 또 생각난다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시어머니 죽으면 좋했더니 보리방아 묽어놓니 또 생각나네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시애끼가 죽으면 좋했더니 나무가리 쳐다보니 또 생각나네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서방님이 죽으면 좋했더니 잠자리 들적마다 또 생각난다
아리라랑 스리리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타령을 그 누가냈나 이웃집 김도령 내가 냈지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타령이 얼마나 좋은지 밥푸다 말구서 엉덩춤춘다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청주 아리랑은 앳된 소녀가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 아이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면서 느낀 소회나 감정을 구성진 가락에 실은 노래입니다. 이 아리랑은 경상도 아리랑이나 영천 아리랑과 같은 엇모리 장단이며 낮은 음으로 시작한다는 등의 유사점을 가지고 있지만, 가사가 독특하고 "아리랑 쓰리랑" 이라는 후렴구 대신 "아리라랑 스리라랑"이라는 독특한 후렴구를 가지고 있어, 아리랑의 원형에 가깝다는 평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충북 지방에서도 거의 사라지고 없는 청주 아리랑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면서, 우리나라에 소개가 된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리혜선 작가는 정암촌에 정착한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고, 돈 없고, 위안부의 위협이나, 일본의 시찰을 피하려는 등의 깊은 한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충북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고수하려는 집념, 호적관리제도 및 당국의 소수민족정책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얼마전 정암촌은 중국 길림성의 많은 시골 마을 중 민속촌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충북의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청주 아리랑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정작 본고장에서는 청주 아리랑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이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학술대회에 참여한 많은 교수, 작가들은 앞으로 청주 아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임병무 중부매일 논설위원은 보존과 전승에 대해 2가지 차원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김봉관 민요연구가가 채록한 민요는 기존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으로 자료가 변질된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하루속히 디지털 방식으로 자료를 재정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월드컵 대회 때 윤도현 밴드가 아리랑을 현대 감각에 맞게 개작해 전국민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을 예로 들며, 다른 서양음악과의 퓨전화를 시도해, 문화상품으로 계발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명대 이창식 교수는 우리나라와 이주지역의 문화 동질성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정암촌 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자며, 청주에서의 청주 아리랑 보존회를 시급히 만들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중국에서 온 여러 학자 및 작가 - 김봉관 민요연구가, 리혜선 중국 작가, 김성희 연변대 교수, 류연산 중국 작가- 와 한국의 교수 등의 관심있는 참여로 청주 아리랑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뒷풀이에서도 청주 아리랑을 열창하며, 이것에 대한 보존, 발전을 고심하여 청주 아리랑의 앞날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것을 아끼고 계승해야 할 일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인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