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한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드디어 번역, 출간되었다. 해외 언론들의 호들갑스러운 보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번역본을 기다려온 독자들은 시리즈의 5편이 될 이 작품에서 어느새 성장해 버린 해리 포터의 사춘기 시절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4권을 발표한 후 3년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화화를 꼼꼼하게 지켜보던 작가 조앤 K. 롤링은 이번에 출간된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좀 더 어둡고 음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공을 들였다. 이는 사춘기로 접어든 해리 포터의 성숙한 내면 세계를 그리는 데 있어서 한층 엄격해진 농담과 강렬한 반박들이 튀어나오는 '롤링'식 텍스트의 진화를 의미한다.
호그와트 마법 학교가 방학을 맞이하자 해리는 다시 이모집으로 돌아간다. 사사건건 해리를 못살게 구는 이모 내외와 이종사촌 더즐리를 마법으로 골탕 먹이던 해리에게 어느 날 아즈카반 감옥의 '디멘터(악령)'들이 덤벼들기 시작한다. 해리는 덤벼드는 디멘터들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과 더즐리에게 마법을 사용하게 되고, 급기야 '머글(마법사들이 일반인들을 부르는 말)'에게 마법을 사용했다는 죄명으로 청문회에 서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가 있는 런던 그리몰드 플레이스 12번지의 비밀 공간으로 간다. 그 공간은 다시 출연한 악한 마법사 볼드모트에게 대항하기 위해 착한 편에 선 마법사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불사조 기사단'의 본부다. 해리는 자신도 '불사조 기사단'의 단원으로 가입하고 싶다고 의견을 피력하지만,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방학이 끝나고 호그와트로 복귀한 해리는 심상치 않은 학교 분위기를 느낀다. 새로 부임한 돌로리스 제인 엄브리지 교수는 덤블도어 교수의 반대편인 퍼지의 심복이며, 예언자일보는 해리에 대해 악의적인 보도를 일삼는다. 마술부의 심장부에서는 볼드모트를 따르는 자들과 '불사조 기사단'과의 전투가 벌어지게 되고, 해리 역시 이 전투에 휘말리게 된다.
명실상부한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해리 포터의 이야기는 이제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소프트'한 환타지 소설을 넘어서 소년기를 탈출한 해리 포터의 '2차 성징'에 다다랐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게 된 해리 포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작업은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읽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단 말이지? 그거 참 대단한 배려였구나! 그래도 너희들은 여기 이곳에 있었잖아, 안 그래? 너희들은 줄곧 둘이 함께 있었잖아! 나는 한 달 동안이나 더즐리네 집에 처박혀 있었어야 했어. 난 너희들이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고, 덤블도어 교수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셔. 마법사의 돌을 구한 게 누구야? 리들을 없앤 게 누구지? 디멘터로부터 너희 둘의 목숨을 구해낸 게 누구냔 말이야!"
가장 친한 친구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고함치는 해리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소설 속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라난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혼란의 과정을 접하게 된다. 호그와트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던 해리가 누구에게나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기 시작하고 이성에게 눈을 뜨는 모습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이다.
작가의 펜에서 탄생한 주인공 해리 포터에게 다가서기 위한 사전 준비는 이런 심리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있다. 즉, 시리즈가 더해질수록 작가가 처음 의도했던 대로 해리가 어린 시절 여읜 부모를 위해 '복수심'이라는 과격한 감정을 갖게 되는 정당함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어둡고 심리적인 측면이 강해진 내용은 여느 시리즈보다 분량이 많아진 탓에 지리멸렬한 해리의 모험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할 소지가 있다. 초반에 상당 부분 할애했던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커다란 스케일만큼이나 더욱 풍성해진 작가의 상상력은 이번에도 역시 믿음직스럽다.
시름에 잠겨 있는 '실업 시대'가 한없이 안타까운 지금,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으로 다시 돌아온 해리의 신비로운 마법을 빌어 시끄러운 잡음 하나 잡히지 않는 잠시 동안의 '환타지'를 경험해 보는 것도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