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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와 유인물을 들고 교실로 향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다
초코파이와 유인물을 들고 교실로 향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다 ⓒ 최성수

오늘(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다. 이름만 붙은 학생의 날이고, 아이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지난다. 더구나 내일 모레가 수능 시험일이라, 대부분의 학교는 시험 준비에, 아이들은 수능 대비에 정신이 없다. 그러니 학생의 날이 어디 당키나 한가?

작년에 있던 학교에서는 학생의 날에 전교조 분회 차원에서 학급에 꽃다발 하나씩 돌렸었다. 가을꽃도 아름다웠지만, 그 꽃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학생의 날이 뭐예요?”

꽃다발을 받아든 아이들이 그런 질문을 하고, 선생님들은 간단히 학생의 날에 대한 유래를 설명했지만, 그것 뿐, 학생의 날에 대한 진정한 되새김은 없었다.

이미 학생도 선생도, 학생의 날에 대한 자리 매김은 잊어버린 지 오래서일까? 너무 지나치게 사회적 문제화 되어 있는 스승의 날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학생의 날이지만, 그래도 꽃다발 하나 받아들고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위안을 삼은 것이 지난 해 학생의 날에 대한 기억이다.

올 해 학교를 옮기고, 오늘이 처음 맞는 학생의 날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교문 앞이 왁자지껄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쓰고 있다.

퀴즈에 참여하느라 북새통이지만 아이들 표정은 즐겁다
퀴즈에 참여하느라 북새통이지만 아이들 표정은 즐겁다 ⓒ 최성수
학교 앞에서 학원 광고지나 안내 책자를 나누어 주는 일이 하도 흔하다 보니, 나는 으레 또 그런 일일 거라고 짐작을 했는데, 아이들 곁에 학생부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서 있었다.

다가가 보니, 아이들은 초코파이 하나씩을 받아 들고 신이 나서 올라가고 있었고, 그런 아이들을 선생님들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초코파이를 나누어 주는 아이들은 학생회 임원들이었다. 초코파이와 함께 아이들이 받아 든 것은 학생의 날에 대한 안내 유인물이었다.

“오늘은 제 74회 학생의 날입니다”로 시작되는 학생의 날의 안내에 대한 유인물은 학생의 날에 대한 유래, 의미, 학생의 날을 맞는 우리 학생들의 자세에 대한 글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유인물의 아래에는 퀴즈 응모권이 붙어 있었고, 아이들은 안내 글을 읽고 거기에서 퀴즈 문제의 답을 찾아 응모함에 넣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었던 것이다.

유인물을 열심히 읽는 아이들, 정성들여 퀴즈의 답을 적는 아이들, 초코파이부터 한 입 베어 무는 아이들로 교정은 갑작스런 축제 마당으로 변했다. 그런 아이들의 얼굴이 가을 단풍보다 더 환하고 고왔다.

1교시 학급 회의 시간, 학생회장이 방송으로 학생의 날에 대한 유래와 의미를 다시 한 번 설명했고, 퀴즈 응모에 대한 추첨과 시상이 이루어졌다.

“내일 모레가 수능만 아니면 전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계기 교육 계기 교육 하지만, 이런 행사만큼 좋은 계기 교육도 없을 거에요.”

아이들이 진행하는 행사를 바라보던 교장 선생님도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초코파이를 나누어주는 학생회 임원들도 신이 났다
초코파이를 나누어주는 학생회 임원들도 신이 났다 ⓒ 최성수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학교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형식적인 행사로 끝나는 학생의 날, 우리 학교는 학생회가 주최가 된 의미 있는 학생의 날을 보낸 셈이다.

잠깐의 행사였지만, 학생들은 학생의 날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선생님들은 교육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학생관을 다시 한 번 가다듬게 되었다.

아니, 그런 모든 의미를 차치하더라고, 학생의 날 아침 아이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고 하겠다.

모든 것을 입시와 성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요즘의 교육 현실에서, 전교생이 참여하여 이런 행사를 열 수 있었다는 것도 기억될 만한 일이다.

수업 시간에 광주 민중 항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조선시대나 아니면 고려 시대쯤의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학생의 날은 얼마나 머나먼 역사 속의 일일 것인가?

그 일을 현재의 일로, 지금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계기 교육이고 역사 교육이며, 학생이 주체적으로 이루어가는 산 교육이라는 생각을 나는 오늘 아침 행사를 지켜보며 하게 된다.

오늘따라 아이들의 얼굴이 가을 하늘처럼 해맑아 보인다.

유인물을 읽으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진지하다
유인물을 읽으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진지하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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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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