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만홍에 덮인 가을 산의 만산홍엽이 드디어 옷을 벗는다. 데구루루 구르는 낙엽 지는 소리. 그 낙엽을 밟으며 떠나는 산행이야말로 11월의 낭만이다. 그러나 마지막 계절을 정리하듯, 등에 짊어진 배낭은 무겁기만 하다.
한해가 다 가기 전에 해야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산행을 할 때는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라고 하지만, 현실 속에 짊어진 배낭이 어디 가벼울 수 있겠는가?
서귀포 70경. 그 70리 길은 한 시간이면 다 갈 수 있는데도 한라산에서 오래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1주일 전, 한라산 영실 숲에서 상고대의 아름다움까지 흠뻑 취해 돌아왔는데도 그 산이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 그것은 '신선이 사는 산'의 유혹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주일만에 다시 떠난 한라산 영실기암. 왜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풍잎에 대한 유혹' 때문이 아니라, '동경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높은 절벽과 깎아 세운 듯한 비탈, 둘러선 기암이 마치 석실처럼 보이는 한라산 영실. 한라산의 영실기암은 서귀포 70경 중의 하나이다. 신선이 산다하여 영실(靈室)이라고도 한다.
한라산 영실은 사계절이 살아 숨쉬고 있다. 봄이면 바위 사이마다 붉게 핀 철쭉꽃,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밀려오는 안개 사이로 보이는 폭포수, 가을에는 속세의 마음을 사로잡는 빛깔 고운 단풍, 솟아오른 바위와 나뭇가지마다 피어나는 겨울의 눈꽃은 한라산의 가장 멋진 절경이다
특히 한라산 영실코스는 윗세오름 동능 정상까지 3.7km의 거리로 높은 꼭대기부터 깊은 골짜기까지 장엄하게 늘어선 기암괴석을 만나게 된다. 그 기암괴석은 500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500개의 돌기둥을 숫자로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웅장한 돌기둥은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탄사를 흘러나오게 한다. 마치 기암괴석을 전시해 놓은 전시장 같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마치 아라한이 서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오백나한 또는 오백장군, 석가한, 영실기암이라 부른다.
오백나한이란 석가 생존시의 500명의 제자나 석가의 열반 후 결집한 500명의 나한이나 비구 등을 말한다. 예로부터 이곳을 지나면서 함성을 지르거나 고함을 치면 500개의 기암괴석들이 짙은 안개를 피어오르게 하여 사방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는 신비한 전설이 깃 든 곳이기도 하다.
봄이면 기암절벽 사이마다 산철쭉이 피어나 바위와 한데 어우러진 장관을 연출하기도 하고, 여름이면 비가 오고 난 후 떨어지는 폭포수도 볼만하다.
한라산의 영실기암에는 전설이 있다. 한 어머니가 500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흉년이 들었다.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오라고 한 어머니가 아들들을 위해 죽을 쑤고 있었는데, 잘못하여 죽 솥에 어머니가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런 이유를 모르는 아들들은 돌아와 맛있게 죽을 먹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돌아온 막내아들은 죽을 뜨려다가 어머니의 뼈를 발견하고 통곡하며 제주 서쪽 끝의 차귀도 앞바다로 가서 바위가 되었다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형들도 슬퍼하며 울다가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그래서 어떤 이는 영실기암의 바위가 499개만 남아있다는 전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누가 함성을 질렀을까?"
갑자기 영실기암에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스라이 걸쳐있는 바위는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서로가 부둥켜안고 무리를 이루고 서 있는 바위는 저마다 형상이 다르다. 사람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듯이, 발가벗고 서있는 기암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0.8km쯤 가다보면 산세가 높아, 등산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한 겨울에도 구슬땀이 흐른다. 직각으로 놓여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꼴찌가 일등이 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다. 이때 쉬엄쉬엄 산행을 해야 할 사람에게는 절대로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계단 끝에는 다시 신비스런 비경이 펼쳐진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서쪽 벽에 1200여 개의 바위기둥의 한데 붙어 서 있다. 마치 장삼으로 예장한 불이 공대하여 서있는 것 같다. 이 바위가 병풍바위다.
영실 계곡의 웅장하고 둘러친 모양이 마치 석가여래가 불제자에게 설법하던 영산과 비슷하다 해서 영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병풍바위는 잘 발달된 주상절리층이지만, 동쪽의 기암은 모두 용암이 약대지층을 따라 분출하다가 그냥 굳어진 것으로 하나 하나가 용암분출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 한다.
암석은 조면질안산암이며 이 절리대를 따라 용출된 지하수가 복류하여 강하천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이에 영실기암은 금강산의 만물상과 같다하여 '한라의 만물상'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잠시 여정을 풀고 땀을 식힌다.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이곳에는 항상 세찬 바람이 불고 안개에 쌓여 지척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지점이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오름과 오름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 오름 뒤에는 구름이 피어오른다. 마치 해질녘 동산에 서면 고향집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피어나는 구름을 보며 향수에 젖는다. 오름은 다시 오름으로 이어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 가면 영실기암이 바로 손에 잡힐 듯하다. 그러나 보송보송 융단을 깔아 놓은 숲 속에 바위가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 첩첩산중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바위 틈새에는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피어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구상나무 숲을 지나면 벌판이 이어진다. 1주일 전, 이곳에서 만났던 눈꽃을 생각하니 그 감회가 새롭다. 한라산 주봉인 백록담 화구벽을 정면으로 윗세오름과 방아오름이 양쪽으로 나란히 늘어 서 있는 이 고산의 초원이 바로 '선작지왓'이다. '작지' 는 조금 작은 돌을 말하고 '왓'은 벌판이란 뜻의 제주 방언이다.
선작지왓은 곧 '돌들이 널려 있는 벌판'이라는 의미다. 선작지왓 건너편의 들판에는 만세동산이라는 조그만 구릉이 있다. 이곳은 예전에 소와 말을 방목하던 목동들이 누워서 망을 보던 곳이라 하는데, 이곳에 누워 백록담을 배경으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우마를 보면 저절로 영주십경의 하나인 고수목마라는 풍경을 그릴 수 있다.
한라산 영실은 마지막 가는 계절을 붙잡고 숨가쁘게 달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2천여개의 돌기둥과 절벽사이로 샘솟는 물소리, 새소리와 구슬픈 가락의 까마귀 울음소리, 누군가 고함을 지르면 피어나는 전설 속 안개가 절벽의 허리를 두르는 심산계곡.
한라산 영실의 기암괴석 전시장에서 만난 2천여개의 바위는 비록 그 형상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만난 영실기암은 전설의 길이 아닌 구도의 길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암괴석은 내 마음속에 '석가한'의 모습으로 '아라한'의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