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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오마이뉴스> 1면에 낯익은 얼굴이 나와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 병간호를 맡았던 채수영씨가 제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주인공이었습니다. 저와 개인적 친분이 있기 때문에 그 놀라움이 더 컸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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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할 일이 많은데도, 덜컥 병간호에 뛰어들었던 채수영씨가 이제 2주 남짓한 시간의 병간호를 끝낸다고 하는군요. 10월 20일부터 간병을 시작해 오늘이 11월 4일이니 벌써 16일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그 2주 남짓한 시간을 '2주간 할머니와의 데이트'라고 묘사를 했습니다. 문장력이나 멋있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를 아는지라, 그렇게 멋있는 단어를 쓴 것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역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만큼 아름다운 말이 없는가 봅니다.

정서운(82·진해) 할머니는 11월 중순 퇴원하여 자택으로 가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의사마다 말하는 퇴원 시기가 조금씩 달라 어찌될지는 그때가 돼 봐야 알 거라고 합니다. 퇴원한 뒤에도 간병이 필요한데, 채수영씨는 앞으로 사랑의 간병 릴레이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돈 봉투와 음료수, 과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애정이 필요하다고. 아마 정서운 할머니의 건강 상태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문병이 이뤄지게 되면 정 할머니도 기뻐하시겠지만, 문병을 하는 당사자도 아마 큰 기쁨을 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문병을 요청하는 채수영씨의 글이 많은 분들에게 읽혀지면 더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모 친목회 사이트에 올린 개인적인 글을 제가 채수영씨에게 부탁해 기사로 보내면 좋겠다고 제의하게 됐고, 그에 따라 아래 글을 옮기게 됐습니다. 채수영씨가 남긴 쪽지글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 2주간 할머니와의 데이트
"벌써 2주일이 지나버렸군요. 저의 간병이 얼마나 성의가 있었는지 알 수 없고 또 할머니께서 얼마나 만족해 하셨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쨋든 가장 필요한 시기에 할머니 곁에 있어 드렸다는 것으로 애써 자위를 합니다."

- 할머니의 향후 동정
"할머니께서 병원에 꼭 있어야 하는 기간은 깁스를 하고 난 뒤 며칠 정도입니다. 깁스는 일주일 뒤에 하시게 될 테니 열흘 뒤면 할머니댁이 있는 진해로 옮길 수 있을 듯합니다.

앞으로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는 가톨릭여성회에서 주간 간병을, 진해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야간 간병을 책임지실 겁니다. 진해로 가시게 되면 11월 하순에 개관하는 노인복지센터에서 완쾌하실 때까지 계시게 됩니다. 다만 퇴원하실 때까지 센터가 개관하지 않게 되면 집에서 며칠 머무르시다가 옮기시게 될 겁니다.

퇴원하신 뒤에도 깁스를 풀 때까지, 또 깁스를 풀고 얼마간은 계속 간병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박인숙(진해 자원봉사센터 소장)씨와 박정연(진해시청 사회복지과 계장)씨께서 책임 지고 후원을 하신답니다. 두 분껜 먼저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 좋은 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많은 분들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일 하신다." "장한 일 하신다." 사실 저는 이런 말들이 무척이나 어색합니다. 물론 이전에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라서 어색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는데 대한 과분한 칭찬이어서입니다. 저는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저의 태도를 겸손함으로 여기지는 마십시오.

저는 올 6월 진주 경상대에서 있은 할머니의 강연을 듣고 그 당당함에 감명을 받은 터라 곧바로 할머니의 팬이 되었습니다. 팬이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 간병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오히려 신문 기사만 보고 생면부지의 할머니를 돕겠다고 후원금을 보내주시고 간병을 자처하고 문병 와서 힘을 주신 분들이 칭찬을 받아야 할겁니다. 소소히 나열하진 못하더라도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 왠지는 묻지 마세요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깁스를 하고 계시는 동안(약 3개월)에는 계속 누워 계셔야 하기 때문에 할머니의 건강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깁스를 하신 채 돌아가실 수 있다는 거죠. 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개연성 있는 증세가 있은 것도 아니고 그러한 의사의 진단이 있은 것도 아닙니다. 저도 이런 저의 생각이 사실과는 다른 방정맞은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입원하신 뒤로 계속 조금씩 기력이 떨어져 왔고 깁스를 풀고 운동을 하실 수 있기 전에는 기력을 회복할 수있는 계기가 없다는 것과 주무시기 전에 저와 대화를 나누다가 하신 "영아! 이번에는 일어나기 힘들 것 같다"라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처음엔 절보고 "아가"라고 불렀는데, 저번 주부턴 제 이름 끝자를 따서"영아"라고 부릅니다)."

- 부탁드립니다
"할머니께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픈 마음이 있는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마산 삼성병원에 계시든 진해에 계시든 짬을 내서 방문을 하시라고.

제발 돈 봉투도 음료수도 과일도 가져오지 마세요.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오십시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시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시고 말벗이 되어 주십시오. 오신 분이 크리스천이시면 기도도 해주시고요(며칠 전 어설픈 기독교인인 강동오씨가 한 번 기도를 해 준 적이 있는데, 그 뒤에 할머니께서 무척이나 평안해지셨습니다. 그때만큼은 할머니께 강동오씨는 예수였습니다). 웃고 즐기는 동안에 깁스를 하고 누워 계실 두세 달이 지나간다면 훌훌 털고 일어나실 수 있을 겝니다. 이젠 간병이 아니라 즐거운 문병 릴레이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라는 모진 경험을 하고서도 당당히 증언하시고 활동하신 할머니이시지만 평생을 따라다닌 병은 고독이고 목말라하시는 건 타인의 따뜻한 애정입니다.

사랑만한 묘약이 있나요!

-2003년 11월 4일 화요일 무늬만 아름다운 청년 채수영 드림.

문의처:강동오 011-9339-7759, 박인숙 017-547-8189 현재 병실(055)290-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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