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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안이 10월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아들-손자-미혼인 딸-부인-어머니 순으로 매겨졌던 호주 승계 순위가 폐지되고, 처의 부가 입적 조항이 전면 삭제되며, 원하는 사람에 한해 어머니의 본과 성을 따를 수 있게 하는 등 기존의 호주제의 문제들을 전면 개정했다. 국회에 상정돼 통과되면 2년의 경과 기간을 거쳐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개정안이 호주제 아래의 가족 규정('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그 가에 입적한 자')에서 진일보 하긴 했지만, 가족 범위 규정('부부, 그와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부부와 생계를 같이 하는 그 형제 자매')이 현대 사회의 다변화되는 가족의 형태(한부모 가족, 일인 가족, 재혼에 의한 복합 가족, 미성년 가장 가족, 비혼모 가족, 동거 가족, 동성애자 가족)를 포괄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성계는 '개인별 호주 등록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 제도는 개인 한 명이 자신의 신분 등록표를 갖게 되어 개인의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분 변동 사항만 기재하고, 부모·배우자·자녀는 간단히 신원만으로 친족 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 사생활 노출이 최소화된다.
대법원 연구 조사 결과, 이 제도가 시행되는 데는 3년여의 시간이 소요되고, 240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설문 조사에 따르면 74%가 호주 제도가 사생활 침해를 야기한다고 답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제의 많은 폐해로 인해 여성·시민 단체 등에서는 40년 동안이나 그 폐지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 주장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대결로 굴절돼, 제대로 된 토론과 비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해 반대했던 대표적인 단체는 '유림'으로 가정제도법률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함으로써 여성계와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호주제 존속 논리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풍양속과 헌법 37조 제 2항의 질서 유지가 있다. 먼저 미풍양속이기 때문에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3살 짜리 꼬마가 할머니의 호주가 되는 상황에서 모순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미풍양속에도 전혀 맞지 않는 것이며 유림에서 수호하는 어른 공경의 성리학적 관점에서도 어긋나는 것이다.
헌법 37조 제 2항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 복리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 중 질서 유지를 위해 호주제가 존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그러나 그 질서 유지에 대한 정의가 민주적 기본 질서 또는 권리 질서, 도덕 질서, 사회 공공 질서 등으로 불리고 있어 학계에서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사실 호주제가 갖고 있는 문제는 위에서 본 호주 승계 제도의 불평등과 불합리함이다. 호주 승계 제도는 호주가 사망하였거나 국적을 상실하였을 경우, 다음 사람이 호주가 될 수 있는 우선 순위를 매긴 것이다. 호주 승계는 아들과 손자를 우선에 두고 그 뒤에 딸, 부인, 어머니를 그 뒤에 두어 여성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고 있다.
결혼한 사람들 마음속에 첫 번째 자녀는 남자 아이이길 바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이혼한 여성은 자기가 키우는 자녀를 자신의 호적으로 올릴 수 없게 돼 있어, 같이 사는 자녀가 단지 동거인으로 기재되어 있다. 여자가 재혼했을 경우, 아이의 성을 새남편의 성으로 바꾸고 싶어도, 호주제에서는 인정되지 않아, 결혼 신고를 하지 않거나 사망 신고를 한 후 호적에 올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뿐 아니라, 남자는 혼외 자식을 부인의 동의 없이 올려도 되지만 부인은 남편의 동의가 없으면 아이를 호적에 올릴 수 없어, 아이의 인권이 침해되는 불평등이 초래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존의 법은 헌법 제36조 1항의 '혼인과 가족 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제34조 3항의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제11조 1항에 의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 등에 어긋나 있다.
그리하여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호주제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해 헌법에 위해되는 것으로 판결내렸으며, 세계 인권위원회에서도 호주제가 가부장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고 우려를 계속 표명해 왔다.
이제 국회의 인준만 남았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대 사회 전반에 맞지 않고 그 역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전통이 아니다. 바로 인습인 것이다. 이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통하여, 다양한 가족과 평등한 가정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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