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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최도술씨 문제를 말하던중, 천장을 쳐다보며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최도술씨 문제를 말하던중, 천장을 쳐다보며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검찰이 기업에 던진 '자수하여 광명 찾으라'는 메시지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치자금 관련 위법행위는 정치권이 '고해성사'를 거쳐 국민 동의를 밟는 순서로 사면하는 한편, 정치자금 관련 기업회계 처리에 대해서도 일괄사면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였다.

그러나 전경련의 과거 불법행위에 대한 '선(先)고백 후(後)사면' 제안은 별로 호응을 받지 못했다. 검찰의 콧방귀는 두 말할 나위가 없고, 한나라당 홍준표 비상기획위원장조차도 대통령의 사면 발언 뒤에 나온 전경련의 제안은 "한 마디로 코미디 같은 얘기"라며 "내 귀에는 '야당 대선자금 불면 사면해 주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말했다.

사실 정치권의 부당한 정치자금 요구 등을 거부하겠다는 자정(自淨)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히려 '연례행사'에 더 가깝다. 따라서 위기 모면을 위한 또 한번의 '면피성 행사'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전경련은 정치자금과 관련해 재벌 총수들이 집단으로 조사를 받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때 이미 95년 12월 당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부랴부랴 '기업윤리헌장'을 제정·실천하겠다고 '반성문'을 쓴 바 있다. 이때도 전경련은 30대 그룹의 최고경영자를 중심으로 '경영풍토쇄신추진 특별위원회'를 구성, 정경유착 근절·책임경영 확립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또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2월에도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부당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뒤, 전경련 등 재계에서 비슷한 취지의 성명을 잇달아 낸 바 있다. 따라서 '연례행사' 같은 이 같은 결의가 과연 진정한 '탈정치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부터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 가동

전경련은 지난 9월 5일에도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과 200여개 회원사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윤리·정도경영 확산을 위한 기업내 부패방지 특별 간담회'를 갖고 자정선언을 했다. 전경련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8개항으로 된 '기업내 부패방지를 위한 우리의 다짐'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 중에 핵심은 '기업의 탈정치화'를 선언한 다음의 제3항이다.

"3. 기업의 재산이나 조직·인력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법에 규정된 금액을 초과하는 부당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정경유착·뇌물제공의 원천을 사전에 차단하는데 진력한다."

나머지 7개 항목은 모두 기업 내부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실천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비해 제3항에서 적시한 정경유착과 뇌물제공의 원천, 그리고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는 것은 '돈 먹는 하마'에 비유되는 현행 정치구조와 기업에 돈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의 기업환경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기업이 '검은 돈'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압력을 떨쳐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김영삼 정부 당시 정부여당이 국세청과 국가안전기획부 같은 국가 권력기관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불법 모금하고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불법 전용한 사건이다. 이른바 세풍(稅風)이니 안풍(安風)이니 하는 사건들이다.

물론 이른바 '문민정부' 이전의 노태우·전두환 정부는 선거 때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거두어들였다. 이는 문민정부 들어서 불거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에서 검찰이 수사를 통해서 확인한 두 전직 대통령이 거둔 비자금이 5000∼7000억원대인 데서 알 수 있듯이 군사정부에서는 더 많은 정치자금을 공공연히 거두어들였다.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데 이른바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이 가동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러나 이때는 정치권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거둔 측면과 함께 재벌기업 스스로 '보험'을 드는 차원에서 정치자금을 기꺼이 헌금한 측면도 강했다. 특히 전두환 정부에서는 굳이 정치자금을 걷지 않아도 전경련 스스로 기업 규모에 따라 각자의 몫을 할당해 돈을 갖다바쳤을 정도이다.

지난 4월 28일 재산 명시 신청 심리를 마치고 서울 서부지법을 나오는 전두환 전대통령.
지난 4월 28일 재산 명시 신청 심리를 마치고 서울 서부지법을 나오는 전두환 전대통령.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두환, 주로 경호실장 통해 재임중 '통치자금' 1조원 조성

대통령이 통치자금이라는 미명 아래 기업으로부터 거둔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자금이 처음으로 국민일반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알다시피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때부터다. 지난 95년 10월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은 5·18 특별법 제정을 거쳐 전두환 비자금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수사발표 기록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주로 경호실장을 통해 대기업 총수들과 면담을 주선케 해 이들을 청와대에서 은밀히 단독으로 만나 특정사안에 대하여 특혜를 부여하거나 해당기업의 현안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 7000억원 가량의 금품을 수수했다. 전씨의 재임기간이 사실상 7년이었음을 감안하면 평균 1년에 1000억원씩 거둔 셈이다. 이 가운데 검찰이 뇌물죄의 성립을 밝혀낸 금액은 총 2159억5000만원이었다.

물론 이 7000억원은 전씨가 기업인들을 상대로 별도로 거둔 △새마을성금 1495억여원 △일해재단 기금 598억여원 △새세대육성회 찬조금 223억여원 △심장재단 기금 199억여원 등 합계 2515억여원의 각종 성금 및 기금은 제외한 것이다. 이 '반강제 성금'까지 합치면 무려 1조원에서 485억원이 빠지는 거액이다.

뇌물수수 방법에 따라 이를 분류하면 △안현태 경호실장과 장세동 경호실장이 면담을 주선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수한 금액은 각각 400억원과 200억원으로 합계 600억원 △성용욱 국세청장과 안무혁 국가안전기획부장이 기업을 압박해 수수한 금액은 114억5000만원 △이밖에 이원조 은행감독원장의 주선으로 수수한 액수는 30억원 등이었다. '측근 중의 측근'인 경호실장을 통해 모금한 뇌물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렇게 조성한 자금을 재직중에는 본인이 직접 총괄하면서 85년 2월경까지는 장세동 경호실장에게, 그 이후는 안현태 경호실장에게 각 관리하도록 하면서 경호실 경리과장으로 하여금 금융기관의 입·출금업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전씨는 이 돈을 퇴임할 때까지 친·인척 관리자금, 정당 창당 자금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자금은 약 1600억원 정도라고 진술했다.

노태우, 30여개 그룹으로부터 5000억원 모금

지난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중인 노태우-전두환-최규하 전 대통령. (왼쪽부터)
지난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중인 노태우-전두환-최규하 전 대통령. (왼쪽부터)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전씨의 육사 동기생이자 친구인 노태우 대통령은 권력뿐만 아니라 정치자금 수수방법까지 그대로 물려받아 답습했다. 노씨 또한 경호실장을 통해 면담을 주선케 하고 경호실 경리과장을 통해 입출금 업무를 전담케 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관리했다. 다음은 이현우 전 경호실장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대통령께서는 취임 한 달 후인 88년 3월말부터 재벌회장들로부터 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가끔 어느 기업주의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특정 기업을 거명하며 관심을 표명하거나, 또는 인사를 오지 않는다는 취지로 얘기하시기도 하구요. 그러면 그 뜻을 알아듣고 기업주에게 대통령 면담을 제의한 뒤 이 사실을 다시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대통령이 '만나겠다'고 승낙하면 제가 직접 하거나 경호실 직원이 기업주에게 일시·장소를 통보했습니다. 재벌 총수들이 타고 올 차량번호도 이때 미리 알아둡니다. 면담 일시가 되면 경호실 기사가 기업주를 바깥에서 만나 청와대나 안가로 안내해왔습니다. 기업인으로선 대통령을 독대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또 대통령에게 인사하라는 것은 어떤 명목이든간에 돈을 주라는 뜻이며 기업주들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검찰은 당시 이현우 전 경호실장과 이태진 전 경호실 경리과장의 진술을 토대로 4단계의 '수뢰등급표'를 만들었는데, 그 기준은 A는 300억원 이상·B는 200억원 이상·C는 150억원 이상·D는 100억원 정도였다. 노씨는 이 기업들로부터 5년 동안 5000억원을 거둬들였다.

이 등급표에 따르면 ▲A등급은 삼성·현대·대우·LG·롯데 등 5개 그룹 ▲B등급은 쌍용·선경·한진·대림 ▲C등급은 동부·진로·두산·동아·한화·풍산·삼부토건·태평양·한보·동양화학·한양 등 11개 그룹 ▲D그룹은 기아·금호·효성·고합·한일합섬·코오롱·해태·극동·미원·대농·효성·동국제강·대한전선·삼양사 등 14개 그룹이었다.

선거 있는 '전시'(戰時)에는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이 풀 가동

기업인들은 왜 이렇게 많은 돈을 갖다바쳤을까.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사 당시 검찰에 불려온 재벌 총수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5공 때의 국제그룹 해체 사건을 예로 들었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바로 괘씸죄다"면서 청와대의 미움을 받게 되면 기업경영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세무조사를 받거나 돈줄(금융지원)이 끊어져 언제든지 공중분해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어떤 총수는 검찰에서 당신 같으면 '보험금' 안주고 배길 수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또 일부 재벌 회장들은 특혜를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불이익만 받지 않아도 대통령의 은혜"라면서 "'특별한 약점'이 없는 경우에도 '어른께서 면담을 원하신다'는 통보가 경호실에서 내려오면 수십억씩 싸들고 청와대로 들어갔다"고 털어놓았다. 이밖에도 다른 재벌 총수들이 청와대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접한 일부 총수들은 '가만 앉아 있으면 우리만 눈밖에 난다'는 불안감 때문에 경호실에 '긴급면담'을 자청하기도 했다.

경호실을 동원해 은밀히 모금한 평시(平時)와 달리 선거가 있는 '전시'(戰時)에는 국세청과 안기부, 재경부와 은행감독원 등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이 풀 가동되었다. 재벌 총수로서 역대 대통령선거를 3번 치른 J 회장은 "여당의 경우 최소 3000억원에서 1조원까지 대선자금을 마련했다"면서 "과거 비공식적 대선자금 모금액은 5대그룹 50억원, 10대그룹 30억원, 30대그룹 20억원, 그외에는 적절 배분, 50그룹 10억원, 100대그룹 5억원씩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별도로 국세청을 통해 5대그룹의 경우 20억원, 10대그룹의 경우 10억원, 30대 그룹의 경우 5억원 이상, 50대 그룹의 경우 2억원 이상, 100대 기업의 경우 1억원 이상씩 총 수백억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3대 대선을 앞둔 87년 10월 성용욱 국세청장, 안무혁 안기부장, 사공일 재무장관, 이원조 은행감독원장 등을 통해 대선자금을 모금했다. 성용욱 국세청장의 경우 롯데 신격호 회장에게 그룹의 세무조사를 위한 내사 사실을 알려주면서 무마 명목으로 50억원을 청와대에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이처럼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데는 실제로 모금한 액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이나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처럼 금융계와 전경련을 꿰뚫고 있는 '마당발'이 있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전-노 비자금 항소심 재판부는 이원조씨에 대해 "제5·6공화국 양쪽에 걸쳐 대통령의 뇌물수수에 적극 관여하여 '지하의 미로로 돈을 바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권력자를 적극 추종한 자'로서, 비유컨대 지하의 미로를 설계하고 안내한 것과 같아 응분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으므로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시하고 이씨를 법정 구속한 바 있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서인 금진호씨에 대해서도 일부 재벌 총수에게 먼저 연락해 노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제공하도록 권유해 수뢰를 방조한 부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92년 대선 당시 YS가 민자당에 내놓은 돈만 3080억원

지난 1월 17일 조선호텔에서 각계원로들과 함께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지난 1월 17일 조선호텔에서 각계원로들과 함께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따지고 보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정치자금에 관해서 김영삼(YS) 전 대통령만큼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태연하게 '동문서답'과 '딱 잡아떼기'로 '거짓말'을 일삼은 사람도 찾기 어렵다. YS는 민자당 대통령 후보 시절인 92년 12월 1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자당이 돈 사정이 어려워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다. 중립내각 구성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요구해 스스로 금권·관권선거를 포기했다. 돈이 지배하는 정치는 쿠데타보다 더 나쁘다."

그러나 지난 98년 4월 <주간동아>가 입수해 보도한 92년 11월 3일 작성된 '대통령선거자금 운용계획(안)'과 대선 뒤에 작성해 총재(당시 김영삼 당선자)에게 보고한 '제14대 대통령선거자금 결산보고' 문건에 따르면, YS가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민자당에 내놓은 돈은 3080억원. 민자당이 실제 사용한 대선자금 3034억4000만원을 충당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이같은 대선자금 규모는 당시 민자당이 선관위에 신고한 284억8000만원과 법정선거자금 한도 367억78만700원의 8~10배 이상에 해당한다.

'자금결산보고'에는 민자당의 대선자금 총수입 3176억900만원의 대부분(3080억원)을 '총재님 특별지원금', 즉 당시 김영삼 후보가 낸 돈으로 충당했다고 돼있다. 반면에 국고보조금이 75억원, 당시 김영구 사무총장이 가져온 돈이 10억원이다. 당시만 해도 곳곳에 모금함을 설치해 놓고, 광고까지 해가며 온라인 송금도 받은 이른바 '필승 당비'는 1억5200만원에 불과했다.

'총재님 특별지원금'의 조성경위는 물론 이 자료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YS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이같이 막대한 자금을 냈을리는 만무하다. 다만 YS는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운동의 바쁜 와중에도 잠만은 꼭 서울에 올라와 잤다. 실제로 서울로 올라온 YS는 거의 매일 서울시내 롯데호텔 객실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 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YS가 기업인에게서만 돈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난 95년말 당시 김대중 총재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고 시인했을 때, 여권 내부에서는 "여당후보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받은 돈은 최소한 그 10배는 될 것"이라는 말이 무성했었다. 이와 관련, 정치권 안팎에선 노 대통령이 92년 대선 전에 이현우 경호실장과 안기부 핵심인사 O씨를 통해 자신의 비자금 1000여억원과 안기부 비자금 2000억원을 YS에게 전달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역대 정부의 정치자금 모금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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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모금주체 대통령/경호실대통령/경호실이석희 차장
김기섭 기조실장
권노갑최도술
모금기관 국세청/안기부국세청/안기부국세청/안기부없음없음
모금대리인 이원조(친구)금진호(동서)김현철(아들)
이회성(이회창동생)
권노갑최도술
모금액수 7000억5000억수천억원수백억원수백억원
(한나라당주장)
모금관련입장 통치자금 주장대국민 사과모금 철저히 부인밝혀지자 시인 밝혀지면 시인
ⓒ 오마이뉴스 김경화

YS, 대선자금 문건 및 계좌 물증 나와도 '동문서답'과 '딱 잡아떼기' 일관

'자금결산보고' 문건에 기록된 선거자금은 물론 김영삼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공식조직인 민자당이 쓴 부분에 한정된 것이다. 그밖에 나라사랑운동본부(나사본), 민주산악회(민산) 등 사조직에서 쓴 자금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자금결산보고'의 기록상으로 집행하고 남은 금액만도 141억6900만원에 이른다. 따라서 YS가 걷어 사조직에 내려보낸 돈, 차남 김현철씨가 별도로 수금한 돈까지 합치면 92년 YS 부자(父子)가 모금한 대선자금은 5000억원을 넘어섰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추산이다.

실제로 지난 97년 초 한보(韓寶)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YS의 차남 현철씨를 수사중인 검찰은 그가 비밀리에 돈을 숨겨온 차명계좌와 122억원의 비자금을 발견했다. 아버지(YS)가 입만 열면 '개혁의 성과'로 자랑하던 금융실명제를 아들은 무시한 채 92년 대선 잔금과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돈을 숨겨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물증'이 발견되어 들통이 났어도 YS는 끝내 딱 잡아떼면서 '재임중 기업으로부터 일전 한푼도 안받았다'는 '동문서답'만 되풀이했다. 또 한보 및 김현철 청문회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97년 5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주례보고 석상에서 92년 대선자금 내역에 대한 공개를 건의했을 때 YS는 이렇게 해명했다.

"5년 전 대선자금에 대해 지금에 와서 국민에게 속시원하게 밝힐 만한 자료가 없어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다."

그러나 결코 자료가 없어 속시원하게 밝히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YS는 자신이 결재한 것으로 돼있는 위와 같은 문건들이 나중에 공개되었을 때도, 현철씨가 관리한 대선잔금이 드러났을 때처럼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입을 떼지 않고 깡그리 무시한 채 '모르쇠'로 일관하는 전략을 썼다.

지난 8월 2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코엑스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열린 2003 하버드 국제학생회의에서 퇴임후 첫 공개연설을 마친뒤 차를 타고 있다.
지난 8월 2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코엑스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열린 2003 하버드 국제학생회의에서 퇴임후 첫 공개연설을 마친뒤 차를 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97년 야당 집권으로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 가동은 사실상 불가능

이처럼 YS는 집권 말기에 대선자금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아들까지 구속했기 때문인지, 97년 대선에서는 대통령은 뒤로 빠진 채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이 가동되어 권력기관 간부들이 직접 모금에 나서는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예를 들어 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은 안기부 일반예산 등에서 1157억원을 전용해 이를 여당인 민자당과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계좌로 입금시켰다. 또 97년 대선 당시 이른바 '세풍 3인방'인 서상목 의원·이석희 국세청 차장·이회성씨는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인 배재욱 사정비서관의 묵인과 후원 아래 징세권을 무기로 기업들로부터 선거자금을 모금했다.

'국민의 혈세'를 빼돌렸다는 점에서 둘 다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는 권력의 문민화와 기업의 권력화로 그만큼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어려워진 세태를 반영한 탓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97년 대선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선거에 의해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의 가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국세청과 안기부 등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등지고 선거에 개입한 고위공직자들이 조사를 받고 줄줄이 구속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지난 2002년 대선에서는 대통령은 물론 권력기관이 주축이 된 '국가기관 동원 시스템'이 가동된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는 김대중(DJ) 정부가 과거 정권에 비해 통치기반이 허약한 만큼 과거처럼 권력기관을 '수족'처럼 부릴 수 없는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현재 사법부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DJ 정부의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DJ의 분신(分身) 혹은 대리인으로 인식된 권노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 DJ 정부에서 대북사업을 활발히 전개한 현대의 비자금 문제만 불거지는 것도 그런 정황들을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역대 정부의 정치자금 조성방식은 권력의 문민화와 기업의 비대화, 그리고 정치의 민주화와 더불어 더디게나마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전-현직 대통령 '집사'에 대한 사법처리가 동시에 진행되는 비상 국면

지난 10월 16일 최도술 전 청와대총무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되었다. 최씨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0시 20분경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최도술 전 청와대총무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되었다. 최씨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0시 20분경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역대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전임 대통령의 '고쟁이 속'을 들춰봤다. 그것은 반드시 신임 대통령의 정치보복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의도를 가진 정권도 없지 않았지만, 어쩌면 정권 교체기 때마다 새로운 정권에 충성하려는 검찰의 '권력의지' 탓이 더 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역대 정부 때와 달리 재임중인 현직 대통령의 '고쟁이 속'을 검찰이 들춰보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SK비자금 건으로 이미 '노무현 캠프의 권노갑'에 비유되는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이 구속되고, 또 다른 기업으로부터 받은 불법 정치자금으로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노무현 정권과 검찰이 '한 팔을 떼주고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살수(殺手)를 쓰고 있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또 이를 노무현 정부의 통치기반의 허약함 탓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보다는 통치기반이 약한 노무현 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정권과의 줄을 끊으려는 검찰의 '독립의지' 탓이 더 크다. 전직 대통령의 '분신'과 현직 대통령의 '집사'에 대한 사법처리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 비상한 국면은 그점을 뒷받침한다.

역대 정부의 정치자금 조성방식은 권력의 문민화와 기업의 비대화, 그리고 정치의 민주화와 더불어 더디게나마 '진화'해왔지만, 이미 우리 모두는 그런 식의 더딘 '진화'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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