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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룸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도 좀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책이 있는가하면 첫 장을 넘기자마자 몰입하고마는, 그래서 주인공과 호흡을 함께 맞추게 되는 책이 있다.

'출판물의 홍수시대'라고 할만큼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후자의 책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은 듯하다. 작가와의 코드가 맞지 않은 탓일 수도 있고 순전히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책의 깊이가 수량의 증가를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던 중 실로 오랜만에 나를 완전히 빨아들인 책 한 권과 마주쳤다. 바로 이경자의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이룸, 2001)이다.

그녀의 여행은 "하늘은 맑고 푸르며 흰 구름은 새털같은", "떠도는 혼령들에게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산 사람이 정성을 들이는 그런 날"인 백중에 시작된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중국의 서남쪽 곤명을 거쳐 나시족의 도시 려강으로 날아가, 다시 그 곳에서 버스를 타고 루그호로 들어가는 긴 여정 내내 그녀는 질투 날만큼 행복감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낡아서 쿠션이 꺼진 의자에 앉아 등을 등받이에 붙였다. 등받이에 내 몸이 이렇게 편안하게 붙기는 많은 비행기 여행 중에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어디에도 나를 편안하게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고 살았다. 사람에게도, 이 세상에게도 그랬다. … 그런데 무슨 일일까. 이 평안, 평화, 안정. 눈물나게 반가웠다. 아주 차분한 황홀감."

그리고 루그호에 다다랐을 때 그는 절을 하며 마음속으로 통곡을 한다. 벙어리가 가진 신비한 물고기를 지주가 빼앗더니 물고기가 죽었고, 그 자리에 물이 고여 루그호가 되었다고도, 남자신과의 약속을 잊은 꺼무여신이 그의 발자국 위에 뿌린 눈물이 루그호를 이루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루그호가 감싸고있는 모계사회, 리거다오의 모소족은 려강에서 만난 모소 처녀의 단 두 문장으로 설명되는 그런 곳이다.

"남자는 취(娶)하지 않는다. 여자는 시집가지 않는다."

저자는 모소족에게서 여성과 남성의 공존, 자연에 대한 겸손 등을 발견한다. 모소족의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일한다. 그들의 딸들은 어머니를 깊이 사랑하고 도우며 산다. 모소족의 아들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조카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남자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이를테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닭을 잡는 법, 배를 만들고 여자와 사랑하는 법 같은 것들을.

그 곳의 어머니들은 '큰 아들' 하나를 덤으로 기르지 않아도 되고 그 딸들은 "결혼해서 남의 식구가 되어 귀머거리 3년, 소경 3년, 벙어리 3년 세월"을 살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의 존재가 먹은 모욕과 학대가 누어야 했던 똥"을 먹고 "사람으로서는 미아이며 여자로서는 고아"임을 느낄 이유도 없다. 그 아들들이 "남자로 태어나 자신에게 덧씌워진 그 권력의 무게 때문에 평생 방황"할 필요도 물론 없다.

모소족의 여자들은 영원히 어머니이며, 연인이며, 누이이고 남자들은 "어머니의 아들이며 한 여자의 연인이며 모든 여자의 손님이며 친구이며 그 사회의 구성원"이다.

또한 모소족은 어머니를 공경하듯 자연을 두려워하고 존경한다. 쓸모가 없는 것들은 아예 만들지 않는다. 집은 못을 쓰지않고 나무를 이리저리 끼워짓고, 천연광을 받을 수 있게 지붕에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가구는 꼭 필요한 것들만 갖추고 그나마도 크지않다. 밥을 먹을 때에도 밥과 반찬을 먹을 만큼만 한데 담아서 설거지를 줄인다. 그래도 남은 음식은 똥과 함께 돼지와 말이, 식물들이 먹는다.

그 곳에서 그는 한없이 풍요롭다.

"이제부터 내 인생이 시작되는 것같은 설렘을 어떻게 표현할까. 내가 확대되는 이 기이한 느낌. 아주 텅 비었는데 공허하지 않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나는 해시계 같았다. … 내가 어머니의 태반에서 이 땅으로 나온 그 처음에 이랬을까. 어머니의 상처 이어받기 전의 나 이랬을까.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수모와 비하와 모욕의 상처 내 피에 섞이기 전의 나. 태초의 나. 이랬겠지."

그래서 그는 자꾸만 위로받고 싶어진다. 성교육이라봐야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들어온 "남자는 늑대"라는 말이 전부였던 아이, 성추행의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자를 내 안에 넣고도 녹여내지 못"한 환자, 어머니가 되기위해 "손가락이 다 닳도록 간장이 다 녹도록" 살았던 어머니가 모두 자신의 모습이었다. 매일 눈을 뜨자마자 루그호로 달려갔던 것도, 추운 날씨에도 루그호에 몸을 담구었던 것도, 루그호만 보면 울고싶은 것도 위로받고 존중받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와야 했다. 모소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인정받으며 지냈으나 그는 어쩔 수 없이 "추석이 끼어서 차례상을 마련하러 이제 떠나야하는 가부장 사회 한국의 며느리"였다.

"그 여자가 여기서 인생의 원형을 보았으되, 그 고향에 삶의 닻을 내리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 자신의 생명에 깊은 멍을 들인 그곳. 뒤틀린 사람살이 속으로. 그 여자 끝끝내 터뜨리지 못한 '통곡의 집'은, 그랬다."

이경자는 고백한다. 자신은 인류의 삶의 방식, 그 중심축이 모계사회로 기울어졌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 곳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그에게 모소족의 삶은 "비무장지대"였다.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좁고 짧은 비무장지대만이 허락되었다. 모소족 모계사회는 '낯선 천국'이었으나 가부장 사회는 '익숙한 지옥'이었다. 어느 한 곳을 선택하라고 윽박지른다면 그의 표현대로 그는 "미칠 것이다".

이쯤에서 나 역시 내가 얼마나 엉터리 독자인가를 고백해야겠다. 내가 그의 책에서 공감한 것은 그가 보여주려고 애쓴, '인생의 원형'이라고까지 칭송한 모계사회가 아니라, 저자가 긴 시간동안 한국이라는 땅에서 겪어야했던 울분 쪽이었다.

저자가 루그호로부터 애무받을 때마다 나는 그의 경험과 고백에 위무받았다. 그는 나를 비롯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가부장제로 인해 고통받는-을 대신해 치유의 의식을 치른 것인지도 모른다. 가부장제로 인해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 그가 정성을 들여준 것인지도.

같은 이유에서 그와의 여행은 내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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