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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다른 어떤 학교의 아이들보다 착하고 순진한 구석이 많아 싫지 않은 녀석들 대부분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구김이 없고 활달합니다.

잠시 후 졸리다며 아우성을 치는 녀석, 몰래 자다가 지적하는 목소리에 입이 주먹만큼 나온 녀석, 다른 과목 수행평가 숙제를 하다 걸려 머리를 긁적거리는 녀석들 모두 지금은 어지러운 세상과 아무런 관련 없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공부를 못하고 집은 넉넉하지 않지만 저마다 머리와 가슴속에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중산층 신화와 신드롬, 누구나 노력하면 잘살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신화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실패와 좌절의 한가운데서도 포기할 줄 모릅니다. 로또, 그 야무진 한방의 꿈으로도 잠시나마 행복해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닫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우리 사회 특권층에 만연된 부정과 부패에 환멸을 느끼고 '강남불패'라는 '딴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박탈감과 분노로 치를 떨지만 그것도 잠시 뒤돌아서서 나도 그 대열에 낄 수만 있다면 끼고 싶다는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불 속 아이들의 표정에서 녹인 후 TV 속 오락프로그램과 함께 하루를 마감하는 이 땅의 대다수 중산층들에게 과연 노동자들의 삶과 파업은 과연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대학을 진학하지만 중도에 포기하거나 또 다시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에 재수를 하는 우리 아이들, 그들 대부분이 결국 이 사회의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기에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너무 척박합니다.

공부 못하면 힘든 일밖에 할 것이 없다며 무수히 들어왔던 부모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노가다, 막노동, 공돌이, 공순이라며 노동을 천대하고 무시했던 학교교육은 더 이상 옳지 않습니다.

교과서 어디에도 노동조합과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없습니다. 족벌보수언론들에 의해 왜곡된 노동조합과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역사를 후퇴시킨다는 파업만이 그들을 가르치고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자기자신은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임에도 머리속을 지배하는 사고와 존재의식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으니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최근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과 분신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러한 안타까움은 더해만 갑니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손배소와 가압류의 문제나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문제는 외면하고 노동자들의 시위과정에서 돌출된 화염병과 새총만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다시 이 나라 경제위기의 주범인 가해자로 뒤바뀌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문제해결의 당사자인 사용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부와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동자들의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하기는커녕, 비아냥대는 지금의 현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입니까?

한 마디로 교육의 부재입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과 노동3권에 대한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며 현행 법률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극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보수언론의 악의적인 보도가 가능했겠습니까? 사용자들의 반인륜적인 손배소, 가압류 조치는 물론 부당한 해고와 노조탄압이 있을 수 있습니까?

노동자들의 파업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순한 행동이 아니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인권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다소의 불편함과 거리낌없이 그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낼 것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된 학벌지상주의와 중산층의 허위 의식이 자리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득 어느 방송사 기자가 했던 고백이 기억납니다.

과거 자신이 노동운동에 대응하는 최고 공권력 운용부서인 대검찰청 공안부의 검사장, 부장검사들과 어울리면서 갖게된 생각으로부터,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 말입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보신탕을 얻어먹고, 이들과의 대화를 거치며 서서히 노사문제는 내 일이 아닌 창 밖의 일쯤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장기파업'에 따른 대외신인도 저하를 우려하며, 노조의 '극렬파업'에 대해 책임자를 엄단하겠다는 검찰의 엄포성 입장을 떠벌리는 선무방송을 했다"


척박한 입시 교육의 현장에서 아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로서 반성합니다.

"조·중·동을 읽고 거리낌없이 아이들에게 노동자들의 파업은 잘못된 것이며 우리나라 경제를 좀먹는 불법행위이다라고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결국 우리 사회의 노동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도 허위로 가득 찬 중산층 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사회에 나가 경쟁과 효율의 미명아래 끊임없이 생계를 위협받고 해고 될 수 있음에도 그들 스스로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서 노동조합과 노동3권을 부정하도록 하여 어느새 나는 가진 자들과 기득권층에 서서 존재를 배반하는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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