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비뇽에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아비뇽역에 내리자마자 역 중앙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관광안내소를 찾았지만, 이미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었다. 유럽의 상점이나 관공서는 오후 4시를 기점으로 문을 닫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은행의 폐점시간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어쨌든 운 좋게 지도를 가진 여행객을 만나 역에서 4km정도 떨어진 곳에 젊은 배낭 여행족을 위한 캠핑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여름에 에너지 절약을 위한 서머타임을 실시하기 때문에 밤 8, 9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아직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아낄 마음으로 나는 배낭을 단단히 메고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썼던가. 아비뇽의 다리가 불타고 있다고. 아비뇽 시내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캠핑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텐트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텐트를 빌릴 수 없냐고 물어봤지만 대답은 “NO”였다.
다시 4km를 걸어 아비뇽 시내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혹시라도 캠핑장 근처에 숙소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프랑스 특유의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미소를 머금고, 친절하게 불어로(!) 길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나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비뇽 시내로 들어서는데 식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고 있던 물통을 꺼내 식수대로 갔다. 배낭여행을 하는 서양인 2명이 1.5리터 플라스틱 병에 물을 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물을 담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데 두 청년 중 얼굴에 수염이 잔뜩 난 청년이 “Hello!”하고 내게 말을 건넸다.
정하지 못한 숙소문제가 신경이 쓰여 “Where are you going to sleep?(어디서 잘 거니?)”하고 물어보았다. “I didn’t decide the place. But If you want, come with us.(잘 곳을 정하지 않았어. 하지만, 원하면 같이 가자.)”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깐 동안 망설였지만 나는 그들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턱수염이 hotel, hostel을 쓰지 않고, place라는 단어를 사용한 의미를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길을 함께 걸으며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마틴과 그레그이며, 폴란드인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월드컵의 패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가로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노숙(!)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외국 배낭 여행족과 노숙을 한다는 사실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막말로 내가 그들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게다가 그들은 둘이어서 나쁜 마음만 먹으면 나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럽에서 여행하며 돈을 소매치기 당하거나, 강도를 만난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던 터라 불길한 의심이 마음속에서 회오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음 한 구석에서는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고픈 욕구도 있었다. 내 마음 속에서 불온한 의심과 도전의 욕구가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새로운 고난에 도전하여 그 고난에 몸을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면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노숙에 의기투합했고, 그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마틴이 3일 동안 씻지 못했다며 50센트에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노숙을 하게 되더라도 몸을 씻고 싶었기에 나는 순순히 그들을 따라 나섰다. 두 번째 시험은 샤워를 하러 들어가기 직전에 내게 찾아왔다. 샤워장에 락커가 없었기 때문에 한 명이 샤워장으로 들어가면 두 명이 남아 짐을 지켜야만 했다.
마틴과 그레그는 내게 먼저 샤워를 하라며 호의를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오만가지 상상을 다 했다. 그 상상의 클라이막스는 내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에 그들이 유유히 나의 배낭을 가지고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나는 그레그에게 첫 번째로 샤워할 수 있는 영광(?)을 양보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복대를 차고 있었지만 배낭에도 지갑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앞에서 지갑을 꺼내어 들고 샤워장으로 향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들을 믿기로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믿으면 다른 사람도 나를 믿을 것이요, 내가 다른 사람을 의심하면 다른 사람도 나를 의심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불같이 내 안에서 일어서는 의심의 불길을 애써 잠재우며 샤워를 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배낭을 가지고 달아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내 배낭을 지켜주며 서있는 그들에게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
샤워를 마친 우리는 싸구려 와인을 사기 위해 1시간 30분 가량 아비뇽 시내를 누볐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와인은 비싸기도 했고, 또 한잔씩 따라서 팔기 때문에 노숙을 위한 와인으로는 적당치 않았다. 잠을 자기 전에 와인으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몸이 새벽에 닥칠 추위를 견뎌 낼 수 있으니까. 내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지만 새로 만난 친구들 덕분에 한결 피로가 덜 느껴졌다.
그들이 와인을 고르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캔 맥주 3개를 샀다. 그들은 내가 5유로가 넘는 돈을 쓴 걸 알고 놀랐고, 나는 그들이 산 와인이 채 1유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그들에게 맥주를 건네며 한국에서는 좋은 친구들과 술을 나누어 먹는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는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며 아비뇽의 고성(古城)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비뇽의 고성에서 우리는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도 듣고, 각자의 조국과 삶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다시 1시간쯤 헤맨 끝에 노숙할 장소를 찾았다.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혹시라도 모를 새벽의 위험을 대비해 수풀로 은폐, 엄폐가 잘 이루어지는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습기를 막기 위해 바닥에 골판지를 깔았다. 폴란드 친구들은 내게 침낭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의 침낭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1인용 침낭을 함께 쓰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긴 바지와 잠바를 꺼내 입고, 비행기에서 챙긴 담요를 꺼내 덮으며 그들의 호의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잠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서로의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다. 새벽의 침입자를 대비해 서로의 배낭을 서로 묶는데 마치 그게 우리의 마음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별이 보이는 밤하늘을 보며 누워 싸구려 와인을 한 입씩 마셨다. 우리는 여자친구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 안을 가득 메웠다. 와인 덕분인지 한번도 깨지 않고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우리는 물통의 물로 간단한 세면을 하고 아침을 먹었다. 나는 그들에게 고추장을 맛보게 해주었고, 마틴은 매운 고추장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다음 행선지를 물으며 그들에게 다시 한번 놀랐다. 나는 그들이 당연히 유레일 패스를 끊어 기차로 이동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그들의 이동수단은 자동차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히치 하이킹.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식사는 배낭에 소지한 식빵과 햄, 잼으로 해결하고, 잠은 침낭을 이용한 노숙으로 해결하고, 이동은 히치 하이킹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여행은 배낭여행 중에서도 가장 독립적인 '무전여행'(!)이었던 것이다. 나는 스무 살을 갓 넘은 그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단지 그들이 무일푼으로 여행한다는 독립심이 부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낯선 곳을 경험하고, 고생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그 고생과 스릴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만나고 나서 나는 그들이 단 한번도 인상 쓰는 것을 보지 못했고, 단 한번도 그들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문득 호텔팩 배낭여행을 다니며 숙소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배낭족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여행지에서 두세 장씩 사서 모아두었던 엽서를 마지막 선물로 건네며 그들과 헤어졌다. 우리는 간략한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고, 서로에게 사진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짧은 하룻밤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그들에게 배웠다. 나도 고난과 불편을 불평하지 말고 그 순간들을 즐기는 마음을 가지길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