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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희 위원장
주봉희 위원장 ⓒ 송민성
<필승(必勝) version 1.0 주봉희>를 연출한 태준식 감독은 주씨를 "자유로운 감성의 소유자"라고 표현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이죠. 머리에 '파견 철폐'라고 새기는 거 아무나 할 수 없잖아요. 곧잘 하시는 퍼포먼스들도 그렇구요. 주 위원장님은 굉장히 다양한 고민을 하고 그것들을 직접 실천하세요. 동료 노동자들이 다 포기할 때 혼자 꿋꿋이 투쟁하시는 것 보면 정말 존경스럽죠."

영화는 주씨가 파견법 철폐투쟁을 시작할 무렵인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의 주씨는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노동자의 권리와 파견직의 부당함에 눈뜨게 된 것은 2000년 해고를 당하면서부터였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 6조 3항에 따르면 파견노동자의 최장근로기간은 2년입니다. 사용업체가 2년에서 하루라도 더 사용할 경우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사측에서는 단 1초도 넘기지 않습니다."

주씨도 파견법이 시행된 1998년 7월 1일부터 정확히 2년이 되기 하루 전인 6월 30일자로 해고통지를 받았다. 민주노동당의 추산에 따르면 당시 6000여명에 가까운 파견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그 중 정규직으로 채용된 인원은 3%도 채 되지 않았다.

주씨가 일하던 KBS에서도 227명의 파견노동자가 파견법에 의해 직장을 잃었다. 대부분이 5년 이상 KBS에서 일했던 사람들이었고 개중에는 18년 경력자도 있었다. 억울하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체로 회의적이었죠. 곧 쫓겨날 처지에다 KBS를 상대로 싸워봤자 못이긴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싸워보기라도 하자'는 이들 몇몇이 있어 함께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해고를 한 달여 앞둔 2000년 5월 28일 '방송사 비정규직 운전직 노조'가 결성되었고 비정규 운전직 반장을 하던 주씨가 위원장을 맡았다. 노조는 곧바로 항의 집회를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부서의 파견노동자들도 노조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들과 함께 하기위해 6월 7일 '방송사 비정규직 노조'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KBS 지부를 시작으로 SBS, MBC 지부가 생긴 데 이어 롯데호텔, 이랜드, 린나이코리아 비정규직 노조 등이 앞다투어 조직되었다.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컸던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도 안되는 임금을 받습니다. 근로기준법, 4대보험이요? 비정규직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파견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파견노동자들의 경우 파견회사 공제비율이 정해져있어 그것마저도 다 받을 수가 없다. MBC의 경우 기본파견료의 21%, 시간외수당의 10%를 파견회사 몫으로 공제한다. 명절과 창사기념일에 나오는 18만원의 특별격려금도 1만 5천원은 파견회사에게 돌아갔다. 주씨는 "이는 명백한 불법이자 이중착취"라고 지적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시간외수당은 100% 노동자가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도 버젓이 파견회사 공제비율을 정해놓았어요. 겉으로는 임금인상이라고 선전하지만 생색내기일뿐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오는 몫은 비슷합니다."

사정이 있어 일을 나가지 못하면 대체근무비라고 해서 일당을 제하고, 차 사고로 인한 수리비 역시 고스란히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방송이 워낙 시간에 쫓기는 일이잖아요. 뒤에 탄 기자나 피디들이 그래요, 급하다고. 같이 일하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마음이 급해지잖아요. 그래서 과속, 불법유턴하다 딱지 떼이고 사고나면 기자나 피디들 딱 모른척해요. 내가 '빨리 가자'고는 안했지않느냐는 거죠. 절대로 '빨리 가자'고는 안해요, '급하다'고만 하지."

그렇게 해서 내는 벌금이 1년 평균 100여만원쯤 된다. SBS의 한 조합원은 6개월동안 벌금만 140여만원을 내기도 했단다.

파견근로자에 대한 각 방송사의 문건들
파견근로자에 대한 각 방송사의 문건들 ⓒ 송민성
사정이 이렇다보니 운전직 노동자들은 출장과 휴일근무 등 시간외수당을 받기위해 혈안이 된다. 주씨는 "사측이 이를 이용해 교묘한 노조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배차순서를 일부러 힘들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밤 12시에 들어오면 새벽 4시에 또 취재를 나가도록 해놔요. 그러면 집에 가지도 못하고 숙직실이나 차에서 밤을 새야 합니다. 추워서 히터라도 틀어놓으면 '회사 차 마음대로 쓴다'고 또 얼마나 야단을 하는지. 힘들고 먼 출장은 꼭 조합원들을 시키지요."

"우리끼리는 죄수번호라고 불렀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대우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주씨가 일하던 KBS에는 정규직 운전자방과 비정규직 운전자방이 따로 있었다. 방크기는 물론 시설도 천지차이였다.

"정규직방에는 에어컨, 텔레비전 다 있죠. 우리 방에는 고물 선풍기, 16인치 흑백 텔레비전 하나 있었어요. 그마저도 우리가 돈모아서 사다놓은 거죠."

운전자들은 물도 돈을 내고 사먹어야 했다.

"한달에 2천원씩 냈어요. 하루는 우리 방에 물이 떨어져서 한 어르신이 약을 먹으려고 정규직방 물을 좀 드셨나봐요. 그랬더니 정규직 운전자들이 엄청나게 욕을 하더래요. 70도 넘으신 양반이 방에 와서 대성통곡을 했죠."

신분증도 달랐다. 정규직 운전자들은 KBS 직원 신분증이 있었지만 비정규직 운전자들에게는 '업무', '출입'이라고 씌여진 카드가 고작이었다.

"중간에 사진 대신 번호가 있어요. 우리끼리는 죄수번호라고 불렀는데 이 카드로는 종합청사 출입도 안되요. 잠깐 화장실 쓰는 것도 불가능하죠."

KBS 내에는 도서관, 은행, 치과 등 많은 편의시설이 있었지만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주씨는 "정말 서럽고 치사하고 야비한 대접을 받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뭉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홀로 노조를 지키다

ⓒ 송민성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의 탄압, 사람들의 무관심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는 노조원들의 생활고였다. 170여명의 조합원 중 실질적으로 노조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27명 정도. 그나마도 곧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조합비라고 할 만한 돈도 없어 주씨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조합을 운영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사람이 송성재 총무국장이었어요. 내가 등떠밀어 내보냈어요. 살 길 찾으라고. 나도 곧 떠날거라고 하면서요. 그 친구가 참 마음 아파했죠."

그때부터 주봉희씨는 방송사 비정규직 노조의 위원장이자 유일한 조합원이 되었다. '파견 철폐'라는 글자를 머리에 새긴 것도 그 무렵이다. 이 머리 덕분에 주씨는 덕분에 매스컴에 여러번 등장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머리카락과 피부가 많이 상해 "소갈머리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웃는다.

선천적으로 밝은 주씨였지만 그 역시 노조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이도 있는데 험한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가족들의 걱정, 혼자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할 때의 외로움,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 쉰이 넘은 몸을 뉘일 때 드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당장 갚아야 할 카드빚만 600만원이 넘는 경제적 어려움들이 시시때때로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주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30년전에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아 근로기준법을 알렸어요. 새천년이 밝았지만 반노동적 현실은 여전합니다. 비정규직이 800만이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나가야할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양산해내고, 이들을 돌봐야할 정부가 일방적 해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수백명이 해고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것이 정말 파견근로자를 보호하는 법률입니까? 나라도 이러한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어가는 노동자들도 있는데 살아서라도 그들에게 빚을 갚자고 결심한 거죠."

필승 주봉희!

또 하나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주씨와 함께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570여일동안 투쟁했던 한국통신 계약직 동지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기들도 어려운 상황에 모금통 돌려서 우리 노조에 보태주곤 했거든요. 작년에는 정말 차비도 없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동지들이 돈을 모아줬어요."

주씨는 현재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한달에 30만원 가량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그 돈이 주씨의 생활비이자 노조운영비의 전부이다. 나머지는 모두 주씨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그 결과 지금 그는 보증금 300만원에 15만원의 월세를 내는 한평짜리 방에 산다.

ⓒ 송민성
그러나 주봉희씨는 그러한 노력을 후회하지 않는다.
"파견법에 대한 인식도 확대되었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도 높아졌어요. 지금 KBS만 해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고용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거든요. 저희도 이번해에는 '절대로 해고되지 말자'라는 구호로 활발히 싸우고 있습니다."

주씨는 앞으로 방송사 전체를 한 데로 묶는 산별노조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파견법 철폐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파업 등의 강력한 투쟁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인적인 계획은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는데 쉽지 않네요. 지난 해에는 택시기사 자격증도 땄는데 밤에만 일할 수가 없더라구요. 야간 경비 자리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데…."

그는 그런 걱정은 일단 미루어 두기로 했다며 덤덤하게 웃는다.

"세상아 너두 망령이 들었구나"

주봉희씨는 시인이기도 하다. 하루에 서너군데 집회에 참석하고 나서 혼자 돌아올 때의 외로움,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 위원장으로서 1인 다역을 해야했던 어려움 등을 끄적이기 시작한 것이 어느 새 시집 한권을 낼 만큼의 분량이 되었다.

그의 글이 다듬어져 한곡의 노래가 되기도 했다(민중가요패 '우리나라'의 <노란봉투>). 그의 시집은 내년에 출판될 예정이다.

세상아 너두 망령이 들었구나
-주봉희

세상아 세상아 우리에게 왜 목숨을 주었니
모멸감 쯤이야 눈 감으면 잊어버릴 수 있지만
양심마저 찢기워지면 찾을 길 멀구나
세상아 세상아 울지 말아라
잊어버린 시간 쯤은 망각할 수 있으나
헝클어진 가슴팍을 헤쳐보니
득실거리는 구더기들 신이 났구나
하하하 간지럽다 뒹굴다보면
그 놈은 간데 없고 갈퀴만 남았구나
그려그려 싹싹 긁어가거라

(중략)

없는 놈 하늘만 쳐다보지만
가진 놈 헛기침이
늘신한 봄바람만 더럽히누나
세상아 세상아 가진 것 없으니
너무 가벼워 네 신세지지 않고
훈풍에 가벼이 날아가누나
/ 송민성
주봉희씨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마주앉은 세시간 내내 그는 말을 그치지 않았다. 그만큼 쌓아둔 말, 알리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도 그의 답변은 길다.

"인권변호사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만든 참여정부, 뭐하는 겁니까? 노동자들 손발 다 묶고, 집회하면 불법이라고 폭력진압하고. 요즘만큼 폭력적으로 나온 적이 없다고들 합니다. 여섯명의 노동자가 분신했는데 권력 다툼만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권입니까? 노동자들 죽으려면 죽어라, 이거 아닙니까?

노동자와 농민이 다 국민입니다. 노동자, 농민, 국민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극우언론들과 함께 노노갈등 부추기고 노조활동의 본질을 왜곡하는 게 현 정부입니다. 누가 누굴 선동하고 있는 겁니까? 마치 대통령이 노동자들에게 '더 싸워라', '더 죽으라'고 선동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앞으로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고민없는 노동운동은 참된 노동운동이라 할 수 없죠.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이 구호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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