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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읍 곳곳에 배치된 경찰.
부안읍 곳곳에 배치된 경찰. ⓒ 오마이뉴스 김지은

곳곳이 경찰이었다. 곳곳이 상처였고 곳곳이 신음소리였다.

21일 밤 9시, 시외 버스가 부안 나들목을 들어서자마자 경찰이 보였다. 두 줄로 늘어앉은 기동대원들이었다. 읍내로 들어서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경찰은 부안읍 곳곳에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경찰은 20일 모두 75개 중대 8000여명의 대원을 부안군과 읍, 12개 면 전역에 배치했다. 부안군 내 실제 거주자는 6만명 남짓. 부안군민 8명당 경찰 하나가 붙는 셈이다. 경찰은 이미 '야간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증명하듯 터미널 사거리에서 부안 수협(이곳은 지난 4개월간 '반핵 촛불집회'가 벌어졌던 곳으로 군민들은 '반핵 민주광장'이라고 부른다)에 이르는 약 200미터 거리에는 수백명의 경찰이 양 인도를 중심으로 포진해 있었다. 거리에 주민은 없고 경찰만 눈에 띌 뿐이었다. 상가는 모두 불이 꺼졌고, 자동차 진입도 금지됐다.

경찰이 '야간 촛불집회' 봉쇄에 나선 지 이틀째인 21일 밤 9시, 한 군민이 부안 수협 차도를 가로막은 경찰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경찰이 '야간 촛불집회' 봉쇄에 나선 지 이틀째인 21일 밤 9시, 한 군민이 부안 수협 차도를 가로막은 경찰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30미터 마다 경찰병력 포진, 오후 5시 이후에는 '신원검사'

경찰의 경비는 부안 수협이 가까울수록 더 삼엄해졌다. 경찰은 터미널 사거리에서 부안 수협에 이르는 길목을 아예 차단했고, 주민들을 선별적으로 통과시켰다. 곳곳에서는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아니, 우리 집에는 가게 해줘야 할 것 아녜요! 저기 코앞이 우리집인데!"

"촛불집회에 참가하러 온 게 아니라니까요!"

40대 주민 대여섯명이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모두 부안 수협 근처가 일터이거나 집인 주민들이었다. 이들의 실랑이는 이미 30분이나 계속된 터였다.

부안 수협 건너편이 집이라는 박아무개(41)씨는 기자를 보더니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부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에요. 여기보다 살기 좋은 곳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는 가슴이 떨려서 살수가 없어…. 내가 내 집을 코앞에 두고도 이렇게 들어가기가 힘들다니!"

생업에 지장을 받은 이들도 있었다. 부안 수협 건너편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홍아무개(42)씨는 오늘 학원문을 일찌감치 닫았다. 밤 11시가 돼서야 마지막 강의가 끝나지만, 20일과 21일 이틀간은 저녁 7시가 채 못된 시각에 닫아야 했다.

"아이들이 학원에 올 수가 없어요. 오후 5시만 되면 이렇게 삼엄해지는데. 학원차는 아예 다닐 생각도 못하고요. 그러니 학원을 어떻게 엽니까."

종일 경찰이 따라붙었다는 주민도 있었다. 터미널 사거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배아무개(49)씨는 21일 하루 가게를 나설 때마다 경찰의 '경호아닌 경호'를 받아야 했다.

"옷가게를 하니 옷을 줄이러 수선집에 가야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마다 경찰 한 명이 꼭 따라 붙더라고요."

주민들의 불편 호소는 그칠 줄 몰랐다.

경찰은 주민들의 항의에 그저 묵묵부답일 뿐. '어떤 기준으로 주민을 차단하거나 통과시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해질녘인) 오후 5시부터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고 있으며 지시가 내려오는 대로 처리한다"고 답할 뿐이었다. 결국 실랑이를 벌이던 주민들은 40여분만에 신분증을 내보이고 귀가할 수 있었다.

경찰이 쳐놓은 '철의 장막'을 통과해 부안 수협 앞에 이르자 "열맞춰! 열맞춰!"하는 경찰의 구령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졌다. 그들의 질서정연한 구두발 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이 소리를 뚫고 사람의 육성이 들렸다. 노란 점퍼를 입은 문정현 신부였다.

경찰에 둘러싸인 문정현 신부. 문 신부는 21일 밤, 촛불집회를 가로막은 경찰과 4시간동안이나 '대치'했다.
경찰에 둘러싸인 문정현 신부. 문 신부는 21일 밤, 촛불집회를 가로막은 경찰과 4시간동안이나 '대치'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40여분간 실랑이 끝에 통과한 주민

문 신부는 벌써 4시간째 경찰과 대치 중이었다. 지난 110여일간 촛불집회에 참여해 온 문 신부였다. 하지만 이틀째 문 신부는 부안 수협 앞에서 촛불을 들지 못했다.

문 신부의 주변에는 약 200여명의 경찰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동생인 문규현 신부가 8일째 '핵폐기장 반대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문규현 신부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도 경찰에 에워싸여 있었다.

문 신부는 지팡이를 하늘에 꼿꼿이 세운 채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놈들아 그런다고 촛불이 꺼질 줄 아느냐."

문 신부의 목소리가 어두운 하늘 속을 파고 들었다.

부안 수협 뒤편의 부안성모병원 앞에서도 한 차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원 입구에는 주민 10여명이 늘어서 주변을 지키고 있는 경찰에 항의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러 온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오늘만큼은 부안 수협을 80여미터 앞둔 이곳에서 멈춰야 했다.

이날 밤 10시,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씩 부안 성당 마당에 모여 들었다. 성당은 곧 부안대책위의 사무실이자 '반핵시위'의 거점이었다.

밤 10시 하나둘씩 성당으로 모이는 주민들

21일 밤 10시 촛불집회를 열지 못한 주민들이 부안성당에 모여 현재 부안의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21일 밤 10시 촛불집회를 열지 못한 주민들이 부안성당에 모여 현재 부안의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성당에 모인 주민들은 이날 하루 자신들이 겪은 일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10명 이상 모이면 경찰이 방패로 강제 해산시켰다는 주민, 귀가하던 중에 경찰이 '밤이 늦었으니 집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하더라는 주민, '반핵 플래카드'와 '촛불집회 무대'를 경찰이 강제철거하는 모습을 보며 펑펑 울었다는 주민….

이들은 "지금 부안은 사람 살 곳이 아니다"라며 입을 모았다. 그리고 '분노의 화살'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에게로 향했다.

주민 중 하나는 "선 질서 회복은 무슨 선 질서 회복인가, 정부가 먼저 질서를 안 지켜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핵폐기장을 유치한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군민 최아무개씨는 "국무총리, 행자부장관, 대통령의 말이 다 다른데 먼저 정부나 입장을 확실히 정하고 대화하자고 해라, 도대체 정부는 지난 4개월간 부안 군민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생각이나 하느냐"고 말했다.

중년의 한 군민은 "이대로라면 결국 민란이 터지고 만다"며 "공을 물 속에 밀어 넣는다고 넣어지나? 어디로든 튀어 오르기 마련이다. 지금의 부안이 그렇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혼자서 부안 수협 앞에 앉아 2시간동안 '마음의 촛불집회'를 열고 왔다는 주민도 있었다. 주부 김아무개(52)씨는 "두 시간 동안 김종규(부안군수)·강현욱(전북도지사)·윤진식(산자부 장관), 그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묵주 기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촛불은 안 꺼져요. 우리 마음에 있는 촛불이 꺼지겠습니까?"

이날 '반핵 민주광장'에서의 촛불집회 대신 성당에서의 집회를 가진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뭉쳐 있었다. 경찰도 반핵 촛불을 끌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언제건 시간만 정해지면, 시위든 집회든 불사할 각오가 돼있다고 말했다.

4개월간 촛불 들어온 군민들 "그래도 촛불은 안 꺼져요"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개월간 부안군민은 너나할 것 없이 촛불을 들었다. 저녁 7시만 되면 12개 면에서 부안군의 유일한 읍인 부안읍으로 몰려들었다.

부안대책위는 "격포리와 진서면은 아예 전용 버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매일같이 따로 교통비 들여서 오느니 성금을 모아 전용 버스를 빌렸다는 것이다. 운전 기사는 자신도 마음은 매한가지니 기름값만 받고 운전하겠다며 자원봉사를 했노라고 전했다.

밤 11시가 가까워왔다. 주민들은 서로의 귀가를 걱정했다. 인근의 변산면에서 40분이나 걸려 온 예순의 할머니를 서로 가족처럼 챙겼다. "오늘은 늦었으니 우리집에서 자고 가자"는 주부, "잠깐만 기다리시라"며 차를 소개해주는 중년의 군민….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동지예요,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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