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기는 하지만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 중에는 시인보다 더 시인답고, 소설가보다 빼어난 문장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다.
그야말로 '전설적인 문학기자' 한국일보 김훈과 지금은 <문예중앙> 주간으로 재직중인 중앙일보 이경철, 1997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정식 등단한 국민일보의 정철훈, 여기에 건조한 기사 문체에 훈훈하고 촉촉한 핏기를 배어들게 만든 세계일보 조용호 정도가 위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라 할만하다.
바로 그들 중 하나인 조용호(42) 기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문학적 소외지'로 인식되어온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그 땅에서 문학적 일가(一家)를 이뤄낸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맘껏 호흡하고 돌아와 문학기행집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마음산책).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따온 제목의 책은 조용호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와 애수 어린 문장의 맛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신이 몸담은 매체에서 10년 이상 문학담당을 장기독식(?)한 이력에다, 1998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해 지지난해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상재한 '기자 겸 소설가'라는 명함에 걸맞게 조용호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그닥 익숙하지 않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작가들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그들 삶과 문학의 향기를 남미의 현기증 나는 햇살, 혹은 아프리카 초원을 물들이는 붉은 황혼과 같은 문장으로 전한다.
전세계 최대의 불법 마약조직인 메델린카르텔이 전횡을 일삼는 콜롬비아에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절망과 고독을 읽어내고, 너무나 쓸쓸해서 차라리 허무한 웃음이 쏟아지는 페루의 해변에서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빈곤과 범죄로 얼룩진 케냐의 뒷골목에서 메자 므왕기의 <바퀴벌레의 춤>을 읽고는 "그래도 세상과 인간 속에 희망은 있다"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조용호의 '떠돎'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전하는 글솜씨는 더 말해 무엇하리.
조용호는 현재 휴직 후 장편소설 집필을 위해 칩거중이다. 곁에 없기에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노스탤지어를 불러오는 그의 글과 노래가 더욱 그립다. 오늘밤엔 "호르헤 보르헤스의 시적 정열이 만들어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포도주 맛은 어떻던가요"라며 은근슬쩍 술자리로 불러내 볼까?
10년의 '베트남 사랑'이 선물한 소설들
- 방현석 작품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오랫동안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왕래한 베트남에서의 체험을 녹여낸 중편 <존재의 형식>으로 2003년 황순원문학상과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방현석(42)이 작품집을 출간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 책에는 앞서 언급한 수상작 외에도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는 제목과 동명의 작품이 실렸다.
베트남에 상주한 조선소의 한국인 관리자와 베트남 노동자의 갈등을 축으로 베트남민족해방전쟁의 쓰라린 역사와 자신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남의 나라에서 타민족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어야했던 '박정희군대'의 아픈 기억, 인간과 인간간의 진정한 화해라는 간단치 않은 여러 메시지를 담아낸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자타가 공인하는 방현석의 '베트남 사랑' 10년의 역사가 가져다준 선물로 보인다.
1998년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방현석은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을 선보이며 독자들의 뇌리에 '노동소설가'로 각인된 작가. 하지만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작은 변화를 꾀하고 있는 듯하다. 평론가 박수연은 방현석의 변화를 "비범한 활동가를 보여주며 투쟁의 최고수위를 전달하던 종래 노동소설의 숨가쁜 호흡이 평범한 인간의 있을 법한 고민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다"고 진단했다.
마르크스를 30분만에 읽는다고?
- 질 핸즈의 <30분에 읽는 마르크스>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선결돼야할까? 일단 그의 철학에 영향을 준 헤겔과 포이에르 바하의 사상을 이해해야겠고, 아담 스미스와 케인즈의 영국 고전경제학에 관해서도 사전 지식이 있어야한다. 여기에 프랑스 고전사회주의자인 생시몽, 푸리에, 오웬이 구상한 사회주의의 모델도 인지해야함은 물론이다.
위와 같은 까닭에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기란 보통 사람으로서는 힘에 벅찬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물질을 통해 인간을 해석해 사회를 분석하고 변화시키는 '마르크시즘'이란 철학사의 무너지지 않을 금자탑을 세운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까지 거세시키기는 힘든 일. 이런 점에서 볼 때 질 핸즈의 <30분에 읽는 마르크스>(이근영 역·중앙M&B)는 그 출간의 의미가 크다.
책은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아우르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책의 특성상 대폭적인 생략과 요약이 행해졌지만, 한 권의 책으로 마르크스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30분에 읽는...' 시리즈는 마르크스 외에도 니체와 시몬느 보봐르, 프로이트 등이 출간돼 있다.
MIT의 수재들, 카지노를 정복하다
- 벤 메즈리치의 <엠아이티(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주연한 <레인맨>이란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자폐증 환자이지만 숫자에 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더스틴 호프만이 다소 허랑방탕한 동생 톰 크루즈와 함께 라스베가스의 카드 도박장에서 수백만 달러의 돈을 챙기는 장면. 최근 미국 ABC 방송은 바로 그 영화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음을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90년대 중반 MIT(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수재들이 첨단화된 시스템과 빼어난 두뇌를 무기 삼아 라스베가스 카지노를 돌며 달러를 긁어모았다는 방송사의 보도는 하버드 출신의 소설가 벤 메즈리치를 자극했고 그는 곧 이 '영화 같은 사건'을 한 권의 소설로 옮겨놓았다. <엠아이티(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황해선 역·자음과모음).
소설은 1994년부터 98년까지 미국 전역의 카지노를 순회하며 많게는 한 판에 40만 달러(한화 4억8000만원)를 벌어들이기도 한 MIT 출신 퇴직교수와 학생들의 뒤를 좇아 '업주는 절대 잃는 법이 없다'는 도박장의 법칙을 조롱하는 수재들의 흥미진진한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재미는 있지만 현실에서 따라하기에는 위험한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