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지적이다. 27일 가톨릭대 성심교정 학생회관에서 열린 이 대학 법학연구소(소장 박동균 신부) 창립기념 세미나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은 기조연설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이 경시되는 최근 한국 사회의 풍조에 대해 깊은 우려를 보냈다.
김수환 추기경은 “연간 150만 건에 이르는 낙태, 연일 이어지는 자살 소식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생의 가치와 의미가 상실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며, “평소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인간 존엄은 국가권력도 침범 못해
김 추기경은 “인간은 그 어떤 국가권력도 침범할 수 없는 존엄성과 기본 인권을 가지고 있다”며,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단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것이 아니라, 법 이전에도 이후에도 항상 존엄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모든 인간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존엄하다”며, “헌법에서 모든 국민이 존엄하다고 할 때에는 그가 잘났든 못났든, 설령 바보 천치라고 할지라도 인간인 한 존엄하다는 의미”라며 국가권력에 의해 인간존엄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한편 강연 후 강제추방의 위기에 몰려있는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를 묻는 질문에 김 추기경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문제가 평화적으로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은 왜 ‘존엄’이라는 말을 피하나
이날 강연에서는 각국 헌법에 명시된 인간 존엄과 평등 사상에 대한 김수환 추기경의 흥미로운 지적도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대다수 국가의 헌법에서는 1948년 UN이 선포한 세계인권선언에 따라 인간 존엄과 세계 평등을 명시했으나, 북한과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며, “북한 헌법에는 인민됨의 존엄을 잘 지켜야 한다는 표현만 있다는 점, 일본 헌법에는 존엄 대신 존중이라는 표현이 굳이 사용되었다는 점 등이 하나의 연구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를 거론하며 “일본 사람들은 철학 등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인간 존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정작 중요한 헌법에서는 존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며, “자의적인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법적으로는 천황만이 존엄하기 때문에, 다른 일반 국민들에게 존엄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색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나름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