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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친구의 자장면집에 갔을까?
- 강병철의 <닭니>


ⓒ 푸른나무
올 2월 충청도에서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한다는 소설가 강병철을 만난 적이 있다. 아마 소설가 이문구의 서울대병원 빈소에서였을 것이다. 어눌해 보이는 말투와 대한민국 어느 시골에서나 만날 법한 촌부(村夫)를 연상시키는 수수한 옷차림과 표정. 그는 붉어진 얼굴로 후배 문인들이 따라주는 소주만을 묵묵히 마시며 말이 없었다.

강병철이 그 살벌했던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며, 전교조가 결성될 시기부터 초지일관 운명을 함께 해온 충남의 핵심 전교조 교사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와의 만남이 있은 지 한참 후다. 제 손으로는 닭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빈소에서의 모습과 교육 민주화를 위해 구호를 외치며 손을 내뻗는 모습의 혼란스런 병존. 강병철은 그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의 한 사람으로 기자에게 다가왔다.

최근 강병철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동화라는 양식 속에 녹여낸 책 <닭니>(푸른나무)를 출간했다.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난 강병철은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각박한 도시' 서울에서 외로움에 몸살을 앓았다. 그 외로웠던 아이 강병철이 가난했지만 결코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았던 고향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는 <닭니>는 현재 강병철의 삶을 이해하는 단초로 역할한다.

책에는 늘어나는 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꼬리 3개를 잘라오라는 숙제를 받고 어린 새앙쥐를 찾아냈지만 꼬물거리는 그것들이 불쌍해 차마 죽이지 못하고, 대신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는 아이와 가난한 집안 탓에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자장면집을 열 것이라고 하자 시인이 되어 그 자장면집을 찾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작가의 유년시절 모습에 다름 아닌 '아이'의 행동을 보면 강병철이 그 선량하고 착한 얼굴로 해직을 감수하며 교육민주화 운동에 동참할 수 있었던 까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진정 불의에 분노할 수 있는 자는 용감한 사람들이 아닌 순수한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 역시 교사이며 시인인 도종환은 "흙 향기 묻어있는 알토란 같은 이야기를 써놓고도 자랑하거나 떠벌이지 않고 장승처럼 서서 빙긋이 웃는 강병철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읽힌다"는 말로 동료작가의 출간을 축하했다.

그들의 수필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시리즈


ⓒ 돌베개
인터넷과 영화가 독서의 영역을 침탈해 들어온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속도와 영상은 책읽기를 통해 얻어지던 '느리지만 꼼꼼하게 세상을 보는 법'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과 영화가 주는 정보와 재미만을 가지고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을 터. 그런 까닭에 독서의 유용성은 오늘도 유효하다.

한 사람의 축적된 사상과 삶을 통해 얻은 경험을 가장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수필을 통해 속도와 감각에 매몰된 청소년들에게 '천천히 가자'라고 속삭이는 출판물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돌베개) 시리즈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영상이 아닌 문자를 통해 삶의 진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데 있다.

1차분 5권에서는 한국사회 양심적 지신인의 대표격이라 할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와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자신의 모두를 바친 문익환 목사, '지조론'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조지훈 시인, 일제시대 소설가 이태준과 정지용의 주옥같은 수필들을 만날 수 있다.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훈훈해질 명문(名文)이 청소년들을 잠시나마 컴퓨터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진정한 수행자를 찾아서
- 효림스님의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 바보새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칭하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 지식인의 역할을 다 하며 사는 자는 많지 않고, 모두가 국민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실천하는 정치가 또한 적은 것이 현실이다. 수행자 역시 마찬가지다. 입으로야 '자신과 세계를 위한 정진'이라 강변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짜 수행자를 보아왔던가.

1968년 출가 후 전국을 떠도는 운수납자로 생활했으며, 87년 6월항쟁 이후에는 재야시민운동에도 참여한 바 있는 효림스님의 저서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바보새)는 위에서 언급된 가짜 수행자가 아닌 '참 수행자'를 찾아다닌 수십 년의 기록인 동시에 이 땅 불교계의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본 거울에 다름 아니다.

효림은 '마지막 괴각승'으로 불리는 혜수스님과 최악의 상황에서 진정한 도(道)를 목도한 명문스님, 세상 어떤 명리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외곬의 길을 걸었던 원진 스님 등 수십 명의 참 수행자가 살아온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진정한 해탈과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아빠의 첫사랑은 말괄량이 끝순이
- 정도상의 <아빠의 비밀>


ⓒ 내인생의책
'아빠'란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크고도 위대한 존재다. 그런 아빠가 누런 코를 찔찔 흘리고, 이불에 오줌을 지려 소금을 얻으러 다니던 오줌싸개였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도대체가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세상은 시간이란 쓴 약을 통해 아이를 어른으로 키운다는 불변의 진리를 알게돼야 비로소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법.

소설가 정도상이 쓴 동화 <아빠의 비밀>(내인생의책)은 바로 이 '이해의 시간'을 앞당겨준다. 아빠는 동화 속에 어린아이로 등장해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바지와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고, 학교를 갈 때면 군인들처럼 줄을 맞춰 군가를 부르며, 표현하진 못했지만 까치독사를 맨손으로 잡던 왈가닥 계집아이 끝순이를 내심 좋아했던 '비밀스런' 이야기를 숨김없이 들려준다.

출간 직후 만난 정도상은 "어느새 나만큼 훌쩍 키가 커버린 초등학교 6학년 아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을 꼭 한 번 들려주고 싶었다"며, "내 아들은 물론 이 책을 읽을 모든 아이들이 키뿐 아니라 마음까지 나보다 훨씬 넓어지고 깊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닭니 - 흙 향기 묻어 있는 알토란 같은 어린 시절 이야기

강병철 지음, studio 돌 그림, 푸른나무(2003)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효림 스님 지음, 바보새(2003)

이 책의 다른 기사

"스님은 맘 편해 좋겠수"

아빠의 비밀 - 아빠도 오줌싸개야?

정도상 지음, 이정규 그림, 내인생의책(2008)


신영복

신영복 지음, 돌베개(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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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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