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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햇살에 눈부신 야스쿠니신사의 기둥문
저녁햇살에 눈부신 야스쿠니신사의 기둥문 ⓒ 유용수
남태평양의 바다처럼 짙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야스쿠니 신사(靖國 神社)의 입구 돌기둥문이 시야에 가득히 들어온다.

“아, 여기가 야스쿠니신사로구나.”

도쿄의 한복판, 구단시타 지하철역을 내려 언덕으로 된 보도를 조금만 올라오니 마치 우리나라의 홍살문을 연상케 하는 일본 신사의 문이 버티고 서 있다.

입구에 세워진 기둥문을 들어서서
입구에 세워진 기둥문을 들어서서 ⓒ 유용수
문을 들어서니 저 멀리 청록색빛을 띤 장군의 동상이 정 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고 그를 중심으로 누런 잎으로 몸을 칙칙하게 감싼 은행나무들이 호위병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도열하고 있었다.

동상은 일본 근대육군의 창설자이며 야스쿠니 신사 건립에 힘을 기울인 오오무라(大村) 장군이라고 한다.

오오무라 장군의 동상
오오무라 장군의 동상 ⓒ 유용수
신사의 입구에서 본당으로 이어진 보도는 길이라고 하기보다 넓은 광장이라고 하는 편이 나았다. 독일 뮌헨에서 보았던 신성 로마 제국의 대로를 다시 보는 듯했다.

“우리는 출격을 합니다. 몸은 죽어도 정신, 혼은 영원히 살아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참가하고 있겠습니다. 착실한 동아시아의 발전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부모님,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형제자매여, 언제까지나 강하고 깨끗하고 밝게 살기를.”

“동기들이 차례차례 야스쿠니의 신들이 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잘도 생명을 유지해왔다고 절실히 느낀다. 설사 이번 출격으로 죽는다해도 아무 것도 남길 말이 없다. 야스쿠니에서 다시 만나자. 그럼 안녕.”


게시판에 전시된 젊은 가미가제(神風) 특공대원의 유서들이 절절히 가슴에 와 닿는다.

신사 건물 옆에 말끔히 단장된 전쟁박물관이 있었다. 문득 유리창 속에 진열된 한 장의 누런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에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는 공군 비행사들의 사진이었다.

아직 스물도 채 되지 않은 그들의 얼굴에는 소년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진을 찍은 며칠 후, 그들은 남태평양의 창공을 향해 차례차례 출격을 하였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죽어서 야스쿠니신사에서 만나자고.

일제 학도병 출전 기념전 안내문
일제 학도병 출전 기념전 안내문 ⓒ 유용수
제2차세계대전 중 이렇게 죽어서 이곳 야스쿠니 신사에 모인 영혼의 숫자가 230여만 위(位). 그들은 모두 천황을 위해 죽었다라고 해서 그들의 혼을 위하여 거의 매일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는 1869년 메이지(明治) 천황의 지시로 천황의 궁전 옆에 세워진 신사이다. 야스쿠니란 뜻은 “나라를 평화롭고 안녕되게 하다”는 의미이지만 실제로는 천황을 위해 싸움터에 나가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 신사를 세우게 된 것이다.

천황을 위한 싸움이란 것이 주로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지나사변, 제2차 세계대전 등과 같은 침략전쟁이었고 이 침략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명부가 그대로 이곳에 모셔진 것이다. 심지어는 패전 이후 도쿄재판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 도조 히데키와 같은 A급 전범도 함께 순국자의 명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가지는 의미는 종교적이라기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츠지카 미노루씨는 저서 <침략신사(侵略神社)>에서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국가 의식으로서 아시아침략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감당했으며 천황을 위하여 죽어 신사에서 제사를 받는 것은 영예로운 것이라고 교육되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서 마련한 청소년용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쟁은 정말 슬픈 일이지만 일본의 독립을 굳게 지키고 평화로운 나라로서 주위의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함께 번영하기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변이나 전쟁에 소중한 목숨을 바친 많은 분들이 야스쿠니의 신들로서 제사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대동아전쟁이 끝났을 때, 전쟁의 책임을 한몸에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도 있습니다. 나아가서 전후, 일본과 싸운 연합국(미국, 영국, 네덜란드, 중국 등)의 형식뿐인 재판을 받고 일방적으로 '전쟁범죄인'으로 누명을 쓰고 무참하게도 생명을 잃은 1068분들, 이분들을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쇼와(천황시호)의 수난자'라고 부르고 함께 신으로서 제사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늦가을의 풍취를 즐기며 이곳 야스쿠니 신사를 찾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야스쿠니 신사는 저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전하지 않고 오히려 수치의 과거를 자랑스러운 민족사로 포장하여 전하고 있는 것이다.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러한 역사관이 일반화된 일본의 내일을 생각하자, 저무는 해와 더불어 어두워지는 신사의 본당이 더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저녁 조명에 빛나는 야스쿠니 신사의 본당
저녁 조명에 빛나는 야스쿠니 신사의 본당 ⓒ 유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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