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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안현주

정부가 이라크 추가파병 수순을 밟는 가운데 이라크인들이 광주를 방문해 우리 정부의 추가파병 방침 철회를 요청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한국군이 이라크에 와서 죽으면 한국인들이 분노하게 될 것이며 이후 한국과 이라크 관계는 악화될 것"이라며 "지금 이라크에 필요한 건 군대가 아닌 식량, 의료, 재건 사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록 재건사업을 위해 비전투병이 오더라도 그들은 군인"이라고 말했다.

3일 광주에는 두명의 이라크 손님들이 방문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직후부터 쓴 일기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이라크판 안네 프랑크'로 불리는 아말 후세인 알완(14)양과 <이라크 투데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살람 알 아바스마흐드 주보리 기자가 그들.

이라크 파병반대 광주전남 비상국민행동(공동대표 김정길)과 (사)광주평화아카데미(이사장 김종재)가 주관하고 <시민의 소리> 후원으로 광주를 방문한 이들은 이날 오후 3시 국립 5·18 묘지와 구묘역을 참배한 후 강연회를 가졌다. 이들은 광주방문에서 이라크의 현 상황과 점령군인 미군의 실상에 대해 증언했다.

"이라크에 필요한 건 군대가 아닌 재건과 식량"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서 미군에 의해 벌어진 이라크의 참상을 전하는 살람 알 아바스마흐드 주보리 기자(왼쪽)와 아말 후세인 알완.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서 미군에 의해 벌어진 이라크의 참상을 전하는 살람 알 아바스마흐드 주보리 기자(왼쪽)와 아말 후세인 알완. ⓒ 오마이뉴스 안현주
국립 5·18 묘지 참배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광주와 이라크의 공통점을 들어 연대감을 나타냈다. 주보리 기자는 "여기에 온 이유는 죽은자와 산자의 연대를 위해서 왔다"며 "여기 (잠들어)계시는 분들이 군부독재와 싸웠던 때처럼 이라크 상황도 그때와 같다"고 말했다.

주보리 기자는 한국군의 추가파병과 관련해 군대가 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나시리아에 한국군이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모른다"면서 "만약 이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된다면 화낼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라크에 필요한 건 군대가 아니라 식량과 의료, 그리고 재건이다"고 밝혔다. 군대가 아닌 민간구호단체나 기업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의 의무 및 공병 등 비전투병 파병논란에 대해 아말 후세인양은 "그래도 그들은 군인이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어 "이라크인들은 비전투병이라고 하면 군복을 입지 않고 총을 들지 않는 사람을 떠올린다"고 설명했다. 주보리 기자는 이라크인들이 병과를 가리지 않고 군대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 "오랜 군부독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군 추가파병 방침 철회 주장의 또다른 근거로 한국과 이라크의 우호관계 유지를 들었다. 그는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사망하면 한국사람들은 이라크에 대해 분노하게 되고, 이는 후일 한국과 이라크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라크에는 한국산 자동차나 생필품 등이 널리 퍼져있어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다"며 "지금 수많은 미군이 죽는 것과 같은 일이 한국군에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미국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나타냈다. 아말 후세인 알완양은 "미국은 인도주의적 관점보다는 정책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라며 "미국은 죽은자들과 집이 부서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물질적으로 얻어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미군은) 감정이 없는 사람들 같다"며 두려움을 나타냈다.

아말 후세인양은 이라크 현지의 치안유지를 위한 추가파병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녀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이라크 치안은 이라크 사람들 스스로가 유지할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런 권한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보리 기자 역시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미국은 이라크인들의 자유를 위해 왔다지만 사담 후세인을 대신해 새로운 독재를 하고 있다"며 "최소한 후세인 정권때는 치안상태가 양호했다"고 주장했다.

주보리 기자는 저항세력의 활동에 대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저항세력 중에는 후세인 추종자도 있지만, 많은 수가 이라크의 자존심을 위해 싸우거나 가족들이 입은 피해로 복수심을 품은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에 의해 저항세력의 규모가 커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보리 기자는 5·18 항쟁 당시 공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광주의 질서가 완벽하게 유지됐다는 설명을 듣고 "이라크 남부지방에서도 (항쟁당시 광주와)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해 독자적 치안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강연회가 끝난후 2명의 이라크인들은 참석자들과 함께 촛불을 켜고 평화를 기원했다.
강연회가 끝난후 2명의 이라크인들은 참석자들과 함께 촛불을 켜고 평화를 기원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피해입은 한국 민간인에게 미안...한국군, 이라크서 싸울 이유 없다"

국립 5·18 묘지와 망월동 구묘역을 참배한 이들은 이날 저녁 7시 광주YMCA 무진관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해 이라크의 현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주보리 기자는 "망월동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독재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봤다"며 "(광주와) 똑같은 수많은 죽음들이 미군 점령하의 이라크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보리 기자는 미군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범죄'에 대한 증언을 계속했다. 그는 "친구의 형제들이 미군에 의해 죽고 23년전 공무원이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버지까지 체포됐다"고 소개했다. 그의 또다른 친구는 집 앞에서 여동생이 울기에 집에 들어갔는데 집안에 있던 미군이 친구를 사살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이어 "나는 미군이 가장 큰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민간인 4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 주보리 기자는 "개인적으로 이라크인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한국인 피해자가 생긴데 대해 굉장히 미안하다"며 사과의 뜻을 나타냈다.

주보리 기자는 취재활동 중 만난 다수의 정치조직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군이 이라크에서 빨리 나가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비보도를 전제로 '수백명의 미군이 이라크인들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 더이상 있고 싶지 않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석유를 위해서 (이라크와) 싸움을 하고 있다"며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싸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하지 말아달라"며 파병방침 철회를 한국정부에 거듭 요구했다.

아말 후세인 알완양은 "이라크로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이 민주화를 위해 어떻게 피를 흘렸는가를 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이라크 사람들이 한국의 경험을 들으면 큰 힘을 얻어 한국인들처럼 민주화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담 후세인을 대신해 이제는 미국이 폭탄과 탱크로 이라크를 지배하면서 이라크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뺏고 있다"며 "누구든지 미군에 대해 행동이나 말로 저항하면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이어 "미국은 가능한 한 이라크에 오래 머물려고 하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전쟁 중 집근처의 고아원에 미군의 폭탄이 떨어져 많은 아이들이 사망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아말 후세인 알완양은 "이라크인들이 민주화와 자유를 쟁취할 수 있도록 한국인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재건·의료 도우려면 민간구호단체 보내야"
6개월간 이라크 상황 들러본 한상진씨

ⓒ오마이뉴스 안현주
이날 광주를 방문한 2명의 이라크인 곁에는 한상진 함께가는사람들 평화팀장이 동행했다. 한 팀장은 지난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에도 반전평화운동을 위해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남아 활동한 전력이 있다.

미국을 보는 이라크인들의 시각에 대해 한 팀장은 "사담 후세인보다 더 큰 악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 팀장은 "후세인을 제거해준 미국을 고맙게 여기는 분위기가 잠깐 있었지만 미국을 겪어보니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한 팀장은 강연회에 앞서 광주우체국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이라크 상황이 잘못 전달되는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며 "이라크 치안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양호하다"고 주장했다.

한 팀장은 "현재 이라크에는 집집마다 총이 있다"며 "미국이 지금 이라크같은 무정부 상태라면 나라가 뒤집어졌겠지만 이라크는 그렇지 않다"고 전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종전 직후 이라크에는 자치 움직임이 있었지만 미국은 그것을 모두 와해시켜버렸다"면서 "그때 자치활동이 시작됐으면 상황은 많이 안정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팀장은 정부의 추가파병 논리인 '국익'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후일 이라크에 선거를 통해 정권이 들어서면 정권의 성격이 어떻든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 "군대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이라크인들이 군대를 파병한 한국에 호의적인 여론이 형성될 것 같나"라며 파병이 국익에 도움된다는 주장을 반대했다.

한 팀장은 "진정 국익 때문에 파병해야 한다면 군대를 보내지 말고 이라크군이나 경찰을 훈련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해 군사고문단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국익이나 명분에 도움도 안되고 단지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 파병한다는 것은 미친짓"이라며 "미국을 위해 한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한 팀장은 이달 말 이라크로 다시 들어가 평화교육센터 건립과 반전평화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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