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은 꽃이 피기 전 몽우리가 옛 선비들이 쓰던 붓의 모양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붓꽃의 서양 이름은 '아이리스'입니다. '아이리스'는 '무지개'라는 뜻이요, 그래서 꽃말도 "복음"(기쁜 소식)입니다.
성서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심판하신 후에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계약의 증거로 하늘에 무지개를 걸어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그 무지개가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겠습니까.
제 상상입니다만, 아마도 서양에서는 이 이야기와 결부해서 붓꽃이 건조한 산기슭(노아의 방주)에서 자라는 특성 등을 결부시켜 '아이리스(무지개)'라고 지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화투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화투에 그려진 꽃이 붓꽃이라는 사실도 아시는지요.
어린 시절 자주 보던 붓꽃은 노랑 붓꽃보다는 보랏빛 붓꽃이었습니다. 붓꽃을 꺽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면 보랏빛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던 붓꽃, 그 가녀린 꽃잎을 책갈피 속에 끼워두면 아주 얇게 말라 연애 편지나 크리스마스 카드 보낼 때 함께 넣어 보내면 그만이었습니다.
노랑 붓꽃은 노랑무늬붓꽃과는 다릅니다. 노랑무늬붓꽃은 하양 바탕에 노란빛이 약간 도는 것으로 희귀종이라고 합니다. 붓꽃은 프랑스의 국화(國花)라고 하는데 붓꽃에 관한 전설은 이탈리아에 있네요.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는 길에 붓꽃을 만나시거든 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들도 그러면 꽃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꽃을 닮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
'이탈리아의 피렌체라는 곳에 아이리스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어.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지혜롭고, 마음씨도 고왔지. 아이리스의 총명함과 아름다움에 반한 수많은 청년들은 청혼을 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서 어느 왕자와 결혼하게 되었어.
그런데 아이리스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어. 결혼한 지 10년도 안 되어 왕자는 병들어 죽고 말았던 거야. 아이리스는 홀로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용모와 교양으로 수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단다. 다시 여러 남자들이 청혼을 해 왔어. 그러나 왠지 그녀는 누구의 청혼도 받아들이지 않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젊은 화가 한 사람을 사귀게 되었어. 두 사람은 점점 친하게 되었고 화가는 아이리스에게 청혼을 했지.
그러나 아이리스는 거절을 했어. 그러나 화가는 아이리스가 감탄할 만큼 포기하지 않고 청혼을 했단다. 아이리스는 화가에게 들에 피어 있는 것과 똑같은 꽃을 그리되 벌과 나비가 날아와서 앉을 수 있는 꽃을 그리면 청혼을 받아주겠다고 했어.
드디어 그림이 완성되었고 아이리스는 꽃을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지만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았어.
"당신의 청혼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그 때 어디선가 예쁜 노랑나비 한 마리가 훨훨 날아 와서는 그림에 앉았어. 아이리스는 그 화가의 청혼을 받아들였지. 그 화가가 그린 꽃이 바로 '아이리스(붓꽃)'이라나.
꽃과 관련된 노래가 많습니다.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노랫말의 주제가 되었고, 시의 주제가 되었고, 그림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꽃을 볼 때마다 아이들에게 꽃과 관련된 노래를 불러 주었더니 막내가 5살 때인가는 보는 꽃마다 그 꽃하고 관련된 노래를 불러달랍니다.
아마 그 때 막내는 꽃마다 노래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예쁘지 않은 꽃까지도 노랫말이 붙여지고, 시의 소재가 되고, 글감의 소재가 되고,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들꽃들 하나 하나에도 빠짐없이 예쁜 전설들도 하나씩 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꽃은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배경으로, 어떤 시간에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예쁘지 않은 모습을 없지만 그래도 새벽 이슬을 담고 있는 꽃이 가장 예쁩니다. 특별히 붓꽃이 새벽 이슬을 달고 있으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보랏빛 붓꽃에서 이슬 한 방울이 '툭!' 떨어지면 보라색 물감이 대지를 물들여갈 것만 같고, 노랑 붓꽃에서도 이슬 한 방울 '툭!' 떨어지면 노랑 물감이 잔잔히 대지를 물들여 갈 것만 같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손에 물이 들 것만 같은 예쁘고 진한 꽃이 바로 붓꽃입니다. 화선지에 붓꽃을 꺽어 살짝 대기만 해도 물감이 화선지 위로 은은하게 퍼질 것만 같은 꽃이 바로 붓꽃입니다.
1997년에 출판된 <원미동 시집> 유경환님의 붓꽃에 관한 시를 소개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감할까 합니다.
남빛 가슴 한오큼 몽친
붓꽃
하늘에 칠하고 칠해도
그려지지 않는
바람이 불어도 불어도
건드릴 수 없는
들내에 반짝이는 여울뿐인
어둠 속
촛불 한 자루로 서 있는
그 향기 다 하도록
가늘어진 그리움
안으로 타는 영혼
- 유경환님의 <붓꽃>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