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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을 학교에 태워다주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라고 해봤자 보통 걸음으로 10분이면 충분합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도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것이 옳은 일이고, 매번 그래왔습니다.
그래도 두 세 번 아들 녀석의 등교를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건 녀석의 지각을 모면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에서야 숙제를 하느라 밥도 먹지 못하고 허둥대는 녀석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 차로 태워주었던 것이지요.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젯밤 9시가 넘어 학원에서 돌아온 녀석은 저녁을 늦게 먹은 후,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게임을 즐겼습니다. 동생에게서 전신 지압을 받고 난 내가 바쁜 일거리 때문에 컴퓨터를 요구하니, 이번에는 TV 앞에 앉아 평소 좋아하는 미국 프로 레슬링에 열중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 걱정 하나 없고 천하 태평인 모습이었습니다.
11시쯤,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든 녀석은 오늘 아침에도 7시가 넘어서야 어렵사리 몸을 일으켰습니다.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며 밥상 앞에 앉은 녀석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달래장에 맛있게 비벼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며 겨우 반 그릇 정도 비우고는 곧장 컴퓨터 앞에 가 앉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갈 시간에 왜 컴퓨터 앞에 앉느냐"는 할머니의 꾸중도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뭔가에 열중했습니다. 슬그머니 다가가서 보니 녀석은 인터넷으로 정보 자료를 찾아서는 복사를 해서 문서에다 옮기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학교 숙제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숙제를 하는 것임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숙제의 제목은 '아시아의 분쟁'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여러 분쟁 지역들의 갖가지 관련 사항들과 함께 지도까지 문서로 옮기는 일이니,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둘러 아홉 장의 프린트까지 마친 녀석은 그것을 내게 철침으로 묶어줄 것을 부탁하고는 급히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녀석이 아시아의 분쟁 지역들에 대한 숙지를 하지 않고, 그렇게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문서에 담아서 프린트를 하는 것으로 숙제 해결이 다 되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철침으로 보기 좋게 두 군데를 묵은 다음 녀석이 잊지 않고 가져갈 수 있도록 거실 문 앞에다 놓아주었습니다.
욕실에서 나온 녀석은 서둘러 옷을 입었습니다. 녀석의 옷 입는 모습도 가관입니다. 옷을 벗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옷과 조끼와 와이셔츠를 차례로 단추를 풀어서 벗는 것이 아닙니다. 넥타이의 매듭을 조금 내리고 와이셔츠 위 단추들만 두어 개 풀고는 그 와이셔츠와 조끼와 겉옷을 한꺼번에 통째로 벗곤 합니다.
다음날 아침 옷을 입을 때, 벗어놓은 그대로를 통째로 입는데, 그걸 볼 때마다 재주 한번 희한하다는 생각듭니다. 한번은 하도 우스워서 그렇게 옷을 입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겠다고 하니 훨씬 간편하고 손쉽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저만 그런 식으로 옷을 벗고 입는 것이 아니라 친구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은 오늘도 그런 식으로 옷을 입고, 내가 욕실에 들어가서 양치질을 하는 동안 바삐 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셨던 어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얼라, 얘가 이걸 그냥 놓구 갔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갈 시간에 부랴부랴 해놓은 숙제를, 내가 일껏 거실 문 앞에다 잘 놓아준 그것을 녀석이 그대로 놓고 갔으니, 또 한번 도대체 누굴 닮아서 아이의 정신머리가 그 모양이냐는 말이 나올 판이었습니다.
가스 불에 올려놓은 냄비를 깜빡 잊어 두 번이나 태워먹은 이력이 있을 정도로, 온 가족이 알아주는 건망증의 소유자인 아내는 또 한번 끽소리도 못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녀석의 숙제를 학교로 갖다주라고 하셨지만, 나는 녀석이 생각이 나서 되돌아올지도 모르니 잠시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내 예상이 맞았습니다. 잠시 후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거의 중간 지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내게 차로 태워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8시 20분까지 등교를 해야 하는데, 아슬아슬하다며….
차로 간다고 해도 별로 큰 효과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녀석을 차에 태웠습니다. 차들이 많이 움직이는 시간대인 탓도 있고 해서 역시 내 예상대로 시간을 많이 줄이지 못한 채 학교에 도착을 했습니다. 일단 정문으로 들어가서 다목적교실 앞에서 녀석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문에서 이어진 길과 후문에서 이어진 길이 만나는 지점 저만치 한곳에서 이상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명 아이들이 가방을 멘 채 '토끼뜀'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각을 한 아이들이 벌을 받고 있는 것임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후진으로 돌리던 차를 잠시 멈추고 내 아들녀석을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녀석 역시 그곳으로 가더니 쪼그리고 앉아서 토끼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야릇한 당혹감을 삼키며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조금은 우습기도 하고, 아들 녀석이 안쓰럽기도 하고, 지각을 하면 녀석이 그런 벌을 받는다는 것을 내가 왜 진작에 알지 못했나 괜한 후회도 들고, 복잡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지각한 아이들에게 벌을 주고 있는 선생님께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그 선생님 역시 내 차를 의식하고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차를 돌려 학교를 나오면서 나는 오늘 좋은 장면을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현듯 내 중학생 시절의 풍경도 아슴히 떠오르면서, 지각한 아이들에게 토끼뜀 벌을 주던 그 남자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그런 감독과 적당한 체벌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일 터였습니다.
오늘 지각한 벌로 한바탕 토끼뜀을 한 아들녀석과 모든 아이들이 아침부터 하루 기분 잡쳤다는 생각을 갖지 말고, 아침참에 운동 한번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심기일전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그 한바탕의 토끼뜀이 아이들의 몸 속 피돌기를 좀더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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