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 시기를 둘러싼 열린우리당내 의원들간의 논쟁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의 입당을 총선전략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 총선활용론'에서부터 "노 대통령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온정론'까지 각양각색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8일 "이런저런 요청이 있지만 소위 비리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에 국민의 의견을 듣고 최종적으로 (입당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며 입당연기를 시사했음에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심(盧心)의 진의를 살피며 당내 논쟁을 계속 이어갔다.
특히 지난 8일 저녁에 시작해 9일 새벽까지 이어진 의원연찬회에서 우리당 의원들은 입당 시기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 빨리 힘합쳐 국정운영 한 축 형성해야"
8일 밤 9시께 연찬회 도중 노 대통령의 입당연기와 관련한 발언을 전해 들었던 김근태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예산이나 주요 법안이 통과된 뒤에 입당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조기입당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 대표는 "우리당에 대통령의 입당이 필요한 것은 서로가 협력하며 난국을 정면 돌파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총선 승리를 이루자는 데 있다"며 "당정 분리를 통해 대통령의 영향력은 평당원 수준으로 하되 당정협의를 통해 당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정치지형을 만드는게 민주개혁세력의 총선 승리를 담보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봉균 의원도 "우리당이 정치개혁의 깃발만 든다고 국민들이 다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며 "앞으로 대통령 임기가 4년 이상 남아있는 이상 정부, 여당이 힘을 합쳐 국정운영의 한 축을 만드는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할 것"이라고 조기입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수 의원은 9일 오전 중앙상임위원회의 전 기자들에게 "특검이 내년 총선 때 끝날 텐데 입당 시기를 늦출 필요가 있느냐"면서 "내일 회의(중앙위원회의)에서 의견이 모아지면 적절한 방법을 택해 청와대에 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한 의원은 "대통령이 오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가 지지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농담조의 협박성 발언을 통해 조기입당론에 힘을 보탰고, 다른 한 의원은 "대통령과 빨리 의견을 조율해서 당도 대통령도 모두 고통받은 국민 곁에 다가가는 모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대통령 입당을 정치적 카드로 활용해선 안된다" 부정적 견해도
하지만 조기입당론이 지나치게 정략적이고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답보 상태에 있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통령의 입당을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입당을 '애걸'하는 모양새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 제시되기도 했다.
김원기 상임의장은 "대통령은 평상시 만남을 통해 당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며 입당 의사를 밝혔다"면서 입당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장은 "700억 대선자금, 측근비리 수사가 시작하는 마당에 입당은 어렵지 않겠나"며 "의장이나 대표 등 의총 결과를 모아 면담 기회를 갖는다 하더라도 입당 시기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정세균 정책위의장도 "우리 처지가 어렵다고 해서 대통령 입당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행위를 당의 인기회복에 쓰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조기입당론을 막아섰다.
정 의장은 "대통령 입당은 당이 필요하다고 카드로 활용하고 심지어 간청하고 일부 장관의 차출을 강요하는 방식은 국민에 신뢰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조기입당론과 더불어 정동영 의원의 '장관 징발론'도 같이 비판했다.
정 의장은 "지금의 특검법안 통과로 초래된 정국의 대치상황을 빨리 국정쇄신 국면으로 전환시켜야 하고 대통령은 함께 고민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김원기 의장과 김근태 대표가 조만간 대통령을 면담해서 당의 진의를 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의원은 "대통령의 입당에 대한 여러 고려 중의 하나가 중대선거구제를 통한 지역대립구도 완화에 대한 강한 미련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노력을 할 시간을 달라는 취지로 이해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하며 청와대와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 700억 수수설이 보도된 뒤 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입당연기를 시사한 발언을 두고 "측근비리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기 때문에 당에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정동채 홍보위원장은 9일 오전 중앙상임위원회 브리핑에서 "연말 산적한 국정현안을 원활하게 처리한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개각을 한 다음에 측근비리 수사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