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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이 지난 89년 환갑 나이에 생을 마치자 가장 먼저 한남동 순천향병원 빈소를 찾은 사람은 권중희 선생이었다.

빈소에 도착하자마자 임 선생의 영정 앞에 털썩 주저않은 권 선생은 "친일파들은 저리도 잘 먹고 천수를 누리는데 어찌 선생은 이리도 황망히 가시느냐"며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권 선생이 애도해 마지 않았던 임종국 선생은 생전에 '작은 소망'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전국 곳곳을 뒤져 친일파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임 선생은 마지막으로 일본에 가서 친일 관련 자료를 뒤지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임 선생은 결국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임 선생을 존경해마지 않았던 권 선생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백범 김구 선생을 흠모해온 분으로, 백주에 백범을 시해한 안두희를 응징하고 또 그를 통해 시해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분이다.

그런 권 선생이 임 선생과 비슷한 소망을 하나 가지고 살아왔다. 다만 권 선생은 일본행이 아니라 미국행이다. 우리 현대사 자료가 많이 보관된 미국내 기록보존소에 가서 백범 시해 관련 자료를 찾아 시해 진상을 속시원히 밝혀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권 선생은 한동안 이런 소망을 가슴속에만 간직해야 했다. 거액이라면 거액이겠지만 미국 왕복 및 1개월간의 체류비 30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했던 터다. 몇 년전 이런 사연을 전해들은 모 국회의원이 경비 일체를 대겠다고 했지만 결국 공수표를 날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권 선생을 그 '작은 소망'을 이루게 됐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1월 27일 모금을 시작한 지 13일 만인 9일 오후 모금액이 3000만 원을 넘어섰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옛 말이 헛말이 아님이 이번 모금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이런 일에 성금을 낸 분 가운데는 놀랍게도 100만 원을 보내온 분이 두 명이나 됐다.

박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현 고교 국어교사)가 권 선생 인터뷰에 이어 미국행을 위한 성금모금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박 기자나 필자 역시 기대는 반반이었다. 경험칙상 세상 민심이 이런 주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간다. 그리고 그건 '다행'이었다.

성금 관리 및 권 선생의 미국행을 추진해온 박도 기자는 최근 권 선생의 미국행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별 문제가 없으면 내년초쯤 권 선생의 미국행은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이 십시일반으로 한 뜻있는 인사의 '작은 소망'을 현재 그 문턱까지 이끌어냈다.

'권중희 선생 미국보내기 성금모금운동'은 하나의 '사건'이랄 수 있다. 대기업이 정치권에는 수십, 수백억 원대의 검은 돈을 건네면서도 이런 일에 단 돈 십원을 냈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여유있는 사람들도 이름내는 성금모금 행사에는 거액을 척척 내면서도 이런 행사에 소리소문도 없이 동참했다는 얘길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이제 겨울이 본격 시작됐다. 쌩쌩 추위는 들판을 휘달리는 시내는 물론 골짜기 작은 개울마저 꽁꽁 얼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얼음장 아래로 도랑물은 졸졸 흐르고 그 자락에서 미나리는 새 움을 틔운다. '작은 소망'은 바로 그렇게 아무도 몰래 소담스레 영그는 것이다.

끝으로 의를 좇아 살아오신 권 선생님, 이를 찾아내 옥으로 빚어낸 박 기자님, 그리고 이 두 분에게 박수와 함께 성금을 보내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리며, 권 선생님의 미국행이 꼭 실현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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