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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낭머리 전망대에서
소낭머리 전망대에서 ⓒ 김강임
예전에는 아주 가까운 곳도 여행 한번 하려면 망설였는데, 이제는 틈새만 생기면 떠나는 연습에 익숙해졌다. 더구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전설로만 여겨왔던 서귀포 기행은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좀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던 타성. 묵은 때가 쌓여 벗기기를 포기했던 이기주의적 발상까지, 조금씩 희석시켜 주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싶다.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동산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동산 ⓒ 김강임
서귀포를 중심으로 펼쳐진 해안절경은 언제 보아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조망이 아름다운 '소낭머리'는 신비로움에 대한 환호성과 역사에 대한 숙연함을 함께 간직하고 떠나야 곳이다.

소낭머리는 서귀포 70경의 한 곳으로, 계절 탓인지 한적했다. 그렇기에 소낭머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 숨가쁘게 달려온 발걸음을 잠시 식히는데는 여유가 있었다.

깍아 세운 절벽엔
깍아 세운 절벽엔 ⓒ 김강임
소낭머리는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동산'으로 기암절벽사이에서 가까스로 의지하고 있는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더구나 해송에서 느껴지는 절개와 푸르름도 좋지만 기암절벽에서 바다를 쳐다보면 아찔하다.

바위에 피어  있는 가을꽃
바위에 피어 있는 가을꽃 ⓒ 김강임
더구나 절벽 속에서 피어나는 억척스런 가을꽃은 바닷바람에 계절 가는 줄을 모른다. 절벽 위에 서 있으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다와 섬 그리고 섬을 에워싸고 있는 고깃배들이다. 마치 지구 끝에 와 있는 느낌이다.

소낭머리에 서 있으면 희비가 엇갈린다. 소낭머리는 천재화가 이중섭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살이하던 서귀포 초가에서 '섶 섬이 보이는 풍경'을 작품 배경으로 삼았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곳에 서면 작품 속에 주인공이 된 듯하다. 잠시 일상의 번거로움을 잊고 주위의 비경에 흠뻑 빠질 수 있다.

바다풍경
바다풍경 ⓒ 김강임
육모꼴로 갈라진 바위절벽 아래 투명한 바다 물이 넘실거리고 바위그늘 아래에는 예전에 마을사람들이 담수욕을 즐겼으며, 안쪽 해안은 수심이 깊어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다. 저녁 무렵 소남머리에서 출어를 준비하는 어선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볼거리이다.

소낭머리  기암괴석
소낭머리 기암괴석 ⓒ 김강임
그렇지만 육모꼴 기암절벽에 서면 제주 역사의 아픈 영혼의 절규가 아우성으로 다가온다. 굳이 제주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자면 소낭머리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 쳐지는 4. 3 당시 '살인훈련'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4. 3 당시, 소낭머리 벼랑에서는 '살인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처형이 진행됐다고 한다. 이렇듯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그늘진 아픔의 역사와 한이 서려 있다. 때문에 비경의 바다가에는 하얗게 파도의 포말이 부서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역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 김강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낭머리 기암절벽 사이에는 강태공의 모습이 한가로이 떠 있다. 영혼의 아픔을 달래주듯 절벽 사이에 피어 있는 가을꽃이 역사의 아픔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바다는 전설
바다는 전설 ⓒ 김강임
어느 곳에서나 보는 바다지만 소낭머리에서 보이는 바다는 주제와 테마가 있다. 절벽에 미끄러지듯 버티고 서 있는 '소나무의 절개'. 모양과 색깔 다른 기암괴석. 하얀 파도의 포말에 부서져 천년을 버텨왔을 절벽. 아침이면 출어 준비로 바쁜 바다풍경. 그리고 전설처럼 외로이 떠있는 문섬. 세상의 모든 그림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남녘의 바다 끄트머리 절벽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가을꽃들을 보니, 꽃잎을 따서 바다에 뿌려 주고 싶었다. 또한 이중섭의 작품 배경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낭머리의 비경을 가슴에 담고 떠나는 여행은 다시 시작일 뿐이다.

가을  꽃잎을 따서
가을 꽃잎을 따서 ⓒ 김강임
이렇듯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가진 것을 버리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버리는 것이 곧 얻는 것이다'는 깨달음의 이치에 접근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다행히도 이쯤해서 숨을 고르며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음에 그저 감사 할 따름이다.

그래서 40대에 떠나는 여행은 서로 공유하고 나누고, 반성하며 떠나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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