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불법 대선자금 수수와 관련,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가 검찰에 자진 출두하는 등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최 대표는 전날(14일) 청와대 4당 대표회담에 이어 15일 오전 민주당을 방문해 조순형 대표를 만나 노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공개에 대한 공조를 요청했다.
최 대표는 이 자리에서 "어제 4당 대표회담에서는 구구절절 옳은 말씀을 하셨다"며 조 대표를 극찬했고, 대선자금 수사와 내년 예산안 처리에 대한 민주당의 특별한 협조를 부탁했다. 특히 최 대표는 노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도 공개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혔다. 이에 대해 조 대표도 "대선자금 문제를 빨리 털고, 이제는 경제와 민생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며 원칙적으로 동조했다.
최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이회창 전 후보의 기자회견을 언급하면서 "이 후보는 한평생 깨끗하게 살려고 무지 노력하신 분인데 현실 정치에 매몰돼 이런 어려움 겪고 있다"며 "노 대통령도 국민 앞에 떳떳이 나서야 하는데, 조 대표가 앞장선다면 한나라당도 적극 협력할 생각"이라고 말해 전면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조 대표는 "최병렬 대표도 (다 밝히기로 한) 결심을 잘했고, 이 총재도 그런 얘기를 했다는데 잘했다"며 "동시에 노 대통령도 완전히 털고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을 완전히 근절해야 한다"고 밝혀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에 한나라당과 협조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최 대표는 오전 11시5분께 민주당 대표접견실로 올라왔고, 조 대표는 곧바로 나와 최 대표를 맞았다. 두 사람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약 15분간 대화를 나눴으며, 간혹 서로 농담을 건네며 웃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최 대표와 함께 박진 대변인과 은진수 수석부대변인 등이 동행했으며, 민주당에서는 김경재 상임중앙위원·강운태 총장·심재권 총재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조순형 "노 대통령도 털어야"... 최병렬 "한나라당 적극 협조할 것"
양당 대표들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외에도 노 대통령에게 가진 서로의 불만들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조 대표는 4당 대표회담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고, 최 대표는 김혁규 경남도지사의 한나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입당을 놓고 '구태정치'라며 노 대통령을 비난했다.
다음은 양당 대표의 대화 요지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당이 어려울 때 맡아서, 최 대표나 나나 고생이 많다."
최병렬한나라당 대표 "마찬가지 아니냐.(웃음)"
조 "어제(14일) 청와대 회동 어땠나. 어제 내가 봉투를 들고 들어가니까 그게 좀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회담 끝나고 어떤 대표는 나와서 '뭘 가지고와서 읽느냐'고 하고, 다른 당 대표는 사전에 당론을 정해오는 것이 회담의 예의가 아니냐고 하더라. 4당 대표회담이 덕담이나 나누고 적당히 합의나 하고 오는 자리인가 본데 나는 그런 것 잘 모른다. '대통령이 이라크파병 얘기를 하니까 각 당 대표들이 당론을 정해 가지고 오라' 이거 그런 형식이 되는 것 같아서 문제다.
또다른 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중간에 끼어들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당 대표가 거기서 대통령을 거드는 발언을 왜 하나. 또 대통령에게 하나 좀 불만인 것이, 내가 얘기한 것에 대해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든지 해야지 반응이 없다. 어제도 딱 세 가지만 답변하고 딴 것은 답변 안하더라."
최 "……."
조 "건강은 괜찮은가."
최 "괜찮다."
조 "저는 단식하는 분 정말 존경한다. 단식을 해본 적이 없어서…."
최 "오죽 답답했으면 단식을 했겠나. 하여튼 지금 나라 상황이 너무 어렵다. 사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 쓰다듬어주고 해도 시간이 부족한 형편인데, 지금 대통령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다음 총선에만 모든 정신이 다 간 것 같다. 일차적으로 우리 당의 광역단체장을 청와대 불러서 설득하고, 사람을 보내서 빼가지를 않나. 옛날 구태정치를 그대로 하면서 무슨 새 정치를 하자는 것인지 납득이 잘 안 간다."
조 "그렇다. 대선자금도 이번 기회에 다 그냥 털고…. 최병렬 대표도 결심 잘하셨다. 아까 이 총재도 그런 얘기했다는데 잘했다. 동시에 노 대통령도 완전히 털고 정경유착을 완전히 근절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갈 거냐."
최 "이회창 후보는 한평생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신 분인데 현실 정치에 매몰돼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는 이번 일로 한국정치가 돈 시비에서 해방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솔직히 지금 500억이다, '차떼기' 하는 험악한 얘기들이 쏟아져서 국민들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그런데 어제 10분의1 얘기를 대통령께서 했다. 세상만사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지 않는다. 이 후보가 그만한 돈을 부정한 방법으로 조달했다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액수를 그쪽에서도 썼다고 본다.
오늘 이회창 후보가 스스로 감옥 가겠다는 각오로 책임지겠다고 검찰에 출두했다. 노 후보도 상응한, 양심적인 조처를 하는 것이 국민들 앞에 떳떳한 모습이라고 본다. 나는 정말 이번 일이 한국정치가 50년 구악을 깨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고 조 대표가 앞장서서 해 나간다면 한나라당은 전적으로 힘을 합칠 생각이다."
조 "어제 내가 그래서 대선 승자로서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최 "어제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고, 경청했다."
조순형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최병렬 "한나라당으로 오시라"
양당 대표는 내년 예산안을 연내에 처리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 대표는 "지금 우선 당면한 게 정치개혁 관련한 여야협상인데 빨리 마무리 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으며 조 대표도 "오늘 아침 보도를 보니 계수조정소위가 잘 안돼서 연내처리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 대표는 "총무에게 오늘 잘 조정하도록 지시하고 왔다"고 밝혔다.
양당 대표는 또 농담을 섞어가며 각 당의 재정적 어려움 토로하기도 했다. 대화 도중 조 대표는 최 대표를 향해 "한나라당 당사는 빌린 게 아니냐"고 물었고, 최 대표는 "YS시절 지은 것이지만, 지금은 천안연수원과 당사를 모두 내놨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또 "빨리 당사를 팔고 국회 안으로 들어가 원내정당화 해야 하는데, 와서 보는 사람도 없고 전혀 팔리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조 대표는 "우리는 10개월치 임대료를 못 내고 있어 소송도 걸려있고 국고보조금도 가압류한다고 하더라"고 답변하며 웃었다. 조 대표는 "그래서 지금 길에 나앉을 판"이라는 말을 하며 웃었고, 곁에 있던 강운태 총장도 "혹시 (한나라당에) 남는 것 있으면 좀 달라"는 농담을 건넸다.
이에 최 대표는 "길에 나가게 되면 한나라당으로 오시라"는 농담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