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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 편 - 1권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책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 편 - 1권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이 책 <한국 현대사 산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이는 1970년대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현대사 서적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70년대를 보는 시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전태일'로 대표되는 인권 유린의 현장과 '경부고속도로'로 대표되는 박정희 대통령 중심의 독재 정치이다. 이 두 가지의 거대한 역사적 사실 중에 전태일에 대한 것보다는 박정희에 대한 것만을 다루는 역사 서적들이 태반이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명한다.

"전태일은 가고 없다. 사람들은 전태일을 잊어 버렸다. 남은 건 경부고속도로다. 역사는 스스로 다가와 대중의 눈앞에서 옷을 벗지는 않는다. 대중의 세상 인식은 물질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강준만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운영 전략에 대하여 '군사적 성장주의'와 '수출의 전쟁화'라고 요약한다. 박 대통령은 국가 주도적인 성장 중심, 수출 위주의 전략을 통해 국가의 경제력을 키워나가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출 군사 작전의 이면에는 농촌 인구의 급감과 도시 빈민촌의 형성이라는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었다. 값싼 노동력에 의존한 수출 전략은 도시 곳곳에 공장 노동자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들의 복지나 삶의 질에 대한 문제는 '수출 중심'이라는 커다란 이름에 가려져 철저히 무시되었다. 여기에서부터 바로 전태일이라는 노동자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당시의 상황을 시인 김지하는 <오적>이라는 시를 통해 통렬히 풍자하고 비판한다. 그는 이 시에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다섯 도둑들로 빗대어 표현한다. 이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민중들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물질적 풍요를 약탈하는 도둑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오적들이 부정부패와 권력 유지의 야욕 속에 헤매고 있을 때에 많은 노동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절규를 외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전태일은 '바보회'라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단체를 결정하고 평화 시장 내 노동 실태에 관한 설문지를 작성한다.

전태일의 분신은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자성의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독재 정권의 하수인들에 의해 억압되고 무시되었다.

독재를 위한 노력은 언론 탄압과 김대중을 비롯한 다른 정치인에 대한 억압으로 점점 그 얼굴을 드러낸다. 신문사 편집국장이 중앙정보부원에 의해 통제 받고 감시당하던 시대, 투표 결과가 조작되고 박정희의 표를 82.3%로 하라는 뜻의 메모가 시장에게 전달되던 시대가 바로 70년대이다.

"중앙정보부는 신문사 및 TV 방송국에 압력을 넣어 김대중 의원에 관한 것은 일체 보도가 되지 않도록 엄청난 통제를 가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보도 지침을 내려 '김대중에 관한 기사는 좋든 싫든 무조건 쓰지 마라. 김대중이라는 이름 또한 쓰지 마라. 이름만 봐도 국민들이 생각한다'고 협박을 가했다" - 김옥두, <고난의 한길에도 희망은 있다>에서 인용

농민들의 도시 이주를 종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아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에는 인색했던 부패 정권에 대한 저항도 일어났다. 청계천 일대를 비롯한 판자촌을 대거 철거하면서 경기도 광주로 강제 이주 당한 빈민들이 가옥 취득을 요구하며 서울시와의 면담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하자 대규모의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북파 공작원들의 한 맺힌 세월에 대한 분노 또한 '실미도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거져 나왔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정권의 필요에 따라 양성되기도 하고 폐기처분되기도 했던 사람들. 이들의 인권에 관해서는 정권의 어느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대통령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통령 종신제를 위한 '10월 유신'일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선언한 10월 유신은 소위 말하는 '색깔론'을 무기로 한 독재 정권의 묘략이었다.

박 대통령은 10월 유신 선언 말미에서 '나 개인은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이미 모든 것을 바친 지 오래'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70년대 후반에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자기 희생적 발언을 던진다.

그의 무덤에 침을 뱉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가 행한 인권 유린에 대한 반발 때문일 것이다.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으로도 포장될 수 없는 지독한 부정부패와 인권 유린, 군사적 사고와 독재 정권 유지의 오명 속에 존재하는 대통령.

이것은 아마도 지울 수 없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과거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권이 짓밟은 인권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조명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이상의 전태일, 북파 공작원, 언론 탄압을 위한 프레스 카드제를 없애기 위하여.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 -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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