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4당 대표와 가진 회담에서 한 ‘10%’인지 ‘10분의 1’인지의 발언으로 뒤숭숭하다. 대통령직을 걸었다는 이 발언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세간의 평판은 한결같이 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재연했다는 불만으로 충만하다. 대통령의 입이 너무 가볍다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정작 가벼운 것은 언론이다. 발언의 맥락에 대해서는 도무지 주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이 무시하고 사람들이 놓친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나라당은 떼강도와 같은 수법으로 기업으로부터 돈을 갈취하여 500억원이 넘는 불법 대선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진 이후 물귀신작전에 돌입했다. 노 대통령이 문제의 발언을 하기 직전 한나라당의 입들에서는 무슨 말들이 나왔는지 보자.
최 대표는 “한나라당이 이만한 규모의 돈을 받았다면 노무현 대통령 캠프측도 최소한 그 30~50%는 받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라며 “이는 현재 진행중인 대통령 당선 무효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조선> 12월 11일자)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은 12일 이광재(李光宰) 전 국정상황실장의 1억원 수수혐의와 관련, "이씨가 1억원을 불법으로 거둬 민주당에 전달하고 중앙선관위에 회계처리가 안됐다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당선무효 사유"라고 말했다.
그는 비대위·주요당직자 연석회의에서 "열린우리당측이 개인비리다. 당이 받지 않았다고 말을 바꾸는 것은 이런 법적 문제 때문"이라며 "단돈 10원이라도 선관위에 회계처리가 안되고 노무현 후보 캠프로 유입된 것이 확인되면 바로 법적 대응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국민> 12월 12일자)
김성완(金成浣)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검은 돈으로 당선된 것도 모자라 검은 돈을 뇌물로 챙긴 혐의가 확인된다면 대통령 자격을 상실한 것이며 탄핵감"이라고 주장했다.(<국민> 12일자)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은 11일 “대선에서 진 사람에게 ‘차떼기’로 돈을 줬다면 대선에서 이긴 사람에겐 적어도 ‘밭떼기’로 돈을 주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했다.(<조선> 12일자)
박진(朴振) 대변인은 이날 "노 대통령의 왼팔과 오른팔인 최측근들이 모두 불법 대선자금 조성과 관리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밝혀진 이상 진상규명을 위해선 노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노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국민> 13일자)
50%, 당선 무효, 법적 대응, 탄핵, 검찰 조사 등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들이 도를 넘은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라곤 전혀 없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결함에 덧칠을 하며 대통령을 겨냥하고, 한나라당의 2중대를 자임하는 민주당이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을 거드는 상황에서 대통령직이라도 걸어야 하는 것 아닐까?
돈 없이 선거를 치르지 못하는 불법선거의 풍토를 뜯어 고치고 정치를 개혁하며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행위가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물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가볍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10%를 넘어서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나고 다시 선거를 하게 되면 그것도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면 물귀신작전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한나라당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검찰 수사에 부담을 주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검찰이 개의치 않고 수사를 철저히 하면 그만이다.
한편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는 15일 열린 상임중앙위에서 "노 대통령에게 재신임 국민투표 철회, (열린우리당에 입당을 하지 않는) 초당적 국정운영, 검찰이나 특검의 측근비리 수사에 대한 협조와 청와대 개편, 중립내각 구성, 겸손한 언행 등을 요구했는데 답변은 3개밖에 하지 않았다"고 말한 후 "언행에 대해 쓴소리 한 것도 듣기만 하고 반응이 없어 말하는 사람이 참 우습게 보였다"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겸손한 언행을 요구한 것이 ‘쓴소리’라는 ‘자평’이다. 노 대통령이 무슨 불손한 언행을 했을까? 가벼움도 아니고 불손했다는 얘기다. 재신임 선언도 맥락이 있는 것이며, 중립내각 같은 요구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대통령 임기가 채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느닷없이 웬 중립내각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가볍다는 인식은 후보 시절부터 조중동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사리판단을 정확하게 해야 할 때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