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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제자리를 돌듯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다행이 바람은 없었다. 하지만 추웠다. 사람들의 훈기가 다 빠져나가자 산정은 맘껏 서늘해져서 청년의 몸속으로 오스스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청년은 꼼짝없이 앉아 하늘만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둥근 호수 같았고 거기에 또 태양이 있었다. 한 하늘에서 호수와 태양이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부터 청년이 기다린 것은 천신이 아닌 신용이었다. 그러나 신용은 여기에도 오지 않았다. 가끔씩 해가 움직이면서 사방에 빗살무늬를 던지기도 했으나 그저 그뿐이었다.
그는 도저히 신용에 대한 미련을 거둘 수가 없었다. 처음 태왕의 요구를 거절한 것도 신용을 보기 전에는 떠날 수 없었던 때문이었다. 그는 반드시 신용을 만나야 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제후와 헤어진 그 다음 날도 강에 나갔으나 신용은 그에게 현신해주지 않았다. 스승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틈나는 대로 나가보았으나 해가 뜨면 강이 잠잠하고 강이 몸부림을 치면 해가 구름 속에 숨어버렸다.
에인은 다시 해를 바라보았다. 벌써 서녘으로 성큼 물러나 있었다. 해가 일단 서쪽으로 기울면 신용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었다. 하늘까지 그대로 호수 같은데 태양
만이 저 홀로 져갈 모양이었다.
'이틀 후면 떠나야 하는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어찌하여 신용은 종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때였다. 태양이 하늘 호수를 향해 빛살을 쏘았다. 강하면서도 은은한 빛살을 고운 물감처럼 하나하나 차례로 쏘았다. 각각 다른 색깔이었고 방향도 달랐다. 그 빛살들이 서로 그렇게 흩어지는가 했더니 다음 순간 한군데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러자 곧 선명한 무지개가 되었다.
그 무지개가 징검다리처럼 대기에 걸렸다. 그때 서쪽 끝에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용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무지개를 타고 오는 그것은 하나도 아닌 다섯의 용이었다. 용들은 서로 몸을 붙인 채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고 그들의 등 위에는 번쩍번쩍 빛이 나는 황금빛 마차가 실려 있었다.
오룡거(五龍車)였다! 용들이 끈다는 바로 그 황금마차였다. 놀랍게도 하나가 아닌 다섯용이 그렇게 나타난 것이었다. 황금마차, 생각도, 상상조차도 해보지 못한 금빛 마차까지 싣고 용들이 자기를 향해 오고 있었다.
에인의 온몸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그의 열이 대기를 녹이고는 다시금 자신에게로 휘감겨들었다. 그것은 희열이었다.
'오! 마침내 보았다. 태호 복희는 신룡을 보았고, 나는 오룡거를 보았다!'
그는 후들후들 떨면서 일어나 절을 올렸다. 한데 그 순간,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찰나에 뭔가가 그의 머리를 휘덮었다. 그것은 두꺼운 구름장과도 같은 깊고 깊은 잠이었다. 에인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꼼짝도 없이 계속 그렇게 잠을 잤다.
사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깨어나 사방을 돌아보았다. 캄캄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횃불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벌써 술시가 지난 모양이었다. 그는 자세를 가다듬고 똑바로 앉았다.
백성들이 횃불을 들고 줄지어 천단을 돌기 시작했다. 주악인은 피리를 불었고 어떤 이는 춤을 추었다. 경쇠가 댕댕 울리자 백성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에인이 신족(神族)이 된 것에 대한 경배의 노래였다.
그때 태왕이 참성단으로 올라와 그의 옆에 앉았다.
"신님들이 오셨더냐?"
태왕이 물었다.
"아니옵니다."
"그럼 무엇을 보았느냐?"
에인은 자신이 본 것이 정말 생시였는지 아니면 꿈속에서인지 그만 분간할 수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왔을 때까지 자신은 잠들어 있었던 때문이었다.
"오룡거를 보았사옵니다. 하지만 꿈속인 것 같사옵니다."
태왕은 청년의 넓은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만 일어나시게."
에인이 일어나 천신께 하산 제배를 올릴 때 태왕은 속으로 다섯 수에 대한 풀이를 해보았다. '신조 봉도 다섯 가지 목소리와 다섯 색의 깃털, 이번에도 다섯 수의 오룡거…. 이건 필시 에인이 다섯 나라를 가진다는 예시로다!'
태왕은 에인의 손을 꼭 잡아 쥐고, 그가 마치 황금마차이기라도 한 듯 조심조심 참성단 계단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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