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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들 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하여 진리로 통하는 책들이 있다. 이 가운데 <맹자(孟子)>라는 책은 특히 현대에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일러주는 바가 매우 크다. 필자가 특히 마음의 경구로 삼고 있는 것은 맹자가 그 제자들에게 일러주었던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는 글귀이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구절은 학문하는 사람의 소박성과 책임성을 명시하고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 노릇 하는 것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에게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 노릇 하는 것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군자가 누리는 즐거움치고는 참으로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부모와 가족의 무탈,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음, 그리고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군자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강사 생활을 하면서 의외로 이 세 가지는 나를 잡아주는 든든한 밧줄이 되었다. 첫 번째 즐거움이야 하늘의 도우심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내 노력의 소산은 아니다. 지금껏 천원짜리 복권하나 당첨되지 않았던 나이지만, 맹자의 말을 따르면 인생이 최고로 즐거울 수 있는 이유의 1/3을 거저 받은 셈이다. 늘 감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 한다.
두 번째 즐거움은 언제나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면서 채찍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오늘 당장 죽는다고 가정했을 때, 하늘 가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고 세상과 나의 삶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당당한 삶은 하늘과 사람이 두렵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에는 도덕적 자신감으로부터 내 자신의 일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등을 말할 수 있다. 최소한 밥 먹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면, 오늘 하루는 부끄럽지 않게 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되고 나면 조금은 부러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어진다. 내 자신의 삶이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므로 두려울 이유도 없고 자신감이 없을 이유도 없다. 소갈비 먹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삼겹살을 먹어도 즐거울 수 있고, 10년도 더 된 경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그리 부끄러울 것도 없다. 돈이 많아서 가지는 자신감과는 분명히 다른 종류였다. 내 일과 내 삶에 대한 당당함이 만들어 준 의외의 즐거움이었다.
세 번째 즐거움은 강사가 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이 즐거움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늘상 배우는 자리에 있다가 처음으로 남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다는 것이 그야말로 내게는 천금같은 귀중함이었다. 강단을 처음 올라설 때 발걸음 하나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울 수 있음도 처음 알았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부모님의 정신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자식이 10년 넘게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모든 부모들에게는 고통이 되기 일쑤다. 그것을 순식간에 즐거움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부모님은 잠시 동안은 그러한 자식이라도 자랑스럽다. 말 그대로 부모님의 불안해하는 정신병을 치료할 수 있는 용도이다. 물론 약효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맹자가 말한 본의에 조금 더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다. 지방대학교 학생들이어서 영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난 늘 학생들을 잘 만났던 것 같다. 영어나 수학을 좀 못해서 그렇지, 그 외의 모습들에서 난 늘 영재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토론이 깊어질수록, 많은 이야기가 오갈수록 이들은 점점 더 나를 놀라게 했다. 작은 방향 설정 하나로 이들이 생각하는 깊이가 그렇게 깊어질 수 없었다.
맹자가 왜 가르치는 즐거움을 군자삼락에 넣었는지 그 이유를 여기에서 알 수 있었다. 삶의 기준과 생각이 바뀌는 학생들도 보았고, 행동양식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학생들도 보았다. 한 학기 수업을 통해 자신이 고민했던 진로 문제를 스스로 새롭게 설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내가 설정하고 있는 기준과 말 한 마디가 학생들의 인생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알았을 때, 그 즐거움은 불안한 나의 미래까지도 상쇄시킬 수 있었다. 강사료 문제나 안정되지 못한 신분의 문제는 학교당국이나 교육부와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까지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수업을 통해서 새롭게 바뀌어 가는 21세기의 영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학생들이 나를 강사 생활에서 못 떠나게 붙잡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명 군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즐거움만 안다면 모두가 군자가 될 수 있다는 맹자의 말에서 내 인생이 그리 값어치 없는 삶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내가 인생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근거가 2000년도 훨씬 더 지난 맹자의 말이기 때문에 조금은 고리타분한 면도 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남을 가르칠 수 있다는 이 자리의 의미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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