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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랑하는 아들에게

올 한 해도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가는 즈음이구나. 사람들이 도저히 어길 수 없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시간이라는 허상(虛像)은 근대적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긴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그물의 덫에 걸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지.

그래서 일 년이니, 한 달이니, 일 주일이니, 오전이니, 오후니 하는 시간 단위들은 마치 철칙처럼 우리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 아니겠니. 사실 한 해가 간다는 것이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안에서 보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이겠느냐. 인간의 의식으로 헤아릴 수 있는 자연의 순환이나 생명의 싸이클이라는 것조차 하잘 것 없는 미미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해를 희망으로 맞이하려는 어리석은 반복을 계속하고 있지. 마치 힘들게 산 위로 굴려 올리자마자 다시 밑으로 굴러 내리고 마는 시지프스의 바위 덩어리처럼 말야.

이처럼 그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어리석은 행동을 멈출 수 없는 '험난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실존(實存),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동시에 거역할 수 없는 '천형(天刑)'이라는 철학자들의 말이 생각나는구나. 하지만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그런 인식이 니힐리즘의 세계관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올 한 해는 네게 있어서나 내게 있어서나 참으로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혹독한 시간이었구나.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과연 있는 것인지 미욱한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도대체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있어 아직 이 세상에 많은 꿈을 펼쳐야 할 젊고 유능한 인재였던 널 데려갔는지,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만약 있다면 부정하고 또 부정하여 '일흔 번'을 되풀이해서라도 저주하고 싶은 마음뿐이구나. 공평하고 불편부당해야 할 '정의의 화신'이 어쩌면 이리도 가혹하게 너와 내게 고통과 절망의 형벌을 내리고 있단 말이냐.

나뿐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삶의 저편에 속하는 죽음의 세계는 알 수 없겠지만, 이제 넌 나보다 먼저 그곳에 가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답답하기만 하구나. 만약 그 세계에서도 이 세상에서처럼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할 수 있다면, 또 이세상과의 끈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수 있다면, 넌 도대체 왜 꿈으로도 내게 아무런 말이 없단 말이냐. 내가 절망을 이기지 못해 생명을 갉아먹는 형극(荊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 환히 알면서 왜 내 앞길을 이리도 캄캄하게 놓아둔단 말이냐.

지난 금요일은 네가 26년 전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지. 네가 우리 집에 태어났을 때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물론 우리 가문 전체에 얼마나 기쁘고 가슴 설레는 축복이었는지, 그 행복감과 충만감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니.

네 할아버지께서는 손(孫)이 귀한 집안에 네가 출생한 소식을 들으시고 그 근엄하시던 분이 무릎을 치시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눈물까지 보이셨지. 당시 나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어떤 분은 아들을 얻고 나서 하도 기뻐 한밤중에 공원에 올라가 운동장을 몇 바퀴나 뛰어 돌았다고 하던데, 나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마음이었단다.

네가 자라면서 우리들에게 주었던 작은 걱정이나 염려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들이야 네가 주었던 기쁨에 비하면 그야말로 태산에 솜털 같은 정도에 불과했지.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한편으로 대견스러우면서도 얼마나 염려가 되었는지, 기숙사에 머물며 4년 간 학교에 다니는 동안 네 엄마는 안타깝고 안쓰러워 수시로 전화를 하고, 네게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을 택배로 보내고, 걱정을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지.

특히 네가 태어난 날이 돌아와도 따뜻한 밥 한 그릇, 네가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 만들어 먹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려 눈시울을 적시곤 했단다.

네가 떠나고 없는 세상에서 올해 처음 네 생일을 맞이하는 네 엄마와 내 심정이 어떠했을지 너는 짐작이나 하느냐. 우리 부부는 네가 떠난 후 서로의 아픔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말을 아끼고, 눈길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말 그대로 '여리박빙(如履薄氷)'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단다.

화기(和氣)가 넘쳐흐르고 즐거운 웃음이 끊이지 않던 우리 집안이 하루아침에 서로 서로 의식하며 전전긍긍해야 하는 적막하고 싸늘한 분위기로 바뀐 것은 모두 네가 떠나 버리고 만 때문이 아니겠니.

즐거운 것을 보아도 즐겁지 아니하고, 우스운 것을 보아도 웃을 수 없는 삶이 얼마나 힘겹고 모진 생활인지 그걸 겪어 보지 않은 이 세상 사람 그 누가 알 수 있겠느냐. 무엇을 먹어도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고, 무엇을 해도 그 의미를 온전히 붙잡을 수 없는 삶.

이처럼 모든 게 허깨비 같이 허망하고 일체가 메아리처럼 허탄(虛誕)하게 느껴지는 세상을 산다는 것이 이리도 뼈를 깎아내는 고문인 줄을 그 누가 알겠느냐. 그런 것을 몰라주는 세상이 야속하다는 게 아니다. 그 고통을 어떤 것으로도 이겨낼 수 없다는 아득한 절망감이 나를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하게 하는구나.

나에겐 상의도 하지 않고 네 엄마는 네 생일을 그냥 보낼 수 없다 하여 작은 사찰에 재를 올리도록 부탁을 했던 모양이더구나. 위대한 성인들은 그 탄생일을 기념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그 죽은 날을 기념한다는 말이 있는데 자식 생일날에 그 명복을 비는 재를 올리러 절에 가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 얼마나 참담했겠느냐.

살아 생전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한 회한과 이제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너의 모습을 생각하며 네 엄마와 함께 사찰로 향했지. 때맞춰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이 어지럽게 춤을 추는 겨울 산에는 스산한 바람만이 가득하더구나.

아직 떨어지지 못하고 나무에 매달려 차디찬 바람에 서걱거리는 몇 잎의 참나무 잎새들이 내는 소리가 내게는 저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처절한 울음소리처럼 들렸단다.

혼자 절을 지키고 계신 비구니 스님께서 정성스레 준비하신 제물을 부처님 앞에 올리고 널 위한 재를 두어 시간 동안 올렸지. 너의 왕생극락을 빌고, 널 위한 재를 올리는 공덕으로 주변에 널린 무주고혼(無主孤魂)들께서도 좋은 곳으로 천도되시기를 기도 올리고, 몸과 마음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승의 수많은 무명 중생들이 편안해지기를 간곡하게 기원했단다.

네 영가 앞에 청수(淸水)를 따라 올리고 절을 하면서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에 가슴이 메고 목이 막혀 잠시 숨을 쉴 수 없더구나.

이 세상의 법도대로라면 어찌 애비가 자식 앞에 절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스님께서는 속가(俗家)의 예와 불가의 예가 다르니 먼저 떠난 영가에 절을 하는 것은 당연한 예법이라고 말씀하시더라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식이 부모의 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자식이 부모에 앞서 세상을 떠난 것만큼이나 가슴이 미어지는 역설(逆說)이 아닐 수 없겠지.

네 엄마는 여름 내내,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된 지금까지도 널 보낸 마음 속의 화기(火氣)를 이기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다니며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지만 몸이 정상이 아니란다.

어디에선가 내려다보고 있을 너도 안타깝겠지만, 옆에서 매일 지켜보아야 하는 나도 그런 네 엄마에게 작은 도움이나 위안조차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가슴이 아리기만 하구나. 그 어떤 것이 네 엄마의 그 가슴에 뚫린 큰 구멍을 메워 줄 수 있으며 텅 비어 버린 속을 채워 줄 수 있겠느냐.

가난한 교사였던 내게 시집을 와서 온갖 고생을 해 가면서 너희들을 낳아 기르고, 내가 대학 교수가 되고 박사학위를 받게 해 준 네 엄마 생각을 하면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인데, 이제 인생 장년기에 접어들어 이처럼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모두 내가 어리석고 지은 죄가 많아 그리 된 것 같아 생각할수록 가슴이 막혀오는구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여 넌 아마도 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을 먼저 떠나 편안하고 안락한 피안의 세계로 간 것이라고 믿고 싶구나. 그럼에도 아직 이승에 남은 우리는 널 위해 무엇인가 뜻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서 너의 넋을 위로해야 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를 외면할 수 없단다.

그게 최소한 널 먼저 보내고 이승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그래서 '실질적 가해자'인 카이스트 측과 여러 방안을 상의하고 모색하고 있지만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원만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구나. 그것이 극도의 절망에 빠져 패닉 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네 엄마와, 사고 이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물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를 절망의 구렁에서 건져내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경로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뜻대로 진척되지를 않아 더욱 속이 타는구나.

영악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능력도, 자질도 모자라는 내게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네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겠지. 그나마 잘 진행되었더라면 네 엄마 가슴에 맺힌 상처를 약간이라도 달래 줄 수 있으련만 그마저 마음대로 되지를 않으니 더더욱 죄책감만 커지는 듯하구나.

재를 끝내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너의 한 서린 몸짓인 듯 흩날리는 눈송이는 얼굴을 때리고 바람결은 매섭게 휘몰아쳐 옷깃을 날리더구나. 스님께서 싸 준 제물 음식 몇 가지를 들고 앞서 내려가는 네 엄마의 가녀린 걸음걸이를 보면서 나는 문득 솟구쳐 나오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단다.

지금도 너의 그 작은 몸집과 빙그레 웃던 네 얼굴 모습만 생각하면 숨이 탁 막히며 눈물이 배어 나오는데 그렇게 흘린 눈물이 올 한 해 얼마나 많았는지…내가 눈물을 흘려 네가 편안하고 네 엄마 마음이 조금이라도 달래질 수 있다면 내 몸 속의 피를 모조리 다 눈물로 바꾸어 쏟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구나.

나는 학생들에게 희곡을 가르치면서 비극의 기능을 설명할 때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비극은 인간 정신의 고양(高揚)을 가져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지만, 내가 흘리는 눈물은 나를 정화하지도 못하고 내 영혼을 성숙시키지도 못하는 것 같구나.

연극을 통한 상상과 가상의 체험이 당사자가 직접 마주친 비극적 현실에 어찌 비교될 수 있겠느냐. '연극 같은 현실, 현실 닮은 연극'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서 말하는 것일 뿐, 아무리 위대한 비극이라 해도 내가 겪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네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 너와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에게 약간의 돈을 보내 네 생일을 기억하며 밥이라도 한번 먹으라고 했다면서 그렇게라도 네가 친구들의 기억에서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눈치더구나.

나 역시 그 마음과 무어 다를 게 있겠느냐. 넌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사라진 것은 네 육신일 뿐 너에 대한 정겹고 따스한 기억들이야 널 아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결코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넌 영원히 젊은 청년으로 살아 남아 있을 거야.

만해 스님께서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하고 노래하셨듯이 아무리 네가 나에 앞서 먼저 떠났다고 해도 내가 보내지 않는 한 넌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것 아니겠니.

아무리 계절이 바뀌고 매서운 추위가 우리 삶을 위협해도 사랑하고 신뢰하는 깊은 마음 속에서야 그 무엇이 움직이고 변하겠느냐. 절절한 사랑의 힘은 천 년이 넘어서도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영화도 있었지만, 내가 네게 말로 표현하지 못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이 이 모진 세월의 강을 넘어 언제까지나 변치 않고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마. 그래서 언젠가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마.

편히 쉬거라, 사랑하는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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