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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우리 고장에서는 가수 이미자씨의 '공연'이 있었다. 오후 3시와 7시, 두 번의 공연을 합해 어림잡아 유료 관객만 약 2000명 정도 몰렸다고 한다. 주최측은 처음부터 '태안문예회관'으로는 관객 수용이 어림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문예회관 바로 옆에 있는 '군민체육관'을 공연 장소로 택했다.

'이미자 효(孝) 콘서트'라는 이름의 공연 광고가 지난달 28일자 <태안신문> 16면(맨 뒷면)의 전면을 차지하면서부터 지역 사회 모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사람들마다 하루에 한번 이상 '이미자 쇼' 얘기를 할 정도였다.

"이미자 온대. 이미자 보러 안 갈래?"
"왜 안가, 이미자 보러 가야지. 평생에 다시없을 기횐데…."

태안성당 성가대의 여성단원 중에 이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다. 이미자 공연 하루 전날, 저녁 연습에 결석을 했다. 동료 한 사람이 성가대 멤버인 남편에게 이미자씨의 결석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남편 왈, "내일이 공연이잖아요. 공연 준비를 해야지요." 그러자 모든 단원들이 큰소리로 웃었다.

그 정도로 가수 이미자씨의 태안 공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어디서나 손쉽게 화제가 되곤 했다. 여기에서도 나는 연예계 대중 스타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미자 공연 소식은 단연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동료 교사들 중에는 부부가 함께 관람하려고 3만5000원짜리 귀빈석 입장권 두 장을 구입한 이도 여럿이었던 모양이다.(특별석은 3만원, 일반석은 2만원이었음) 아내는 집에 와서 내게 그 얘기를 하며 매우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가수 이미자씨를 보는 일에 7만원씩이나 지출할 마음은 아예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대비해 거의 연일 강행군을 하는 성당 성가대의 합창 연습에 참가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아내도 성가대원이어서 이미자 공연 관람을 마음에 꼭 잡아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이미자 공연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공연 하루 전날 태안군에서 '국가유공자'들에게 초대권 한 장씩을 선물했다. 읍사무소에 가서 초대권을 받아와서는 이틀 전, 천안에 있는 손녀의 기말시험 수발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다음날 해가 지기 전에 꼭 오시도록 했다.

다음날 오후 어머니가 집에 도착했을 무렵, 모 정당의 한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부부를 이미자 공연에 초대를 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나는 성당 성가대 연습을 이유로 정중히 사절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성당에 가기 전, 어머니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공연 예정 시간 30분 전이었는데도 군민체육관은 물론이고 문예회관 앞 광장 가득 차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그러고도 계속해서 몰려드는 차량 때문에 교통 경찰관들이 땀을 뺐다.

어머니를 모셔다 주는 길에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괜히 낯이 뜨거웠다. 대중가수 이미자를 보기 위해 꾸역꾸역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잠시나마 함께 있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모호한 심리 구조를 지닌 나 자신이 다시금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대중가수 이미자씨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갖는 관심은 엉뚱하고도 모호한 것이었다. 광장 여러 곳에 간이음식점들이 등장해 있었다. 그 간이음식점들을 보는 순간 엄동설한 찬바람 속에서 저녁 장사를 하고 있는 그들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들의 오늘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적이 궁금했다.

또 대중가수 이미자씨의 오늘 공연 수입은 총 얼마일까? 그것도 궁금했다. 이미자씨의 공연 수입과 저 간이음식점 장사치들의 수입 차이는 얼마나 될까? 그 엄청난 격차와 대비 속에 자본주의의 냉혹한 속성 같은 것이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대중의 경박성 같은 것도 그 사이에 한 켜를 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우스운 생각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궁금증을 접지 못했다. 저렇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오늘 하루 여기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혹 가수 이미자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는 않을까? 저들 가운데 오늘 하루 장사 수입과 가수 이미자씨의 공연 수입 규모를 계량하여 대비해 보는 사람은 없을까? 그리하여 뼈아픈 비애 같은 것을 삼키는 사람은 없을까? 에이, 괜한 생각….

나중에 한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이미자 효(孝) 콘서트'의 입장료 수입은 8천만 원 정도이며, 이미자씨와 기획사가 반반씩 나누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날의 저녁 공연 때는 적이 의아스러운 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미자씨가 공연 도중에 무대 좌우를 오가며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다가는 무대와 가까운 관객 속에 앉아 있는 변웅전 전 국회의원을 무대 위로 불러 올려 관객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변웅전씨가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일할 때 자신이 신세를 많이 졌다는 둥 사설을 늘어놓고는 관객들의 박수까지 유도했다는 것이다.

전혀 예정에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주최측인 태안신문사 관계자는 기획사와 사전 협의를 할 때 태안군수 한 분만 이미자씨가 소개해 관객들에게 무대에서 인사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결국 주최측은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태안신문사는 빗발치는 항의 전화로 곤욕을 치렀다고.

변웅전씨는 내년 4월 총선에 출마가 유력시되는 사람이다. 그걸 이미자씨가 몰랐을까. 그들 사이에 사전 약속이 있어서 그런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지만, 이미자씨의 조심스럽지 못한 그런 행동은 태안 사람들을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련 후보 변웅전씨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신지역 감정의 망령이 휩쓸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태안 사람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맞물려가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중가수 이미자씨가 보여준 그런 돌발적인 '행동'은 우리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되새겨보게 하기도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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