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장수에 관심을 갖는다. 오래 살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진시황제 같은 이는 평생 늙지 않는다는 불로초를 구하려 했고, 현대인들도 보약이나 보양식이라면 눈이 벌개진다.
우리 선조들도 장수에 대한 열정은 이에 못지 않았다. 옷이나 각종 살림살이 따위에는 '목숨 수(壽)'자를 수놓는다. 돌잔치에서 아기들이 집도록 하는 물건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실타래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장수에 있어서 우리 조상들은 십장생을 빼놓지 않았다. 이름 그대로 10가지 오래 사는 것 즉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따위의 상징적인 것들을 일컫는 것이다. 십장생을 장식하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도자기, 문방구류, 베개모, 자수, 그림 따위에 많이 보이고 있다.
경복궁 교태전 동쪽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조대비(신정익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 자경전이 있다. 이 자경전 뒤꼍 담의 가운데에 보면 보물 810호로 지정된 ‘십장생굴뚝’이 있는데 굴뚝에는 십장생과 바다, 포도, 연꽃, 대나무, 백로 따위를 조각하였고, 윗부분에는 가운데에 용, 그 좌우에 학을 새겨 놓았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십장생을 무척이나 좋아한 듯하다.
문화재청 궁중유물전시관(관장 강순형)은 개관 열한 돌을 맞아, '병풍에 그린 송학이 날아 나올 때까지'란 주제로 <십장생(十長生) 특별전>을 마련했다. 일반인 및 방학을 맞은 청소년을 위해 지난 12월 23일부터 새해 2월 22일까지 두 달간 문을 연다.
한국 사람의 정서와 사상에 많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삶의 문화코드인 십장생은 우리의 가장 친근한 소재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전시회는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기획된 이 특별전은 전국 박물관, 개인이 소장한 그림, 조각, 공예 등 총 120건으로 십장생의 격조 있는 유물들을 한데 모아 살펴보는 자리다.
십장생(十長生)은 인간의 불로장생(不老長生)이란 꿈과 염원을 나타낸 대표적인 상징인데 실제로는 열 가지만이 아닌 달, 대나무와 복숭아까지 포함하고 있어 13가지나 되는 상징물을 유동적으로 조합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십장생은 임금의 덕을 칭송한 시경(詩經)의 ‘천보9여(天保九如)’에서처럼 나라와 임금의 만수무강을 위해 궁중에서 출발한 것으로, 해마다 새해 초에 그렸던 세화(歲畵: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그린 그림으로 신선의 시중을 드는 선동(仙童)이 불로초를 짊어진 모습 따위를 그렸다)로서 나중에는 신하에게도 내려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십장생도는 조선시대 궁중의 혼례인 가례 따위의 잔치에 크고 화려한 10폭 십장생 대병풍을 친 기록과 의궤도에서 잘 나타난다. 또 이 십장생도는 궁의 각 전(殿)과 종친에게 주었으며, 신하에게는 무려 20장씩이나 주어 십장생 그림이 민간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번 특별전에는 ‘십장생 대병풍’(10폭 중 8폭,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 10폭 대병풍’(19세기, 궁중유물전시관 소장), ‘십장생 10폭 대병풍’(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따위를 선보이고 있으며, 첫 공개되는 중요민속자료 제59호 ‘자수십장생 이층농’(숙명여대박물관)과 ‘백자청화십장생 주발’(코리아나화장품미술관) 따위도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특별히 전시기간 동안 십장생 작품에 대한 감상 및 이해에 대한 특강과 십장생 그림자극 공연도 마련되었다. 먼저 새해(2004) 1월 10일(토) 늦은 1시에 강순형 궁중유물전시관장의 ‘십장생작품 감상’이 있고, 2월 14일(토) 늦은 1시에 전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실 박본수 연구원의 ‘십장생의 이해’란 특강이 있을 예정이다.
또 기간 중 매주 토요일 늦은 3시엔 우리마당 만석중놀이연구회의 ‘십장생 그림자극’을 공연할 계획이다. 고려 때부터 초파일에 놀아온 ‘망석(忘釋, 亡釋, 萬石)중놀이’ 또는 ‘만석승무(曼碩僧舞)’는 소리 없는 그림자극으로, 우리나라에 전승되는 유일한 총 3막의 그림자극이다.
이 2막 중 제 1막이 ‘십장생 그림자극’인데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을 보여주고는 그림자처럼 사라져가면서 우리 삶의 유한함을 표현하는 극이라고 한다. 해(日)가 나오고, 이어 달(月)이 구름을 머금은 채로 나오면서, 가운데에는 바위(石)와 물결(水)이 나타나며, 희고 푸른 구름(雲)에 이어 소나무(松) 그루가 솟아나면서, 그 밑에 불로초(영지:靈芝)가 살짝 머리를 내밀고, 왼쪽 아래에서 거북이(龜)가 나와 물결 옆에 머문다. 이어서 가운데에 학(鶴)이 춤추며, 밑에서 사슴(鹿)이 등장하여 십장생을 이루는 화려한 그림자극이다.
이 망석중놀이 그림자극의 가장 큰 특징은 채색 한지로 만들어져 있어 불빛에 비치는 막을 통해 다른 나라엔 없는 유일한 천연색 그림자극이라는데 있다.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들에서는 모두 흑백의 그림자극 즉 불빛이 투영되지 않는 가죽 등으로 놀이를 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색깔을 칠한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대로 비쳐, 관객에게 천연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지난 23일 늦은 2시엔 특별전을 여는 행사가 있었다. 간단한 행사에 이어 강순형 궁중유물전시관장의 전시품 설명이 있었고, 김기중 우리마당 대표가 망석중놀이에 대한 이해를 도왔으며, 궁중음식연구소의 다과행사도 곁들여졌다.
벌써 계미년 한해가 저물고, 갑신년(甲申年)이 밝아온다. 지난해 온 국민은 큰 어려움 속에서 고통을 받았다. 밝아오는 갑신년 새해에는 이 십장생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행운의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