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의 성격 규정) 때문에 정치·사회학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도대체 노사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노사모의 정치성과 당파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과거 동교동계나 상도동계와 같은 정치파벌로 볼 수는 없지 않느냐."
한국NGO학회 등이 주최한 학생·시민운동 관련 학술회의에 참석한 김용호 인하대 교수의 '노사모론'이다. 김용호 교수는 "노사모의 성격에 관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며 "신사회운동이나 공동체 운동과 같은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입장도 있고, 과거 YS-DJ 시절의 상도동-동교동계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파벌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노사모가 특정 정치지도자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점에서 그 정치성과 당파성을 부정하긴 어렵지만, 단순히 과거와 같은 정치파벌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노사모의 활동은 이전의 정치 조직과는 달리 자발적인 참여와 지역 중심의 활동, 온-오프 간의 활발한 연계 등을 특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노사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관찰도 해봤는데 그 성격을 명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전에 노사모 간부에게 (노사모의 성격에 대해) 질문을 하니 '노사모는 노사모다'라고 대답하더라, 기존의 정치·사회학으로는 노사모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본격적으로 변화 위해 노력할 시기"
한국NGO학회·한국문제연구회·내나라연구소 공동주최로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번 학술회의에는 김도종 명지대 교수, 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이 참석해 한국사회의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했다.
'시민운동의 성장과 변화'를 다룬 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은 "그 이전에는 시민단체를 매개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했다면, 이제는 노사모처럼 노무현이라는 특정 정치인을 직접 매개로 하는 방식도 등장했다"며 달라진 시민운동의 흐름과 여건에 대해 분석했다.
하 사무처장은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성이나 이념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2002년 대선 이후 더이상 이러한 기계적 중립성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새만금 간척사업이나 정치개혁과 같은 각종 현안에서 시민단체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구체적 사회적 공공선을 보다 분명하게 규정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하 사무처장은 노무현 정권의 등장에 따른 시민사회단체의 변화를 설명하며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조선>과 <동아>, 한나라당 등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해줄 것을 시민단체에 요구했던 것은 그만큼 그간 시민단체들이 주장해 왔던 내용들 중에 많은 부분이 정책으로 구현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지난 1년간 이라크 파병 등의 문제에서 노무현정부와 시민단체들 간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운동 진영이 노 정권의 홍위병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노 정권의 등장으로 시민운동의 정체성이 보다 명확해지고, 본격적으로 변화를 위한 노력을 전개시킬 수 있는 시기가 비로소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 좌경화·왕따 되어가고 있다
한국학생운동의 전망에 대해 논문을 발표한 김도종 명지대 교수는 "60년대 초반 이후 군부는 수구-보수세력의 최종 물리적 지지기반이었고, 학생집단은 진보-혁신세력의 최첨병으로 변혁운동의 물리력 대부분을 제공했었다"며 "4·19 이후 정치화된 학생운동은 87년 6월 민주화 투쟁을 겪으며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파악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제도화를 가져왔던 조직화와 이념화가 교조화와 관료화로 변질되고 이에 실망한 학생대중이 떠나면서, 학생운동은 운동가들에 의해서만 유지·주장되는 퇴조현상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학생운동이 민주화에 기여한 바는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시위의 만성화-고질화, 법치주의 원칙의 위협과 이에 따른 사회비용의 부담 증가 등을 가져왔다"며 "앞으로는 한총련과 같이 전국단위의 학생조직은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에는 중도의 여지는 없고, 이분법적인 패가름만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는 월남화 즉 좌경화 되어가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대만화 즉 왕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된가"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사료관장은 "학생운동 진영에서 교조적 태도와 자기도취적 학습이 필요했던 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논리적 정당성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한 단계 더 진보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분단의 극복과 통일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일부 조급했던 학생들이 친북적인 주체사상에 경도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초보적인 민주주의 수준을 극복하고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른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비교적 적은 희생으로 이렇듯 자랑스러운 민주화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지도 학계에서 한번 본격적으로 다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