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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지난해 송년의 시간도 포함하여) 하느님께 바친 내 소망들이 좀 더 구체적이고 절절하고 풍성했던 것 같다.
지난 2000년 태안군에서 처음 실시했던 1월 1일 아침 백화산 정상 '새해맞이' 행사 이후로는 4년만인 올해 <태안반도 태안청년회>에서 다시 연 '2004 해맞이' 행사 때문에 나는 '새해 소망'을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태안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생적 봉사사회단체인 <태안반도 태안청년회>의 김영후 2003년 회장이 연말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내게 와서 새해 1월 1일 아침의 백화산 해맞이 행사 계획을 말해 주고, '신년 축시'를 부탁했다.
그는 지난 1999년 12월 31일 오후 안면도 '꽃지'에서 있었던 <천년 보내기 저녁놀 축제>에서 내가 <2000년의 먼동 속에서 1999년을 힘차게 떠나보낸다>라는 시를 수천 명 앞에서 낭송했던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백화산 정상에까지 앰프 장비를 가지고 가서 설치한다는 말에, 앰프 상태만 좋으면 무난할 걸라는 생각으로 선뜻 수락을 했다.
그리고 2003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시를 지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컴퓨터 앞에서 여러 번 몸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작업을 했다.
하루 전인 30일에는 <태안반도 태안청년회>의 박승환 2004년도 회장이 우리 집에 와서 백화산 해맞이 행사의 제1부 '제례' 행사 때 낭독할 '축문'까지 부탁을 해서 당혹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한대로 31일 오전에 우선 그 축문부터 해결을 해 놓았다. 그리고 계속 시를 짓는데 시가 어찌나 풀리지를 않는지….
밤 10시 성당의 송년 미사에 참례하고 12시에 돌아와서 겨우 최종 완결을 보았다. 그리고 1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깨어난 시각이 3시. 재벌 잠을 청했으나 본래 잠복을 타고나지 못한 내 생리를 다시 실감하고 확인했을 뿐이었다.
4시경에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6시경 우선 바깥 고양이들에게 이른 밥을 주고, 가족들을 깨워 6시 30분쯤 산을 올랐다. 모처럼 새벽에 가족 모두 산을 오르면서 함께 '아침기도'와 '삼종기도'를 바치자니 감개 무량해지는 기분이었다.
산에 오른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7시 15분쯤에 행사가 시작되었다. 제1부 '제례' 행사에서는 군수와 군의회의장, 교육장, 문화원장이 차례로 제상에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그 다음에 내가 축문을 읽었다.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주변의 엄숙한 분위기에 힘입어 무난히 낭독을 마칠 수 있었다.
제2부 행사는 마이크 위치를 바꾸어 군수와 군의회의장이 축사를 하고, 구름 때문에 일출을 보지 못하는 대신 일출 시간에 맞추어 구호와 함께 만세 부르기와 고무풍선 날리기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신년 축시 낭송을 했다. 마이크 상태는 좀 좋아졌지만, 나는 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잠긴 목소리로 낭송을 해야 했고, 산정의 추운 아침 기온과 산만해진 분위기 때문에 조금은 애를 먹어야 했다.
시를 너무 길게 지었다는 후회도 있었고, 시를 줄여서 낭송하는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한 우둔함도 있었다. 바위에 앉거나 선 채로 끝까지 내 시를 들어준 분들에 대해서는 고마움보다도 미안함이 더 컸다.
아무튼 나는 <태안반도 태안청년회> 덕분에, 그리고 '2004 해맞이' 행사 덕분에 1월 1일 아침에 고장의 명산 백화산 정상에서 생애 처음 나의 분명 확실한 새해 소망들을 신년 축시와 축문에 담아 저 하늘에 절절히 들어올릴 수가 있었다.
신년 축시와 축문에 담긴 내 새해 소망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려는 뜻이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종교인과 무종교인, 불교와 유교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다 아우를 수 있는 내용을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썼다.
물론 여기에는 일부 개신교 교역자들과 신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 있었다. 지역의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과거 고장의 문화행사들의 한가지였던 '산신제', '태일제', '중앙대제' 등에 대해 항의와 반대의 뜻을 표출해 왔다. 제례 행사를 의미하는 '제(祭)'자만 나와도 민감해지는 현실과 얼마 전 안면도 지역 장승들의 훼손 문제로 웹 상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던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역에서 천주교 신자로 널리 알려진 내가 백화산 해맞이 행사의 1부 순서인 '제례'의 축문까지 지어 낭독하는 것을 개신교 형제들이 어떻게 볼지 조금은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정에 따라 나는 좀 더 고심을 하면서 종교인과 무종교인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기원을 드릴 수 있는 내용을 유지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또 그런 사정에 따라 좀 더 뜨겁고 절절하게 하늘을 향해 기원을 드릴 수 있었다.
1월 1일 아침해를 보며 백화산 정상에서 무종교인 타종교인들과 함께 하늘에 기원을 드린 것과는 달리 2003년 12월 31일 밤 성당에서 하느님께 드린 '새해 소망'에는 좀 더 자유롭게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사항들을 곁들일 수 있었다.
밤 10시 '송년미사'에 아내와 함께 참례했다. 신부님은 강론 후에 신자들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을 주고 종이를 나누어주면서 각자 새해 소망을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열 명 정도만 앞에 나와 기도를 바치라고 했다.
하지만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기도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사적인 소망들을 많이 적었기 때문일 터였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12명 제자 수에 맞추어 열두 가지 새해 소망들을 종이에 적었다. 성가대 석의 일부 동료들이 내게 앞에 나가서 기도하기를 권했지만 나는 사양을 했다. 내 새해 소망 중에도 너무 사적인 사항들이 있는 데다가 자꾸 앞에 나서고 하는 것이 왠지 면구스럽게 느껴지기 까닭이었다.
미사 후에는 신자 모두 성당 밖으로 나가 송년 행사를 가졌다. 넓은 성당 뜰 한복판에 모닥불을 피우고 동시에 여러 개의 폭죽을 연달아 터뜨려 밤하늘을 잠시나마 불꽃으로 수놓았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손에 손을 잡고 넓게 원을 그린 신자들은 송년 성가들을 불렀다. 그리고 성당 안에서 새해 소망들을 적어 가지고 나온 종이들을 접어 모닥불에 던졌다.
새해 소망들을 적은 종이들은 불에 태워져 없어지지만, 그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과 연기가 되고 허공 중의 보이지 않는 흔적이 되어 하느님께로 가리라는 믿음이 (또 하나의 더 큰 소망이) 모든 신자들의 표정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내 새해 소망들을 적은 종이를 모닥불 속에 던졌다. 비록 성당 안에서 제대 앞에 나가 기도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정성껏 종이에 적어 모닥불에 태워 하느님께 드린 내 열두 가지 새해 소망들을 여기에 적어보기로 한다.
1. 저로 하여금 저희 태안 본당 '40년사'의 집필과 편찬 작업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2. 저로 하여금 저희 태안 본당 '40주년'을 기념하는 갖가지 행사들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3. 제 어머니를 비롯하여 모든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제가 지니고 있는 심각한 성인병들이 악화되지 않도록 돌보아 주소서.
4. 제 가운데 동생이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모든 가족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5.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제 0000로 하여금 도박과 노름의 악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하소서.
6. 부산의 여성 작가 김00(젬마)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소서.
7. 저로 하여금 이웃 장애인 남태현(요셉)을 비롯하여 불우한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도록 도와 주소서.
8. 저로 하여금 착하고 옳은 표양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많은 사람들을 성교회로 이끌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9. 저로 하여금 저희 가정과 '범(範)가족공동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살도록 도와 주소서.
10. 이런저런 일로 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들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제가 그들을 따뜻이 이해하며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 주소서.
11. 굳세게 진실과 정의와 합리의 길을 따라 살려는 저로 하여금 더욱 충만한 고뇌 속에 오래 머물게 하소서.
12. 개신교 신학대학의 외래교수로 출강하게 된 바쁜 생활 속에서도 제가 좋은 소설을 쓰고,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송년의 시간에 모닥불에 태워 하느님께 드린 내 새해 소망들을 다시 상기하면서 지난해 12월 28일의 일도 즐겁게 기억해 본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주일이면서 한해의 마지막 주일이었다. 성탄절 다음 주일은 가톨릭 교회가 '성가정축일'로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의 가정을 '성가정'이라 부르고, 그 성가정을 본받아 우리 가정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특별한 행사를 치르며 미사를 지내는 날이기에 그 날을 성가정축일이라고 부른다.
성가정축일에는 세계의 모든 가톨릭 교회들이 기혼 부부들을 대상으로 미사 중에 '혼인갱신식'이라는 것을 거행한다. '혼인서약'을 되새기며 '혼인성사'의 거룩함을 다시 일깨우는, 즉 부부간의 사랑과 의무를 재확인하는 의식이다.
그 날 우리 부부는 천안에 있었다. 성가정축일 미사를 천안 성황동 성당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성당에서 우리 부부는 혼인 갱신과 관련하는 좀 더 농밀한 느낌들을 얻을 수 있었다.
성황동 성당 신부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부부 함께 미사에 온 신자들이 많지 않아서 신부님은 섭섭하셨던 듯하다. 그런 상황이라 제대 가까이 앉은 우리 부부는 조금은 자랑스러운 마음이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신부님의 축성을 받은 다음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주는 예식을 했다. 그로 말미암아 아내의 묵주 반지는 물론이고, 몸의 기(氣) 순환을 위해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내 값싼 은반지도 더없이 소중한 반지가 되었다.
혼인 갱신식의 노래로는 성가가 아닌 <부부>라는 대중가요를 불렀다. 그리고 미사의 마지막 노래로는 역시 성가가 아닌 <당신>이라는 대중가요를 불렀다. 미사 중에 부부의 사랑과 신의를 일깨우는 그 노래들을 부르면서, 그리고 '혼인갱신서원문'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나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평생 동안 더욱 뜨겁고 올곧게 가져가기로 다시 결심하며 내 마음을 실로 맑고 밝게 할 수 있었다.
가정이 '기초교회'임을,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데는 내 가정을 아끼고 사랑함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이치를 다시금 착실히 깨닫고 상기하며 올 한해를 살고자 한다. 아울러 내 이웃들, 이 세상의 모든 가정들에 하느님의 돌보심이 계시기를 빌고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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