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부안 핵폐기장 찬성집회가 부안군청에서 조직한 '관제데모'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청이 직접 행사계획을 마련하고, 공무원들에게 주민 동원령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특히 군청은 공무원 가족친지, 재경 향우회 직장 동료 등을 동원하도록 지시했으며, 그 실적을 공무원 인사고과에 포함시킨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하지만 부안군청측은 이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부안 핵폐기장 찬성집회는 5일 오후 2시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며, 대회 명칭은 '2대 국책사업(양성자가속기, 방사능폐기장) 추진을 위한 범도민대회'이다. 부안 핵폐기장을 찬성하는 단체들이 대규모로 집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날 집회에는 1500여명의 찬성측 도민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집회의 공식적인 주최 단체는 '범 부안군 국책사업 유치 추진 연맹'.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A4용지 2장 분량의 문건에 따르면, 사실상 부안군청이 이날 행사의 세부 순서와 준비 사항 등 집회의 전반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 부안군청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 나타난 준비사항으로는 '차량 (버스) 30대' '인원 1500명' '소요경비 5000만원' 등의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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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당 버스 2대, 부족하면 공무원 가족친지도 넣어라"
이 문건에 작성 출처가 기재된 것은 아니지만 부안군청의 공무원 A씨는 <오마이뉴스>의 확인 요청에 "자치행정과에서 이 문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안군청 자치행정과와 국책사업 지원단 소속 공무원 9명이 지난 일주일동안 집회를 준비했다"면서 "면마다 집결지는 다르지만 오전 8시 40~50분 부안 톨게이트에서 만나고, 9시30분에 휴게소에서 재확인한 후 서울로 올라간다"고 밝혔다.
이 문건에 기재된 '(동원)인원'에는 부안 주민 640여명 뿐 아니라, 재전(전주) 향우회 등 전북도민 520명, 재경 향우회 200여명, 기타 100여명 등 부안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A씨는 이와관련 "부안군청 관계자들은 최근 각 읍면 총무계장에게 전화를 걸어 면당 관광버스 2대(부안읍은 3대)를 채우라는 동원령을 내렸다"면서 "군청 측은 사람이 없으면 공무원 본인의 가족이나 서울 친지들도 내보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집회 당일에도 각 읍면에서 한 명씩 공무원들은 버스를 타고 주민과 함께 상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안대책위 관계자 역시 "아침 일찍부터 읍면 사무소직원들이 주민들을 인솔해갔다"며 "부안읍은 6명, 상서면 4명, 백산명 3명 등 공무원이나 공익근무요원이 직접 버스에 탔는데, (반대) 주민들이 직접 공무원들의 사진도 찍고 이름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소재지에서 태우지 못하고 군을 벗어나 주민들은 버스에 태우는 경우도 많았다, 한 할아버지는 관광가는 줄 알고 차에 탔다가 내리기도 했다"며 전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집회에 드는 비용은 5000만원. A씨는 예산 출처에 대해 "법률상 군이 그런 대규모 예산을 쓸 수는 없다"면서 예산의 출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참가하는 주민들에게 일당을 준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점심 도시락을 주는 정도고, 공무원이 주민에게 돈을 주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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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찬반 동향 확인만 할뿐" 주민동원 의혹 부인
A씨는 "최근 핵폐기장 찬성단체가 갑작스럽게 만들어졌는데, 군청 국책사업 지원단 등에서 이 단체들 기자회견문까지 써줘야 하는 실정"이라며 "공무원들이 (주민 동원) 못하겠다고 얘기하는데 계속 지시하니까 마지못해 따르고 있다, 다들 '왜 이 직업을 선택했을까 자괴감에 빠져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A씨 자신도 "주민들은 피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공무원으로써 함께 하지는 못할망정 인간으로 못할 짓을 하고 있다, 죽을 맛이다"라며 현재의 심경을 밝혔다.
부안군청 직장협의회는 지난 8월만 해도 두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하며 "핵폐기장 유치 관련 업무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 이후로 직협 지도부는 태도를 바꿔 군 행정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군행정에 강하게 반발하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인사상의 불이익이다. 군청 측은 핵폐기장에 강하게 반대하는 공무원 2명을 최근 인사조치했다. A씨에 따르면 군청 측은 이번 집회에서도 동원 실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군청 관계자는 "공무원이 집회에 뭐하러 가냐, 인사고과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고 동원실적을 포함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관제데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문제의 문건과 관련해서도 "자치행정과가 주민들 동향을 확인, 보고하기 위해 취합한 자료 중의 하나일 것"이라면서 "부안군청측이 직접 작성한 문건은 아닐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찬성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반대 측은 대안도 없이 핵이 무섭다고만 한다'는 여론"이라고 강조했다.
김명석 '범 부안군 국책사업 유치 추진 연맹' 회장은 "우리 부안은 유치에 뜻이 같아 관민이 협조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며 군청 측의 개입여부를 일부 인정했다. 김 회장은 "어느 부분을 협조했는지 세세한 부분까지는 모른다"며 "주관은 단체들이고 군청에는 협조요청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끊이지 않는 관제데모 논란
부안군청의 관제데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군청 공무원이 핵폐기장 찬성단체의 창립대회에 주민들을 동원한다는 내용의 지침이 공개된 바도 있다.
군청은 당시에도 공무원을 통해 읍면 이·반장과 부녀회, 체육회, 산악회 회원 등 주민 참여를 독려했다. 군청 공보계 관계자는 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문건 내용은 인정했지만 "찬성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북도청 역시 지난해 6월 '새만금사업종식 전북도민총궐기대회'를 조직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집회계획에 대한 세부문건이 발견됐는데, 이 문건 중 '인솔책임자' 란에는 '시정담당' 혹은 공무원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이들 인솔책임 공무원들은 당시 현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시청 노트를 들고 있던 군산시 인솔책임자 황 모씨는 "시장님도 오셨고, 시민들 안전을 위해서 왔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고영조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소추방 범부안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금이 70년대 개발독재 시대도 아니고, 어이가 없는 일"이라며 "집회 뿐 아니라 해외 핵폐기장 견학에 동원되는 사람들이 주로 공공근로자, 공익요원, 생활보호대상자 등 군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