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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건물이 뻔히 보이는 라파이엣 공원 앞에 비닐 움막을 지어놓고 24년째 반전-반핵 시위를 벌이고 있는 콘셉션(60) 할머니가 지난달 31일 오전 10시경 몰려든 비둘기 떼에 먹이를 주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백악관 건물이 뻔히 보이는 라파이엣 공원 앞에 비닐 움막을 지어놓고 24년째 반전-반핵 시위를 벌이고 있는 콘셉션(60) 할머니가 지난달 31일 오전 10시경 몰려든 비둘기 떼에 먹이를 주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 김명곤
기자는 짐짓 움막을 뒤로 하고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려 여행객 행보로 라파이엣 공원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뒤돌아 봤더니 콘셉션 할머니가 움막 뒤편으로 돌아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나온 비닐봉지에서 먹이를 한줌씩 꺼내 모여든 비둘기 떼에게 흩뿌려 주기 시작했다.

기자는 그녀가 먹이를 주는 장면을 재빨리 카메라에 담고 공원을 걸어 나오다 정말 등골이 오싹하는 경험을 해야 했다. 갑자기 40여m 앞쪽 왼편으로부터 한 백인 사내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기자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방금 전 기자가 백악관 정문 앞쪽으로 들어 올 때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계속하고 있던 백인 남자였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태연한 척 걸음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싹 다가오더니 그냥 앞을 지나치는 것이었다.

휴! 안도의 한 숨을 쉬며 차를 돌려 백악관 왼쪽 골목을 빠져 나오고 있는데 저 앞쪽에서 경찰차 여러 대가 불을 번쩍이며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20여분이 걸려 통과하다 보니 운전자 없이 길 옆에 세워둔 이사짐차를 포위하고 검색을 하려는 찰나였다.

귀갓길에 하나의 상념이 기자의 머릿속을 뒤스럭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시대에 '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악'을 누가 정의해야 하는가. 3년여 전에 부시 대통령이 꺼내놓고 즐겨 사용하는 '악의 축'과 콘셉션 할머니가 되받아쳐 사용하는 '악마'의 콘셉션(conception; 개념)은 어떻게 다른가.

어느덧 이 시대의 최대 화두가 되어 버린 '악이란 무엇이냐. 악의 개념을 누가 정의해야 하느냐'를 놓고 지구상 여기 저기서 주먹을 휘두르는 자들과 머리에 헬멧을 쓰고 살아야 하는 콘셉션 할머니의 악다구니 소리로 2004년 역시 지구촌은 다사다난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플로리다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한국주간>(Korea Weekly of Florida) 1월 8일자 신문에도 함께 실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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