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2월 9일로 또 한차례 연기됐다.
국회는 8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표결처리하려 했으나, 농촌출신 의원의 의사진행 저지에 막혀 결국 무산됐다.
박 의장은 김효석 민주당 의원의 처리 연기 제안을 받아들여 오는 2월 9일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밝힌 뒤 오후 5시40분께 산회를 선포했다. 박 의장은 "2월 9일 FTA 표결을 물리적으로 방해할 때에는 경호권을 발동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 | 마이크 꺾기·단상 점거·설전·잡담... FTA 처리 연기 87분 | | | [현장] 농촌출신 의원들 실력 저지에 강경한 박관용 의장 | | | |
| | | ▲ 농촌출신 의원들이 단상주변을 점거하고 마이크를 꺾어놓자 박관용 의장이 국회법에 따라 토론을 하자고 제안하지만 의원들이 들은 척도 안하고 있다. | | 8일 오후 FTA 비준동의안이 상정되면서 국회 본회의장은 단상점거와 고성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됐다. 농촌출신 의원들은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이 상정되자마자 단상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 1시간27분만에 표결 처리를 무산시켰다.
이날 오후 4시15분경 박관용 의장은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며 곧장 토론에 들어가 임인배 의원에게 반대토론 기회를 줬다.
그러나 이규택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김용균·윤영탁·배기운·이정일 의원 등 한나라당과 민주당 농촌출신 의원 40여명은 임 의원을 가로막고 단상을 점거해 토론 자체를 무산시켰다. 이들은 발언대의 마이크를 뒤로 꺾어 발언 자체를 가로막았고, 그 뒤 박 의장과 의원들 사이에는 약 1시간 가량 팽팽한 설전이 오갔다.
여야 농촌출신 의원들 마이크 꺾고 단상 점거
단상을 점거한 의원들은 "FTA 처리를 2월로 미루자"고 요구했지만 박 의장은 "이렇게 (단상을 점거) 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오늘 처리하겠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본회의장은 각 의원들간 고성으로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반대토론자로 지정된 임인배 의원은 본회의에 참관한 농림부 직원들에게 가서 "똑바로 하라"고 말했으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향해서는 "이거(반대토론)는 여당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쳤다.
이상배·이정일 의원은 이날 오후 노 대통령이 국회를 다녀간 것을 두고 "대통령이 국회만 오면 건건이 모두 통과시키느냐, 앞으로 모든 법안은 대통령만 다녀가면 통과되겠다"고 의장에게 언성을 높였다. 반면 정진석 자민련 의원은 "좀 더 당당하게 하라, 표결 처리해 무산시키면 되지 않느냐"며 농촌출신 의원들을 비난했다.
"대통령만 다녀가면 모두 통과시키나" - "좀 더 당당히 하라" 설전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면서 농촌출신 의원들은 박 의장에게 정회를 요구했으나 박 의장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설전이 잠시 멈췄지만 의원들은 단상을 점거한 채로 잡담을 나눠 박 의장으로부터 "각 당 의원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았나, 그런 얘기는 다방에나 가서 하라"고 면박을 받기도 했다.
박 의장이 워낙 강경하게 나오자 단상을 점거한 의원들은 잠시 논의를 거쳐 오후 5시15분께 점거를 풀었다.
박 의장은 찬반 토론 뒤 "오는 2월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FTA 처리를 약속하면 산회하겠다"고 말했으며, 의원들이 이에 동의하자 5시42분경 산회를 선포했다. | | | | |
반대토론 임인배 "농업의 포기는 주권의 포기"
이에 앞서 반대토론에 나선 임인배 한나라당 의원은 한·칠레 FTA 체결시 취약한 농업기반 급거에 붕괴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비준동의안의 부결을 촉구했다.
임 의원은 국가간 협약 체결에 앞서 ▲시장가치와 비시장가치의 병행 계산 ▲피해당사자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 등이 반드시 요구된다고 강조하며 "한·칠레 FTA는 이 기본준칙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충족된 것 없다"고 정부의 FTA 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임 의원은 또 한·칠레 FTA 체결이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한·칠레 FTA로 인해 1080여 농산물 품목에 대한 관세가 낮아지고 5∼10년 지나면 완전 무관세라고 한다. 칠레는 대부분 농장이 500㏊이상으로 세계 3대 농업 강국이다. 완전 개방을 한다면 과연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겠나.
농업의 포기는 주권의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 농산물 수입개방이 추가될 경우 농업의 몰락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개방만 서두르고 있다. 아울러 일방적 피해를 전제로 하는 한·칠레 FTA는 인정할 수 없다.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 등 교육지원과 보험료 면제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해야 한다. 특별법을 통해 마련되는 119조원에 대한 구체적 사용계획이 수립 발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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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토론 오세훈 "우리만 예외 고집하고 남아 있을 수 없다"
반면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은 "무역 의존도가 총생산 70%에 이르는 우리 경제구조상 생존적 차원에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한·칠레 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했다. 오 의원은 "사과·배·쌀·성수기 포도를 제외하고 370여개 품목은 DDA 타결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다"면서 "농민들에게 미흡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완전개방화 시대에서 우리 농업이 경쟁력 갖추지 못하면 앞으로의 위기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오 의원은 완전개방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신의 담장은 허물지 않으면서 남의 담장을 허물라고 할 수 없다. 한·칠레 FTA에 서명하고도 비준안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칠레 시장에서 국산자동차 점유율이 2위에서 4위로 떨어졌고, 휴대전화 점유율도 2003년 10.3%로 하락했다. 2003년 미·칠레 FTA가 발효되면서 가격경쟁력은 더욱 추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업은 물론이고 금융·유통·서비스·문화산업에 이르기까지 전지구적 차원에서 개방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만이 예외를 고집하고 남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동북아중심국가 건설, 소득 2만 달러를 내세우고 있다. 매년 수출이 12%씩 증가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해외 시장 확대는 불가피하며 개방형 대외통상전략 또한 불가피하다. 하루라도 빨리 비준되지 않으면 무역 수지 흑자 절반인 중남미 진출 교두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효석 "DDA 협상 이후로 체결을 연기해야"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FTA의 첫번째 대상국을 잘못 골랐다고 지적하며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 연기를 요구했다. 김 의원은 "일본은 최대의 무역국이지만 지금까지 FTA 협정을 체결한 곳은 멕시코 한 군데 밖에 없다"면서 "일본은 농산물 만큼은 대단히 신중하게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대단히 무모하게 체결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정부의 FTA 정책추진 기조를 질타했다.
김 의원은 자신이 한·칠레 FTA에 반대하는 것은 전략상의 이유라며 "개도국 지위의 유지를 위해 DDA 협상 이후로 체결을 연기하는 것이 전략상 옳다"고 말했다.